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 칼럼] 주총 토요일 열면 안 되나

‘기업투자’ 아닌 ‘주식투자’ 되는 이유

식당의 단골손님이 어느 날부터 오지 않는다면 식당의 기본인 음식의 질이 나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보통 처음 개업을 했을 때는 이문을 줄이더라도 질 좋은 식재료를 준비한다. 그러다가 손님이 많아지면 돈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루 매출이 얼마고 식재료에 들어가는 돈을 10%만 줄여도 한 달이면 얼마라는 계산을 하는 것이다.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도 제 돈 내고 밥을 사먹는 손님들은 귀신같이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래서 오래도록 손님이 많은 식당의 주인들은 직접 식재료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 어떤 곳은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식재료를 찾지 못하면 아예 그날의 메뉴에서 빼버리기도 한다. 식당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다.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장기적인 미래는 없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울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충고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기본은 ‘너무 기본적인 것’이라서 잊어버리기 쉽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언이라도 하다가는 ‘내가 그런 것도 모를 것 같으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당사자는 기본적인 것이라서 잊고 그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은 핀잔 듣는 것이 싫어서 입을 다문다. 기본이 잊혀지기 좋은 조건이다. 전업투자자인 나로서는 주식시장에 대한 기본을 자주 생각하고 그럴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나 역시 ‘주식투자를 한다’는 말을 간혹 쓰기도 하지만 이것은 기본에 충실한 표현은 아니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기업에 투자를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주식투자를 하는 게 아니고 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니나 다를까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그런데 우리 주식시장에는 정말로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많다. 기업의 내용은 보지 않고 소문을 듣고, 무슨 테마주라고 해서 주식을 산다. 그러니 이들은 기업이 아니라 주식에 ‘투기’하는 사람들이다. 같은 맥락이지만 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기업의 주인 또는 동업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주식회사는 좋은 사업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불특정다수로부터 출자를 받은 자금을 기반으로 사업을 해서 그 성과가 나면 함께 공유하자는 약속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당신의 기술과 나의 자금을 합쳐서 사업을 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까운 지인들은 이제 웃어넘기지만 처음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무슨 그런 순진한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대주주가 제 마음대로 하면서 동업자 취급을 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동업자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도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현재 국내 소액주주들은 대주주와 그들이 임명한 경영인들이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이익을 독식하는 행위로 인해 제대로 된 분배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실 경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받고 있다. 그래서 더욱 ‘투자는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라는 기본이 중요하다.

소액 주주 평일 오전 주총 참가 어려워

주인만이 자신의 권리를 찾고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은 신용이 바탕이 된 사회다. 이러한 신용의 바탕위에 인간의 성취욕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제도가 자본시장의 꽃이라고 하는 증권시장의 주식회사제도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신용은 그냥 공짜로 세워지지 않는다. 신용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용이 지켜지지 않을 위험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견제와 감시라는 가드레일이 있어야 신용이라는 자동차가 탈선하지 않는다. 그러니 투자자라면, 아니 주주 혹은 동업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바야흐로 주총시즌이다. 소액투자자들 대부분이 주총 참여는커녕 언제 열리는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평일 업무 시간에 열리는 주총에 참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아예 포기를 한다면 주총은 영원히 평일 업무시간에 열릴 것이다. 나는 주총이 기업의 주인들과 경영자 및 직원들이 1년 만에 만나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1년간의 사업에 대한 평가를 하고 앞으로의 1년을 도모하는 자리다. 좋은 성과가 났다면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경영자가 나와 해명을 하고 필요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1년에 한 번 있는 주총인데 토요일에 열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언제까지 주인이면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을 수는 없다. 보유 주식의 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 1주를 갖고 있더라도 주인은 주인이다. 소액주주 개인의 투자금액은 전체 시가총액에 비하면 미미한 액수다. 그렇다고 그 돈의 가치가 미미한 것은 아니다. 볍씨 한 가마니를 파종했을 때 가을에 거둬들일 수확은 수십 가마니에 이른다. 전횡을 일삼는 대주주에 비해 한 개인투자자의 힘은 너무나 약하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다. 의지만 있다면 ‘개미들의 연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소액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가 개선될 기미도 보인다. 새 정부는 유명무실해진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기로 했단다. 또 미국, 일본 등에서는 40% 이상의 기업이 시행하고 있는 전자투표제도 시행토록 할 방침이라고 한다.

2015년에는 대주주의 기업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변질된 섀도우 보팅 제도도 폐지될 예정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는 있으나 그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2011년 한국상장사협의회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73.2%의 상장사가 섀도우 보팅 제도을 존속시켜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전자투표 이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한 기업은 7.3%에 불과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12월 결산 상장사 124개 가운데 이달 셋째, 넷째 주에 주총을 여는 곳이 84개나 된다.

이렇게 주총을 같은 날에 몰아서 하는 이유는 뻔하다.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를 최대한 방해하겠다는 것이다. 아침 9시에 주총을 여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대주주들은 ‘민주적인 상장사 경영’을 원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를 원활하게 하는 제도들을 막거나 늦추려 할 것이다.

소액주주들에게 유리한 제도의 정착 시기는 우리의 관심과 감시에 비례할 것이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그냥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도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식의 기본을 잊지 않고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그래서 주총이 진정한 주주들의 축제가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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