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칼럼] 상속증여세법, 상장사 ‘합법적 탈세’ 부추긴다
현재 상속증여세법(이하 상증법)은 “상속 및 증여재산은 상속을 개시한 때의 시가에 따라 평가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과거나 미래의 시가를 기준으로 상속·증여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지극히 상식적인 법을 상장사에 적용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예를 하나 보자. A사는 1970년 설립, 1996년 상장된 제지회사다. 간단하게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2012년 말 기준 매출액 1132억원, 영업이익 165억원, 당기순이익 84억원을 기록했고 자본금 110억원에 자기자본은 1018억원의 알짜 중견기업이다. 특히 종업원이 104명에 불과해 노동생산성이 매우 좋은 회사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A사의 시가총액은 2월18일 현재 391억원에 불과하다. 이나마도 지난 2012년 8월12일 시총 244억원보다 약 60% 오른 것이다. A사의 2012년 실적 기준, PBR과 PER은 각각 0.39배, 4.7배로 매우 저평가되어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회사의 주가는 성장성과 수익성 외에도 배당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A사의 6년간(2006~2011년) 배당을 살펴보니, 2006년과 2007년 각각 액면가 5000원 기준 20%의 배당을 한 반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5~2%의 저배당을 했다. 2008년과 2010년 순이익이 각각 7억, 11억원 가량이었기에 이해가 된다. 하지만 2009년과 2011년은 각각 45억, 4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저배당을 할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편, 회사의 주가는 순이익이 60억~70억원대를 기록했고 배당률도 높았던 2006, 2007년에 주가가 급등하여 2007년 8월 3만9800원으로 사상최고가를 기록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배당정책은 대주주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A사의 대주주는 왜 저배당 정책을 고집해 주가를 떨어뜨린 것일까. 필자는 증여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월 A사의 창업주는 자신의 전체 지분(51.28%)을 부인에게 전격 증여했다. 증여시점을 제대로 안 알려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현재의 회사 가치가 1000억원에 달하고 나름 경쟁력과 노동생산성이 좋아 앞으로도 잘 경영하면 자본금 110억원에 매년 50억~100억 원의 순이익을 낼 수 있는, 미래가치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평가되는 알짜 회사의 경영권 지분 51.28%를 단 돈 약 200억원에 넘긴 것이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성공적인 증여’를 한 것이지만 과연 이것이 상증법의 취지에 맞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회사의 대주주가 마음만 먹으면 수천억원의 가치가 있음에도 배당정책과 불성실공시, 유통주식수의 감축 등 기타 여러 사유로 투자자들을 외면시켜 주가를 저평가 상태로 왜곡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기업도 있다. B사는 연 매출액 1800억원, 세후순이익 100억~150억원짜리 피혁 회사다. 자본금은 342억원으로 조금 많지만 자기자본도 1381억원으로 알짜 회사라 할 수 있다.(이상 2012년 3분기 기준).
이 회사는 특별한 설비투자없이 유지보수만으로도 외형성장이 가능한 상태에서 매년 자사주매입에 돈을 쓴 나머지를 차곡차곡 이익잉여금으로 쌓아둔 결과, 이익잉여금이 자기자본 대비 82.0%인 1132억 원에 달한다. 따라서 A사의 실질 주당순자산은 약 3만8310원 가량 된다. 2011년 회사의 EPS가 2784원이므로 현재가(2월18일 종가)기준 PER은 7.5배, PBR은 0.54배에 불과하다.
B사 역시 2000년 이후 평균 배당률이 2%에 불과하다. 지난 12년간 회사 돈으로 자사주를 꾸준하게 매입하여 자사주비율이 대주주지분율(2012년 9월말 기준 25.9%)보다 많은 45.8%이다. 자사주에는 배당을 할 수 없으므로 실질 배당성향은 2~4%에 불과하다. B사는 아이템이 천연가죽이라는 점, 수급의 안정성(우피는 인간이 쇠고기를 먹는 한 끊임없이 생산된다), 쓰임새의 다양성과 고부가가치화의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대단히 안정적으로 성장해 수익성을 낼 수 있는 기업이다.
문제는 회사를 독단적으로 경영하는 대주주에게 있다. 이들에게는 소액주주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지난 12년간 자사주를 45.8%나 모아 대주주 지분까지 합치면 71.3%를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 회사의 일평균 거래량이 1만주가 되지 않는 날이 허다 하니 그 이상의 주식이 대주주와 관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에게 점점 관심이 멀어지고 주가의 변동성이 높아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완전소외주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같은 이유는 위의 제지사와 마찬가지로 상속과 증여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대주주의 구성을 보면 1대주주(회장)와 아들 2명으로 되어 있다. 회장은 아직 60대로 경영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으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지분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상증세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주가가 낮을수록 좋고 주식유동성도 낮아야 주가형성이 유리할 것이다. 이를 위해 양호한 수익성과 현금흐름을 갖춘 자산주임에도 불구하고, 자사주를 사들여 주식의 유동성은 낮추고 변동성은 높여 회사를 완전소외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장회사들이 의외로 많다. 또 대부분 이런 회사들은 우량회사들이다. 따라서 상증세의 과표기준인 주가 평가제를 바꿔야 한다. 예로 PBR이 1 이하인 회사의 경우,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액보다 낮으면 순자산가액을 과세표준으로 삼자는 것이다. 그래야 적어도 회사의 가치가 순자산가액 이상이 돼 어느 정도 주가가 정상화되지 않겠는가. 또한 상증세 과표의 현실화로 세입이 증가하여 최근의 복지재원 마련에도 일조를 할 것이다.
자본시장이 바로 서야 한다. 대주주는 물론 투자자들이 함께 가치를 공유하는 시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정하다. 위의 사례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자본시장의 신뢰는 더욱 잃게 되고 장기, 가치투자는 요원하게 된다.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우리 사회의 불공정, 불투명, 불합리를 털어내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이다. 앞으로 기업경영시대에 이런 일들이 더 많아질까 두렵다. 입법관계자와 세금을 징수하는 관계자는 한번 재고해 볼 문제다. 공정한 세금징수가 우리 사회를 활력 있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