[가볼만한 곳] 선비의 고장 ‘영주’에서 ‘경상도 문둥이’ 연원 따져보니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경상도 문둥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는가? 한센병자를 가리키는 문둥이에서 나올리는 없고 경상도에 문동文童이 많다는 말에서 나왔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역사와 기행을 통해서 짚어보면 아닌 게 아니라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라고 한다. 영주군 풍기읍에는 선비수련원이 있다. 봉화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장자방 정도전이 나왔다. 군왕보다는 신권정치를 통치의 골격으로 하고, 경복궁·숭례문 등이 모두 그가 작명한 것이다. 인조반정 이후 집권층은 서인, 그중에서도 노론이었는데 기호畿湖가 중심이었고, 영남은 오랫동안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5·16 후 영남이 권력 중심이 된 것은 이례적이었다. 경상도 말이 전국을 휩쓴 것도 이때부터다.
최치원은 당에서 ‘토황소격문’을 쓰고 귀국하여 <계원필경집>을 남겼다. 고려가 정비된 것은 성종 때인데 이를 주관한 사람이 최승로였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주관했는데 전통의 편사체에 의한 관찬官撰을 책임졌다.
경북 군위軍威의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를 지었다. 단군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우리 역사서가 <삼국사기> 밖에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매우 빈약했을 것이다.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거창은 남명 조식이 난 곳이다. 이황이 경상도 북도의 어른이라고 하면 조식은 남도의 어른이다. 글을 읽으면서도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칼을 차고 있었다는 조식의 의기는 대단했다.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였고 문하에서 곽재우 등의 의병장이 나왔다.
함양은 큰 스님 성철이 나온 곳이다. 진주는 신라 때 강주康州로 9주의 하나였다. 경남 인물의 절반은 여기서 나왔다. 조선의 상민常民을 그려낸 대하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의 이병주가 있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남긴 마흔 둘 서원 가운데서 전라도에서는 장성의 필암서원, 태인의 무성서원 두 곳이었다. 그런데 경상도에는 안동에만 도산서원, 병산서원 두 곳이 있었다. 전라도는 풍부한 물산이 바탕이 된, 기본적으로 예향이었다. 임권택의 영화 <서편제>는 전라도의 노랫가락을 구성지게 그려내 오늘날 한류의 발흥에 한 자극이 되었다.
기울어가는 영국을 살린 것이 비틀즈와 해리 포터였다. 방탄소년단이 이를 넘어서기 바란다.
경상도에는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 외에도 경주, 상주, 성주, 영주, 울주 등 주州로 불린 대읍이 다섯인데, 전라도가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 이외 광주, 나주, 능주, 무주, 완주의 다섯 고을이 있었던 것과 같다. 과거에는 인구와 전답이 국세國勢였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압도적인 이유다. 중국에는 한국보다 큰 성이 수두룩하다. 160만km² 의 위구르, 122만이 넘는 티베트, 72만의 청해靑海는 그만두고라도 한반도와 비슷한 21만km²의 광동성廣東省만 해도 인구가 9천만명이다. 오늘날 중국과 겨루고 있는 대한민국은 역사상 하나의 기적이다.
누구에게나 역사와 지리, 문화와 인물이 고향이 자랑스러움의 원천이 된다. 지방마다 이를 찾아내고 발전시키는 것이 향토애의 기본이 되고, 나아가 지역차별을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