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 칼럼] 얼어붙은 주식시장, 그래도 봄은 멀지 않다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주식, 투자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저자] 최근 몇 개월 사이 증권계좌에 표시된 잔고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필자가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의 주가가 줄줄이 떨어졌다. 지난 8월과 비교하면 800억원 이상 차이가 난다. 적지 않은 금액인 만큼 정신적인 충격과 속 쓰림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충격과 속 쓰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타까움과 답답함으로 변해갔다.
필자가 1%, 혹은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어떤 기업들은 몇 개월 사이에 시가총액이 5천억원 이상 줄어들었다. 시가총액은 시장에서 평가하는 기업의 가치다. 그렇다면 몇 개월 사이에 이 기업들의 가치가 5천억원 줄어든 것일까. 필자는 아직까지 그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미래가치, 수익구조, 사업모델은 내가 투자했을 때와 다르지 않다. 내가 투자한 이유는 여전히 유효하다. 필자는 아직까지 투자를 철회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저렴한 가격에서 지분을 늘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필자는 기업의 치명적인 약점이라도 발견한 듯 서둘러 주식을 매도한 분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 때문에 해당 기업의 주식을 샀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팔았는지. 어떤 악재가 있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는 필자도 알고 있다. 필자가 금융당국 혹은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보유한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다는 루머가 있었다. 그런데 필자는 경영자가 아니다. 미래의 비전도 아니고 수익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핵심역량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다. 설령 그 루머가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기업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다. 무엇 때문에 매수했고 무엇 때문에 매도했는지를.
책이나 강연에서 필자가 투자한 기업을 소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제는 언제나 “시장과 기업을 믿고 여러분이 아는 기업에 투자하라”는 것이었다. 주식농부가 아니라 기업을 보라고 했다. 필자가 해당 기업의 가치를 높게 보는 이유에 동의가 되면 투자를 하라는 것이었다.
“주식농부는 핵심기술도 아니고 경영자도 아니다. 그가 검찰조사를 받든 팔고 나가든 기업의 가치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보유지분이 많으니까 일시적인 하락은 있겠지만 곧 제 가치대로 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좋은 기업의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5년간 몇 권의 책을 내고 장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강연을 다녔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필자 말의 본질을 듣지 않은 것 같다.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커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도 전혀 효과가 없지는 않다. 종종 손으로 쓴 편지를 받는데 최근에 받은 편지는 필자로서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필자는 책에서는 물론이고 강연을 할 때마다 주주총회에 꼭 가보라는 당부를 한다. 편지를 보낸 분은 이런 필자 말을 듣고 새벽에 일어나 서너 시간 걸리는 주총장까지 물어물어 찾아갔다고 한다. 난생 처음 가는 주총은 고작 15분 만에 끝났다. 직원들과 관계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있었고 냉대도 심했다. 돌아오는 길에 왜 여기에 왔나 싶어 눈물까지 났다고 했다. 주식농부라는 자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오기가 생겨 8, 9번을 더 가보았다. 이제는 단 15분이라도 주총을 다녀오고 나면 뿌듯하고 기업의 미래가 그려진다고 한다. 회사 사장님의 얼굴이 떠오르고 기업현장이 떠오르고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분이 필자가 추천한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보유하고 있었더라도 필자에 대한 소문을 듣고 팔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는 그 자신의 기준에 따라 투자할 것이다. 그리고 필자도 과거에 투자해왔던 방식대로, 미래에도 농부의 철학대로 투자해나갈 것이다.
단풍철인가 싶더니 벌써 겨울이 왔다. 며칠 전에는 눈보라까지 날렸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곧 추위에 익숙해지겠지만 기온은 삼한사온을 오가며 더 떨어질 것이다. 겨울이다. 필자는 다르게 보지만 지금이 증시의 겨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싶은 때이다. 그러나 아랫목에서 이불을 걷고 나갔을 때는 이미 수확이 끝나가는 계절이기 쉽다. 경제 전반의 상황도 살펴야하지만 결국 우리가 투자하는 대상은 개별기업이다. 경제가 어려워질 거라고 확신한다면 불황에 잘나가는 업종을 찾으면 된다. 위기를 이겨낸 기업은 그 이후에 더욱 크게 성장한다. 증시의 절기로 본다면 지금이 오히려 파종을 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