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칼럼] ‘적정유보초과세’ 도입 더 늦기 전에···
세상은 늘 변한다. 그에 맞춰 법과 제도도 적절하게 고쳐줘야 막힘없이 흐른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지만 시대의 요구에 맞춰 법과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과거 고도성장기 때 우리나라 기업들은 늘 자금난에 허덕였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직전, 상장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은 평균 250%를 넘었고 대우나 국제그룹 등은 500%를 넘기도 했다. 그래서 IMF가 왔고 많은 기업들이 부도났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이제는 완전히 딴판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삼성그룹은 50조원 가량의 현금을 쌓아놓고 있다고 한다. 2013년 우리 국가예산의 15%에 해당한다. 그 밖에 많은 기업들이 막대한 현금을 유보해 놓고 있다. 이제는 상장사 부채비율이 평균 120% 내외로 대폭 낮아졌다. 70% 이하인 중소, 중견 우량기업도 부지기수다.
기업은 늘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유보금 수준은 과도하다. 기업들이 투자는 하지 않고 돈을 쌓아놓고 몸사리고 있는 형국이다. 나아가 위기 대비 이외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도 보인다.
대주주들은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막대한 현금 유보금을 그대로 쌓아놓은 채 증여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자사주를 사들여 유통주식의 씨를 말리거나 초저배당 정책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자사 주가가 거래 없이 낮은 가격에 헤매도록 방치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시가배당률이 매우 낮아 일반투자자들이 주가차익을 좇는 단기매매 패턴이 강한데, 이를 심화시키는 투자환경을 사실상 이들이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주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배당정책을 쓰면 그 돈은 다시 소비되고 투자되며, 우리 자본시장의 투자매력도가 높아져 외국인이 더 들어오게 되고 이런 선순환이 계속되면 경제도 잘 돌아가 모두가 윈윈하는 바람직한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알토란같은 사업과 쌓아놓은 현금을 싼값에 증여할 것인가가 유일한 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적절한 해결책이 있다. 바로 ‘적정유보초과세’ 도입이다. 적정유보초과세란 배당으로 인한 고율의 소득세를 회피하기 위하여 법인이 합리적인 사업적 필요 수준 이상을 유보할 경우 이 유보금액에 법인세를 추가하여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법인세는 향후 배당으로 소득세가 추가로 부과될 예정이므로 소득세에 비하여 낮게 설정된다. 즉, 법인형태나 개인사업체나 세금부담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IMF를 거치면서 외국과의 경쟁을 위해 법인세를 대폭 낮추면서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과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배당소득세의 금액이 커져 잉여금을 가능한 한 기업에 유보시킨 후 상속하거나 매각하는 것이 유리해졌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적정유보초과세로 기업 이익의 상당부분을 배당으로 유도하고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법인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소득세 최고세율과 법인세율의 변화추이를 보면, 소득세 최고세율은 1997년 40%에서 2012년 36%로, 법인세율은 1997년 28%에서 2012년 20%로 각각 하락했다.
이에 따라 배당을 했을 경우 배당소득세의 부담이 대폭 증가해 대주주 입장에서 배당을 꺼리게 되었다. 상속을 하지 않고 매각을 할 경우 양도소득세 22%(주민세 포함)와 비교해도 배당소득세 36%는 너무 높기 때문에 배당을 꺼려하고 잉여금을 유보하려 할 것이다. 반대로 국가 측면에서 엄청난 세금이 탈루되는 현상이 생기게 된다. 배당을 하지 않아 패널티를 물릴 경우 이에 따른 세수가 연간 3조~4조원 가량 될 것이라는 계산도 있다.
과거 우리나라도 비상장대기업이 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적정한 규모 이상 내부 유보를 시킬 때 초과 유보분의 15%를 법인세로 추가 과세한 적이 있다. 이는 비상장대기업의 대주주가 사내유보를 통해 소득세를 탈루하는 행위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였는데, IMF 때 없앴다.
외국의 사례를 보자.
<미국>
미국의 일반 주식회사는 사업확장이나 선의적인 이유로 수익금을 주주에게 분배하지 않고 내부에 축적할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사업상의 필요 이상으로 잉여금을 축적하면 개인소득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어 적정유보초과세가 부과된다. 합리적인 사업의 필요성은 구체적이고 실행가능한 계획 혹은 차후에 실제 계획의 수립 등으로 입증된다. 신고 때 적정유보초과세를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과세 관청에서 사후에 조사로 적정유보초과세를 부과하게 된다. 이에 대한 세율은 2002년 이전에는 39.6%의 고율이었으나 2003년 이후는 15%로 낮아졌다.
<일본>
일본은 동족회사(오너기업)에 적정유보초과세를 부과한다. 동족회사라 함은 소위 말하는 오너(owner)기업으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회사와 개인의 의사결정이 동일한 기업을 말한다. 구체적 분류는 세 가문의 특수관계인의 지분 합계가 50%를 초과할 경우를 의미한다. 이에 적정한 유보(과세소득의 약40%)를 초과한 유보에 대하여 10~20%의 누진 적정유보초과세가 부과된다. 다만, 설립한 지 10년 이내의 중소기업과 신사업 창출촉진법의 인정사업자는 제외된다.
<대만>
대만은 자본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초과하는 유보금에 대해 10%의 법인세를 추가로 과세한다.
<유럽국가>
프랑스, 영국, 독일은 적정유보초과에 대한 세금은 없다. 그러나 배당소득에 대한 이중과세 방지제도로 배당을 했을 경우 소득세 부담이 거의 없도록 하고 있어 배당률이 매우 높다.
이와 같이 주요 선진국은 물론 대만도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우리도 과거에 경험(비상장기업)한 바 있는데, 현재 이를 도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후진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제도 도입의 경제적 효과는 여러 면에서 매우 크다.
첫째, 용처가 없는 돈을 배당함으로써 돈이 필요한 곳으로 흘러들어가게 되고 이에 따라 경제적으로 자원배분이 된다.
둘째, 경기활성화에 많은 도움을 준다.
셋째, 세금징수금액이 크게 늘어난다.
넷째, 배당액의 증가는 대리인비용을 감소시켜 가치투자를 유도한다.
다섯째, 배당액 증가는 주가의 급등락을 완화시켜 준다. 마지막으로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을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개인소득증가율에 비해 기업소득증가율이 1.5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현재 기업은 부자이고 개인은 가난하다. 부자인 기업이 투자를 늘려 고용창출에 힘쓰는 한편, 그래도 남아도는 유보액은 적절하게 배당하여 자원배분을 통한 경제의 선순환에 기여토록 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국민들이 우리 기업에 투자를 하고 우리 경제도 활기를 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