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이야기] (2) “사라진 시절의 기억 일부분”

*아시아엔 아랍어판 편집장을 맡고 있는?아시라프 달리(Ashraf Dali)?기자가 이집트에서 쓴 소설 <샤마위스로 가는 길>을 연재합니다. 아랍어로 나온 이 소설은?지난 2008년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고, 2012년에는 이란어로도 번역돼 출간됐습니다. ‘샤마위스(Samawes)’는?지난 호에서 이미 아셨겠지만 ‘햇볕이 적어졌다’는 뜻입니다.?이집트에서 펼쳐지는 [아라비안 이야기]로 함께 떠나보시죠. -아시아엔(The AsiaN)

1
차창으로 바람이 휘몰아친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어디로 눈길을 주어야 하나? 오른 쪽에는 나일 강이 있다. 강가에는 강가를 따라 세월이 흐르면서 길게 뻗어 나간 둔치가 보이고 왼쪽에는 카이로 시내의 건물들이 있다. 건물들은 높이가 다르듯이 건물들 사이의 거리도 다르다. 오른쪽에 배 한 척이, 왼쪽에 호텔 하나가 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돛 하나가 여기에, 높이 솟은 사원의 첨탑 하나가 저기에 있다.

노래들이 물결 위에서 춤을 춘다. 교회의 종 하나가 제자리에서 일요일에 울리기를 기다린다. 자동차의 라디오가 아침 열한 시를 알린다. 3월의 태양이 봄 공기를 희롱한다. 나는 혼란스러워 도망친다. 머리를 뒤로 던진다.

모든 식물들이 잘 자라 천지가 초록으로 물들어 가듯 나일 강은 큰 물줄기를 이루어 흐르기 시작했다. 자동차 뒤쪽 창문 너머로 시선을 돌리자 청명한 하늘이 보인다. 하늘은 화가 카림 압둘 마지드의 빌라에 이르는 길이 그려진 팔레트 위의 나를 위한 지도 같다.

신문사 문화부장인 샤으반 살리흐가 나를 위해 약속을 정하며 했던 말들을 떠올린다.

“카림 압둘 마지드는 경탄할 만한 화가라네. 사실 걸프 지역에서의 오랜 여행 때문에 그의?성격이 조금 까칠해졌네. 미술이 금기라더군. 낙후했지만 그는 회개하며 알라에게 용서를 구했고, 미술이 그리워 이집트로 돌아왔어. 자넨 다음 달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그의 미술전시회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는 최초의 인물이 될 것이네. 자네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진짜 화가를 상기시키게 될 것이고.”

신문사의 차량 기사가 카세트 녹음기에 여러 곡이 담긴 테이프로 바꿔 끼자 나는 웃었다. 선배 가수 샤으반 압둘 라힘을 능가했던 대표적인 대중가수 사으드 사기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장 대중적일 수 있는 사람의 손에서 음반시장을 여는 열쇠는 만들어졌다. 그는 ‘바보, 당신의 사랑으로’ 라고 노래하고 있었다.

“선생님, 도착했습니다.”

비슷비슷한 세 채의 빌라와 나일 강을 구분하는 잘 닦인 도로로 들어서기 위해 자동차를 왼쪽으로 꺾는 기사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들은 세 채의 건물들 가운데 있는 빌라로 향했다.

나는 시계를 봤다. 신문사를 떠나 화가 카림 압둘 마지드의 빌라, 또는 꾸밈없는 쿠피체로 그가 쓴 빌라 입구 옆 문패에 적힌 정원에 도착하는데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2
“나는 매우 단순한 인간입니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나 자신을 그들의 아들, 그들의 형제, 그들의 아버지로 여기며 평생을 살았어요. 나일 강의 배들을 그렸고, 연인들의 얼굴에 있는 기쁨도 그렸어요. 당신은 나를 기쁨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여행을 떠나기 전의 일입니다.”

독창적인 화가 카림 압둘 마지드는 한숨을 쉬었다. 강렬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체격은 보잘 것 없었다. 그의 피부는 태양이 작열하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검은 피부에 가까웠다. 그와 같은 검은 피부는 걸프 지역에서 보낸 수 년 동안의 세월 탓이리라. 그는 고통스런 시기가 떠오르는 듯 말을 멈췄다.

“당신은 내 생애를 여러 단계로 나눌 수 있어요. 졸업 후 바로 시작된 입문 단계는 약 25년 전입니다. 우리는 스승들과 서양의 위대한 미술가들로 인해 숨 막힐 지경이었어요. 우리는 드디어 모델들을 진지하게 그릴 기회들을 갖게 됐어요. 우리는 넘어지기 전의 계단 맨 아래 단에 서 있었어요.”
그는 벽 높이의 장서에서 화집을 가져와 웃으며 나에게 주었다.

“당신은 여기서, 사라진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것들 중 일부분을 보게 될 거예요.”

그는 손도 안 댄 그 지방 특산품 과자로 가득 찬 내 접시를 바라보았다.

“왜 안 먹습니까? 이것은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과자인데요. 나와 함께 일어납시다.”

그는 나를 반대편 발코니로 데려갔다. 발코니는 빌라로 들어가기 위해 왔던 길에 면하지 않았고, 빌라 뒤 들판을 굽어보고 있었다.

“저기, 이 분지의 끝, 작은 마을, 아니 농장이 있는데 ‘샤마위스’라는 이름이 이상합니다. 세상 어디에 있을 수 있는 이름이겠지만 사람들 마음속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아요. 타고난 성정 그대로의 시골사람들, 그들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나에게 가져다주는 사람들이예요. 시내에 갈 필요도 없고, 복잡한 상점들을 돌아다니지 않게 됐어요. 정말 좋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와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당신이 보고 있는 땅이죠. 여기 나에게는 이웃들이 있어요. 오른쪽에 한 명의 여자가, 왼쪽에 한 명의 남자가 살고 있어요. 그들 둘에 관한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죠. 알라의 가호가 있기를. 이 말이 그들 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화가는 나에게 이 세 채의 빌라가 여행가기 전에 매물로 나왔었고, 떠나 있었던 처음 2년 동안 저축한 돈으로 앞으로 살게 될 빌라를 살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가 수 년 간 살았던 곳의 이름은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름을 말하게 되면 마치 미칠 것 같다는 듯이 그는 말하지 않았다.

“거기서 나는 미술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쳤어요. 여기서는 강의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 가운데 미술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은 여학생은 없고 남학생은 한 명 정도 있을 수 있지만, 거기선 아니죠. 가족과 함께 해외에 살면서 미술의 가치를 알게 된 학생들은 아니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여러 곳에 지점을 둔 건축사무소를 열기 위해 학위에만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런 일을 하러 유럽의 엔지니어들과 우리의 엔지니어들이 옵니다. 학위가 면허죠. 나는 최고의 화가들과 엘리트 학자들과 함께 일했고, 우리들이 하는 일은 면허를 내주는 일이었어요!”

그가 나에게 정말 기이한 이야기라고 했다.

“어느 날 학장 댁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죠. 학장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과 그곳의 학생들, 그리고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것들을 길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우리들 중에 몇 달 전 그곳에 온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입이 걸고 거리낌 없이 말을 하는 사람이죠. 임기를 채우지 않고 사직서를 제출한 처장에게 그는 그날 밤 ‘강의실에서 나는 선생 역할을, 학생들은 학생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데 당신은 재단 이사장이라도 됩니까?’라고 말하더군요.”

화가의 어조는 수천 번도 더 자신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듯 흔들림 없이 일정했다.

“나는 해마다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나서 계약을 갱신했죠. 교수들이 매년 남아 있고 싶을 만큼 월급이 많지 않아 저축을 못했다는 건 맞는 말입니다만, 아내가 그곳에서 사망할 때까지 귀국 공포증은 나로 하여금 매년 계약을 갱신하게 했어요. 나는 외동딸의 양육문제로 어찌할 바를 몰라 혼란스러웠어요. 다행히 그러한 곤혹스러움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외국인 학교와 보모가 해결해 주었죠. 딸애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이집트로 돌아와야만 했거든요. 유달리 그 애가 제 아버지가 졸업한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싶어 했거든요.”

화가는 나의 표정에서 그가 본래 이야기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좀 이야기를 오래 끌었죠? 지금 여기 있게 돼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 나라에서의 고통을 잊었다지만 나는 문제들은 두고 떠나왔어요. 수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에도 있더군요. 결혼하면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더군요. 모르겠어요. 그게 내 죄인지 아니면 멀리 가보지 않은 자의 죄인지!”

전화벨이 울렸다. 화가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잇는 그의 표정에서 그가 안정을 되찾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마드, 자네 오늘 늦었네. 자네에게 훌륭한 청년 한 명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자네 언제 올 건가? 자네를 기다리겠네. 오는 길에 ‘움마’지 사오는 것 잊지 말게. 만족을 주는 유일한 신문이네. 출처들도 하나, 재앙들도 하나, 결말도 하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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