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이야기] ⑫ “당신 앞엔 두 길이 있어요”

*<샤마위스로 가는 길> 열두 번째 이야기

19
나르지스의 히스테리컬한 울음소리는 와지흐 이삼 장군이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기 왔지만 지금 자신과 비올라는 아무도 원치 않았던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비올라는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았다. 30분 뒤면 그녀의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녀는 일이 잘못되기를 원치 않는다. 만일 이마드가 혼자 온다면 그녀의 경비원들이 그를 상대할 수 있겠지만 그가 누군가와 함께 온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다. 비올라는 와지흐 장군의 손을 잡아당기며 나르지스를 진정시키고 있던 사디야를 가리켰다.

“장군님, 들어보세요. 저 아가씨는 지금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어요. 장군님은 그녀와의 결혼을 원하셨나요? 아니면 잠깐 데리고 놀기를 원하셨나요?”

“내가 원하는 것은 그녀와의 결혼이요, 비올라 여사. 오늘 밤 그녀에게 이 얘기를 하려던 참이에요.”

“장군님, 그렇다면 이 일은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내가 저 아가씨를 진정시킬게요. 그녀의 오빠가 오는 중이니까 장군의 의향을 그에게 얘기하시고 나머지는 제게 맡겨주세요.”

나르지스는 옷을 갈아입었던 방에 초점 없는 눈으로 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조금 전 그녀를 축복하듯 맞아주었던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전혀 다른 얼굴이 있었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 찬 두 눈,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나르지스, 들어봐요. 당신 선택은 자유예요. 당신 앞엔 두 가지 길이 있어요. 당신 오빠가 왔을 때 당신이 잘못 한 게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그와 함께 돌아가는 거예요. 물론 그가 당신의 결백을 믿어 줄지는 의심이지만, 나는 남자들을 잘 알지요. 그들의 생각은 늘 진실을 은폐하는 거죠.”

비올라는 잠시 한숨을 쉬고 다시 그녀에게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듯 덧붙여 말했다.

“아니면 장군님의 결혼 의사를 받아들이세요. 그런 이상한 눈으로 날 보지 말아요. 그 분은 그의 사랑으로 당신을 사는 거예요. 당신은 그가 이웃에 큰 빌라를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잖아요. 맞아요. 그의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그는 이성적이에요. 중요한 건 그가 당신이 오빠로 인해 처하게 될 난관에서 당신을 구해줄 수 있다는 거죠.”

나르지스의 눈에서 흘러내리던 눈물이 멈추었다. 비올라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이건 잊지 말아요. 외국인들이 있는 모든 파티에 나를 불러주어야 해요. 나를 북쪽이나 모서리에 두고 서게 하면 안 돼요. 항상 당신 옆에 나를 서게 해 주어야 해요. 나는 당신을 위해 당신 결혼식에 이 나라 모든 유명 인사들을 초대해 줄게요. 내가 하는 말 잘 알겠죠, 나르지스?”

비올라가 그녀의 방으로 올라왔을 때 그녀의 머릿속은 온갖 걱정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르지스 같은 어린 처녀가 이런 늙은 남자와 결혼을 생각한다고? 도대체 이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30년 전 내가 영화계의 초대 여왕이 되기 전만 해도 이런 일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것이 그들의 지식과 욕망을 충족시켜줄 미래를 찾기 위한 신세대들의 절망인가? 아니면 알 샴샤위야가 말했듯이 밤은 그 어둠에도 불구하고 달의 연인들을 창조해낸다는 것인가?’

비올라는 빛바랜 은빛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액자들 속의 사진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사진들 속의 그녀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고 있다. 그 안의 그녀는 사랑을 하고 통곡을 하기도 하며 찬란히 빛나고 있다. 문득 지나간 추억들이 함께 했던 여러 남성들과 함께 그녀의 뇌리를 스친다. 이미 그녀를 떠나 버린 사람, 아직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여러 가지 형상들이 추억의 영사기를 돌리다 멈추듯이 영화 테이프처럼 흘러간다. 영화 테이프가 멈추었을 때 비올라는 부드러운 손수건을 가져다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는다.

20
이마드가 비올라 여사의 빌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비올라는 이미 경비원에게 그를 아래층 홀로 들여보내라고 얘기해 둔 터였다. 경비원은 청년 혼자가 아니라 동행이 있음을 그녀에게 알렸다.

이마드와 그의 외삼촌이 아래층 홀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홀이 마치 영화 촬영스튜디오와 같다고 느꼈다. 벽에는 비올라가 은퇴하기 전에 찍었던 70년대와 80년대 영화 장면속의 비올라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바깥은 어두운 밤이었지만 이곳을 밝히는 찬란한 빛을 가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짙은 선홍색의 커튼, 금으로 도색된 나무 손잡이들, 화려한 카펫, 액자와 상자들을 은색으로 에워싼 크리스털 장식장들.

이마드는 생각했다.

‘이 빌라에 비하면 카림 박사의 빌라는 뭐지? 카림 박사의 빌라의 장식품이라곤 그와 동료들이 그린 유화들밖에 없는데. 더구나 그의 빌라 한쪽 구석에는 당나귀 얼굴 그림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엔 당나귀 그림도 인물화도 없다. 오직 빛과 화려한 조명들로 빛나는 물건들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이마드의 생각은 마치 페르시아 공주처럼 계단을 내려오는 비올라 여사의 발자국 소리로 인해 멈추었다. 그녀의 실제 모습은 사진속의 그녀와는 다른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녀 주위가 마치 르네상스기 로마 교회의 어느 성화처럼 빛나는 띠가 드리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어서 와요, 이마드씨. 우리 집을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녀가 그에게 악수를 하자 농장을 지나 빌라까지 오느라 초저녁 한기로 얼어있던 그의 손가락을 녹일 듯 한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이마드, 길게 얘기하지 않겠어요. 나는 당신이 뭔가를 걱정하고 있고 그에 대해 확인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당신은 내가 비즈니스 우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요. 많은 외국인들이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나를 찾아온답니다. 당신 누이는 놀랍게도 여러 언어를 능통하게 하더군요. 내 손님들이 야외파티를 하는 것을 좋아해서 내가 나르지스에게 나와 함께 있어주기를 부탁했어요. 그녀는 마치 유엔에서 일하듯이 통역을 하고 통역비를 받은 거지요.”

나빌 주나힘 교수가 그녀의 말을 가로채며 말한다.

“그럼 누즈하 병원 얘기는 뭐고 장군 얘긴 뭔가요?”

“나와 함께 가시죠.”

그녀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에서 연기를 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비올라가 조금 전에 내려왔던 계단을 향해 두 걸음 정도 앞장섰다. 그녀의 뒷모습이 나빌의 두 눈에 들어왔다. 부드러운 드레스의 옷감 너머로 둔부의 흔들림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옷감이 사라지고 하얀 그녀의 뒷모습을 만지는 듯 느껴졌다. 순간 누군가 그의 이런 생각을 깨웠다. 갑자기 윤기 나는 옷감 위로 그의 아내 얼굴이 겹쳐졌다. 하나님 맙소사, 비올라의 유혹적인 뒷모습과 아내의 화난 얼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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