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의 돈생각 27] 기관·외국인투자자를 이기려면
[아시아엔=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주식, 투자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주식, 농부처럼 투자하라> 저자] 주식시장을 경험한 투자 선배들 중에는 주식시장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마음은 진심이다. 여차하면 도시락 싸들고 말릴 기세로 절대 주식 투자하지 말라고 한다.
그들에게 주식시장은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 그리고 대주주의 음모가 횡행하는 곳이다. 개인 투자자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으며 그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처절한 실패담을 들려주기도 할 것이다.
만약 그런 선배가 있다면 왜 그 기업의 주식을 샀는지, 기업의 역사에 대한 공부는 얼마나 했는지 등을 물어보시라. 아마 제대로 답하지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당시에는 좋았어. 추천하는 사람도 있었고”라거나 “대주주가 농간을 부렸다” 정도의 답이 돌아올 것이다.
또 하나 이렇게 물어보라. “투자한 이후에 무엇을 했는가?” 아마도 그는 ‘기업’이 아닌 ‘주식’과 서툰 연애를 했을 것이다. 주가가 오르면 열렬히 사랑하다가 하락하면 증오하는 ‘애증의 투자’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개인 투자자가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를 이길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맞다. 자본, 정보력, 인력을 비롯해 주식투자에 쏟을 수 있는 시간까지 절대적으로 열세다.
“개인 투자자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나는 다음의 질문으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꼭 그들과 싸워야만 하는가?”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와 싸운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주식투자를 수급(需給)으로 본다는 의미다. 즉 기업의 본질인 가치를 평가해서 투자하지 않고, 누가 사고파는 지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주식의 본질인 기업은 여기에 빠져있다.
매년 매출이 늘고 수익도 늘어가는 기업이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외국인들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주가가 급락한다고 하자. 그래도 기업의 수익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면 좋은 기업의 주식을 싸게 매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반대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전망이 불투명한 기업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누군가 대량 매수한다고 하자. 그러면 기업의 가치가 갑자기 올라가는가? 전업투자자로 일하고 있는 나도 외국인과 기관이 왜 사고 파는지, 그들의 자금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야 ‘이러저러한 이유로 국내에 자금이 유입되었구나’라고 추정하는 정도다. 그나마 이것도 전체적인 그림일 뿐이고, 개별 기업의 어떤 면을 긍정적으로 봐서 매수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알기 어렵다.
무엇보다 기업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수요와 공급’ 법칙에 흔들리면 작전세력의 먹잇감이 되기에 딱 좋다. 갑자기 매수세가 폭증할 때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일주일 내내 상한가를 갈 만큼 대형호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호재는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모두가 아는 호재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나의 기회가 아니다. 외국인, 기관, 작전세력의 수급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칼자루를 내주고 시작하는 싸움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의 교훈은 잘났다고 자만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빠른 자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이 우화를 읽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도 아니고 단 한 번의 경기로 끝나지도 않는다.
한 번 잠을 잔 토끼는 다음에는 결승점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로 잠을 자지 않을 것이고 더 나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애초에 거북이가 자신에게 불리한 이 경기를 승낙했다는 데 있다. 토끼가 약을 올리며 달리기 경주를 제안했을 때 거북이는 이렇게 대응했어야 한다.
“좋아! 그럼 내일 해변에서 만나. 저 앞에 보이는 섬까지 왕복하는 거야.”
거북이의 다리는 뜀박질이 아니라 헤엄에 최적화되어 있다. 왜 짧고 굵은 다리로 달리기 경주를 하는가. 이는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왜 거대자본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금액으로 수급이라는 경주를 하는가. 왜 최강의 정보력을 가진 그들과 정보력이라는 경주를 하려고 하는가.
개인 투자자들은 ‘시간’이라는 종목의 경주를 해야 한다. 이는 장기투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관과 외국인(사실 말이 ‘외국인’이지, 세계인의 돈이 모인 ‘거대자본’이다)은 팔아야 할 때가 있고 사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마음에 드는 기업,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기업이 나타날 때까지 투자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주가가 올라도 매도하지 않고 더 기다릴 수 있다. 평생 가지고 있다가 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도 있다. 심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느긋함’이다. 도가 튼 느낌이라고 해도 좋을 거다. 기업을 꼼꼼하게 살피고 지켜본 다음에 투자해도 늦지 않다.
투자를 서툰 연애처럼 해선 안된다. “왜 좀더 사랑해주지 않느냐’고 칭얼대는 것이나 일단 투자해 놓고 ”왜 주가가 상승하지 않느냐“고 투덜거리는 것이나 미성숙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길게 지속하면서 그 깊이를 더해가는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은 정성을 쏟아야 가능하다. 투자도 그렇다. 기업의 주인이 된 다음에 관찰과 소통이라는 정성을 쏟아야 시간이 여러분의 편이 되어준다.
현란하게 오르내리는 시세는 여러분에게 지금 당장 경주를 시작하자고 유혹한다. 당신이 불리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고, 인생 모르는 거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딱 봐도 짧은 건 굳이 대볼 필요가 없다. 인생 모르는 거라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올 확률은 극히 낮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그래서 ‘의외’인 것이다.
서두를 것 없다. 충분히 공부하면서 투자해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내실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해 공부를 하던 중에 시장이 기업의 가치를 인정해서 주가가 제 가치까지 상승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헛된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다. 여러분의 실력이 상승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