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부양 국회의원’이 ‘농부 강기갑’으로 돌아와 깨우친 매실밭의 조화
[아시아엔=최영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한 놈이, 큰 일을 우예 도모하겠는가?” 지난 1월 20~21일, 1박2일간 지리산 실상사에서 열린 연찬회를 다녀왔다. 이번이 세번째다. 도법 스님이 회주인 실상사라는 절 이름은 뜻이 깊다. “미몽에 빠져 허상이나 붙들고 만지면서 노닥거리지 말라!” 그런 뜻인가?
여기서 나는 강기갑 전 국회의원의 진면목과 만났다. 새로운 발견이다. “과거엔 큰 것, 예를 들면 ‘국가’나 ‘지구’를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고 위대하게 여겼다.” 강기갑은 “작은 것에서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못 느끼는데 큰 기(것이) 귀하다 느끼겠냐?”고 했다.
고요하고 좁쌀만한 씨앗의 속삭임을 느끼고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 겨자씨 하나가 나무가 되고 그 나무들이 모여 숲이 된다는 강기갑의 소중한 말들이다.
그곳에 벌레가 모여들고 새가 와서 깃을 치고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는 그 얘기들. 매실 나무를 기르면서 이런 진리를 깨닫는다고 했다. ‘깨우침의 일상화’가 바로 이런 거다.
어느 해 강기갑이 매실 나무 주변 잡초를 밑동까지 모두 베어버렸다. 떨어진 매실을 줍기가 불편해 잡초를 베어버리자 생태계가 무너졌다. 벌레가 없어지자 새도 오지 않고, 토양도 나빠져 매실은 튼실함을 잃었다. 잡초 하나 베었다고 무너져버린 매실나무 숲의 생태계!
강기갑의 정신이 번쩍 들게 그의 등줄기를 대자연의 죽비가 툭 내려친 거다. 그 다음해부터 밑동까지 베지 않고 결실을 거둘 때만 중간키만큼 버혔다(베었다). 그렇게 자연의 생태계를 존중하는 농법으로 영농하는 사천농부 강기갑이다. 그는 여전히 물질만능, 일확천금에 핏발 선 자본주의 가치관에 거리를 두려한다.
“자본주의, 100년도 안 되는 시간에 행복을 주는 것도 아닌데 계속 달린다….” 풍요나 편리의 측면에서만 들여다 보면 이 세상은 벌써 지상천국이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행복하지 않다 아우성이다. 왜 그럴까?” 되묻곤 한다. 강기갑은 1976년 가톨릭농민회를 시작하면서 농민운동에 본격 뛰어든다.
90년대 투신한 전농과 민주노동당이 연대하면서 농민대표로 배지도 단다. 가족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출마를 해 기적적으로 당선에 성공했다. “출마를 안하면 당에, 농민에게 배신자가 되는 거다 생각했지요.”
“이왕 나온 거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다”는 강기갑의 감회어린 회고다. “이방호라는 MB 오른팔과 붙었다. 개표 때 모든 기자들이 이방호쪽으로 몰려갔다. 그런데 당선됐다.”
강기갑은 국회에 간지 3년 만에 젖소 120마리를 처분해야 했다. 집에 갈 시간도 없었으니 당연히 농사는 망할 수밖에 없었다. 집중하는 성격 탓에 8년간 의원활동에만 전력투구 했다. 농사는 망했고, 소수정당에 있다보니 눈물도 많이 흘렸단다. 의원 때 총 84일간 단식했다. 그래도 ‘진보의 길’은 보람찼다.
강기갑은 “제가 마음은 착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다. 그런데 저를 ‘강성 중의 강성’으로 안다. ‘호통기갑’ 공중부양’이라고도 한다”며 쓴웃음 짓는 그의 수염이 흔들린다. “책상 치고, 난리 치고 그런 것만 기억하더라. 정치생명이 끝나도 ‘아닌 건 아니다’라 해야만 했다.”
강기갑은 “국회에 가보니까 서로 짜고치고 쇼하는 게 너무 많더라”고 푸념했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를 막으려고 발버둥치다 무염식 단식의 후유증으로 몸을 상했다. 그리고 여의도를 떠나 ‘사천 농부’로 돌아왔다. 그리고 체득한 게 있다.
정치입문 전에도 젖소 120마리, 매실밭 7천평에 밭농사, 논농사를 지었다. 강기갑은 쌀농사도 유기농법으로 80년대부터 EM(Effective Microoranisms)을 가지고 지었다고 한다. EM은 유익한 미생물을 조합 배양한 복합체. 당시 EM이 굉장히 비쌌지만 미생물에 눈을 떠 미생물농법을 고집했다. 이 농법을 하다 보니 먹이사슬간 상생과 우주의 조화를 깨우친다.
“고추농사를 짓는데, 진딧물이 새까맣다. 손으로 훑으면 1시간에 고추나무 30주도 못한다.” 그래서 포기하고 고추 보고 “이제 나는 모르겠다. 니가 알아서 해봐라” 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고추밭을 슬슬 피해 다녔다고 한다. 궁금해서 슬쩍 가보니 진딧물의 천적인 무당벌레가 몇 마리씩 생기더란다.
강기갑은 무당벌레에게 “니들이 이거 다 먹으면 배가 터질 낀데, 어느 세월에…”라며 비웃었다. 일주일 뒤 고추밭에 가보니 거기에 기적이 일어나 있었다. 진딧물도 무당벌레도 싹 없어지고 정리가 되어 있더란다. 진딧물이 많으니 무당벌레 개체수가 엄청 늘어났다. 순식간에 진딧물을 먹어치운 무당벌레들은 먹이를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기갑은 하늘을 향해 “기적이다!” 세번이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매실 밭의 잡초와 곤충, 새들의 생태계 역시 상생과 조화의 지혜로 다스렸다.
강기갑은 이번 실상사 연찬회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다 중앙분리대를 받고 큰 사고 날 뻔했다. ‘목숨을 건 지성’에 하늘이 감동해선지 바퀴만 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차체도 이상이 없었지만 목숨 걸고 온 건 맞다”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도법스님과 남곡, 여류, 강기갑을 비롯한 20여 참석자들은 ‘문명전환의 시대’에 치러지는 3.9대선에서 ‘전환의 정치’를 어떻게 이뤄낼지 머리를 싸맸다. 이남곡(본명 계천)은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3년 복역했다. 생명평화생태 운동과 고교 교사 등을 하다, 60 나이에 논어 공부해 귀농 지역운동 등을 했다.
여류 이병철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 87년 전국연합 조직국장과 이후 카농 귀촌귀농본부, 한살림 등을 통해 농민운동과 환경운동 1세대의 조직전문가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수제자로 꼽힌다. 남곡 여류는 도법스님과 지리산정치학교를 이끌고 있다.
이들 참석자들은 기후변화가 초래한 지구촌 위기(Climate Crisis)에 무관심한 주요 대선 후보들을 “직접 찾아가 설명하자”는 강기갑의 제안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대선 유력 후보들이 발등의 불인 기후변화가 촉발한 위기, 지구촌 생명들의 일대 위기에 관심을 기울이길 날카롭게 촉구한다. 이렇게 내달리다간 50년 뒤 지구촌에 생명이 절멸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