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⑦] 박종규 KSS해운 창업자 “기업인은 도덕관념, 공공성이 있어야”
나는 이런 기업가와 동업하고 싶다
[아시아엔=박영옥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주식농부, 스마트인컴 대표] 얼마 전까지 오디션 프로그램 전성시대라는 기사를 자주 봤다. 전국에서 노래 좀 한다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치열한 경쟁을 거친다고 한다. 수십만명의 지원자 중 기획사의 선택을 받는 사람은 몇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 가수로 데뷔하는 사람은 더 적을 것이고, 데뷔 이후 가수로서의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은 더 적다. 수십만 명 중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 방법이 과연 최선일지는 알 수 없지만 길 가는 사람 중 아무나 붙들어 가수를 시키는 것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또 가수의 아들이나 딸을 데려다 연습을 시키는 것보다 낫다. 길 가는 사람 중에는 음치가 섞여 있게 마련이고 부모가 노래를 잘한다고 자식도 노래를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경쟁을 통해 올라왔다면 적어도 노래는 잘할 것이다. 가창력을 증명한 후 자신만의 매력을 가진 사람이 승자가 된다.
물론 예술과 경영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다만 이런 경쟁 시스템이 경영자를 선택할 때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우리에게 낯설 뿐 그렇게 황당한 시스템이 아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전 CEO 이름은 제프리 이멜트다. 굳이 이름을 밝히는 이유는 그가 GE를 창립한 에디슨의 후손이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 이멜트는 1982년 GE플라스틱에 입사했다가 1989년에는 GE가전의 부사장에 취임했고 1991년에는 국제마케팅 및 생산담당 부사장이 됐다. 1997년에는 GE메디컬시스템의 사장이 됐고, 마침내 2001년 잭 웰치의 뒤를 이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GE는 성과가 뛰어난 직원 중 한 명을 골라 CEO에 임명하지 않았다. 1993년에 20명의 후보명단을 작성했고, 이멜트는 그중 한 명이었다. 후보 20명은 각각 여러 사업부를 맡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받았고 부족한 사람은 탈락했다. 3년 후에는 20명 중 15명이 탈락했고 나머지 5명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CEO가 된 사람이 이멜트다.
최초 20명의 명단은 어떻게 작성되었을까? 추측건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명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중 고르고 골라서 20명을, 그중에서 또 고르고 골라 5명을, 다시 그중에서 최고를 골라 경영자 자리에 앉혔다. 그는 에디슨의 후손도 아니었고 잭 웰치의 아들도 아니었다.
경영 능력은 유전되지 않는다. 타고난다 하더라도 유전되었는지 알려면 시간을 두고 검증해야 한다. 또한 똑같은 능력이더라도 세상이 바뀌어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는 능력도 있다. 기업을 반석에 세운 창업자라고 항상 좋은 경영자일 수는 없는 이유다. 개인 기업은 물론이고 주식회사조차 대주주의 사유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기업은 사유물이 아니다. 여기서 한 기업인의 말을 경청해볼 필요가 있겠다.
“기업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다. 재산 상속은 가치가 낮은 것이고 그보다 더 못한 것이 기업의 경영권 상속이다. 기업은 경영자와 종업원의 합동 작품이지 자식이 기업 발전에 무슨 공헌을 했는가?” <한겨레21> 2005년 1월 4일
“기업가정신이 사라졌다. 2세, 3세로 이어지면서 편하게 기업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나라 경제를 이끄는 기업인은 그냥 사인이 아니다. 도덕관념, 공공성이 있어야 한다.” <포브스코리아> 2017년 1월 23일
박종규 전 ㈜KSS해운 회장의 말이다. 그는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았다. 대주주이지만 인사권과 자금집행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주고 회사 일에도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문경영인의 힘이 약해질까 봐 회사에도 나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기업가정신을 가진 경영자
이를 두고 “자기 회사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혹은 “자식에게 물려줬다가 망하더라도 내 회사인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반문한다면 아직도 주식회사의 개념을 모르는 것이다. 또한 무엇이 상식인지, 세상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남의 집 가정사에 끼어드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좋은 아버지도 아닌 것 같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자기가 창업한 회사를 정말 아끼고 기업가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경영자라면, 자식을 시험에 들게 해야 한다. 몇억원 정도 쥐어주고 혼자서 사업을 일궈보게 한 다음 그 성공 여부에 따라 회사 승계를 생각해보겠다는 각오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경영자인 아버지의 귀한 아들이라는 것 외에 검증받은 것이 없는 사람이 경영자가 되는 건, 면허도 없는 전직 운전수의 아들이 핸들을 잡은 버스가 고속도로를 누비는 아찔한 상황과 다를 게 없다. 핸들은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잡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기업의 기반이며 기업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재화를 제공한다. 기업이 우리 사회의 기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기업의 수장은 누군가의 아들이 아니라 그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나는 기업가정신을 가진 경영자를 원한다.
그런 경영자와 동업하고 싶다. 대주주의 아들과 경영 능력 있는 사람 중 누가 기업 경영을 잘할까? 어떤 경영자가 많을 때 우리 경제가 활기를 띄게 될까?
참 쉬운 문제다. 결론은 정해져 있다. 이제 그 결론이 실행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비상식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자식 사랑은 가정에서만 가능하도록 “만들면 된다.”
한 사람의 아들 사랑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또한 기업의 성장을 위해 일해야 할 똑똑한 사람들이 아들 사랑의 선봉장이 되는 것 또한 상식이 아니다. 게다가 기업이 아니라 아들을 위해 경영을 하다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경영자라면 이미 경영자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경영자 자격이 없는 사람이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지 못한 사람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다면 이 또한 황당한 일이다.
이같은 비상식적인 상황이 벌어지는데도 “세상이 원래 그렇지”라며 푸념만 한다면 “내 재산이었던 것을 당신이 가져가도 나는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편으로는 상속증여세율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30억원 이상의 재산을 상속할 경우 최고 50퍼센트의 상속세율이 부과된다. 특히 기업의 최대주주가 보유주식을 물려줄 때는 할증세율이 적용되어 65퍼센트로 높아진다. 소득세까지 포함하면 평생 번 돈의 70퍼센트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이처럼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이 기업 상속과 관련된 온갖 편법이 난무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상속증여세를 깎아준다고 해서 합리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정직하게 세금을 낸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일정 부분 도움은 될 것 같다.
오래도록 누적된 ‘문화’가 한두 가지 조치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현시킬 방법에 대한 논의는 중단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