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의 돈 생각①] “죽을 때까지 돈 걱정 하시렵니까?”

“당신은 죽을 때까지 돈 걱정을 하시겠습니까?” “욕망이 앞서는 사람은 요행수를 바라면서 불평으로 인생을 허비하고, 의지를 가진 사람은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주식농부’로 잘 알려진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가 늘 던지는 질문이다. 기업의 가치에 투자하는 ‘농심투자법’으로 연 50% 이상의 투자수익을 거두며 ‘주식농부’로 널리 알려진 박영옥 대표가 <아시아엔>에 글을 연재한다. 그는 “주식이 아닌 기업에 투자했기 때문에 행복한 투자자가 될 수 있었다”며 “농부가 볍씨를 고르듯 좋은 기업을 골라 투자한 뒤 성과를 공유하라”고 말한다. <편집자>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지금의 20~30대 청춘남녀가 노년층이 되었을 때는 100세 넘긴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될 것이다. <아시아엔> 독자 중에서도 형들이 자꾸 심부름 시킨다며 투덜거리는 90세 노인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2014년 세계보건기구 발표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 81세를 기준으로 잡아도, 돈 걱정에 시달리며 보내기에 인생은 너무 길다. 내가 여섯살 때 아버지가 몸져누우면서 가세는 급속도로 기울었다. 일곱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빤한 살림살이의 시골집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안이 되었다.

지게를 지고 3km 넘는 거리를 걸어 땔감을 해왔고, 방학 때는 광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6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첫번째 중학교 등록금을 대주시지 않았다면 초등학교가 최종 학력이 될 뻔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서는 3년여 동안 섬유가공 공장에서 일했다. 그 후에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문 팔기를 했다. 또래 아이들이 장난감 사달라고 길바닥에 드러눕던 나이에 나는 광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말이 입시지옥이지 공부만 하는 게 뭐 어려운가?

나는 12시간 동안 화공약품에 절어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오해마시라. 이런 종류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지나온 세월이 다르면 경험도 다르다. 당시 내가 했던 고생 역시 또래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콧노래 부르면서 지게를 진 것은 아니지만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이런 긍정적인 태도가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면 무기요 특기라면 특기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처럼 가난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일까? 나는 경험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배낭여행처럼 사서 하는 고생, 즉 스스로 선택한 경험이다. 이런 경험은 많이 하면 할수록 인생의 풍성한 자산이 된다. 고생을 많이 했음에도 누가 즐거운 추억을 말해보라고 하면 그 기억을 먼저 떠올린다.

두번째는 가난처럼 불가피한 경험이다. 개런티가 제법 나오는 아역배우가 안 되는 한, 나이 들 때까지는 돈을 벌 수 없다. 가난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어쩔 수 없이 내맘대로 장난감 갖겠다는 꿈은 버려야 한다. 뛰어난 개인강사에게서 부족한 교과목을 보충받지도 못한다. 한번 해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는 바이올린을 배우지 못한다. 가난은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강요하고, 하고 싶은 경험을 금지한다.

고생의 연속이었던 나의 삶은 대학입학 이후 비교적 순탄해졌다. 하지만 위기는 증권사에 다니던 1997년 찾아왔다. ‘외환위기와 주가 폭락’과 함께 나를 엄습한 것이다. 레버리지를 무리하게 써서 빠진 곤경이 아니었다. 내 권유를 받고 투자한 고객들의 손실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 고객들의 손실을 보전해주느라 곤경을 자초한 것이었다. 당시 나는 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나름 효도한다고, 평생 살던 곳을 떠나 낯선 서울로 오신 어머니께 작은 위안을 드리기 위해 사드린 집이었다. 그런데 고객들의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해 그 집을 팔아야 했다. 그리고는 잠시 누나 집에 얹혀살다가 사글세로 옮겼다. 딱 그 정도 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글세로 옮긴 것보다 어머니의 집을 판 것이 더 마음 아팠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마음 아팠던 이야기를 슬퍼하지 않으면서 말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외환위기 이후 그대로 주저앉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사글세를 전전하다가 번번이 투자에 실패해 여전히 어린 시절의 가난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어머니가 당신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한숨을 쉬신다면 어떨까?

만일 그랬다면 어머니의 집을 빼앗은 일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고생은 내 인생에 걸린 저주의 시작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나는 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지 못했나? 하며 말도 안 되는 원망을 하며 살고 있을지 모른다.

과거는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재해석의 기준은 현재다. 현재 성공한 상태라면 과거의 고생은 빛나는 훈장으로 해석되지만, 고생스럽던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면 그것은 지긋지긋한 불행일 뿐이다.

지게를 지고, 광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이 없어 어머니의 집까지 팔았던 나는 현재 50여개 기업의 주인으로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 그 방법은 주식투자다. <아시아엔> 독자들은 나의 글을 통해 “주식투자로 부자가 되라”는 제안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주위에서 보고 듣고 알고 있던 주식투자 개념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투자한다면 부자가 되는 것은 물론, 여유롭고 행복한 투자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부모님이 성실하게 일하고 아끼며 살고 있는데도 왜 부자가 되지 못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부자가 아닌 것은 어쩔 수 없다. 과거는 재해석될 수 있을 뿐 바뀌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가난에서 비롯한 불가피한 고생을 지금부터 10년 후에 어떻게 해석하게 될 것인가”이다. 독자 여러분은 10년 후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가. 가장 끔찍한 일은 10년 후에도 지금 이런 글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20년 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20년 전에 무엇이든 했어야 한다고 후회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돈 걱정은 집어치워라. 부자들은 부자가 되기 전에도 돈 걱정은 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돈 걱정을 할 때 부자들은 돈 생각을 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려는 의지는 잃어버린 채 부자가 되려는 욕망만 가지고 살고 있다.

욕망이 앞서는 사람은 요행수를 바라면서 불평으로 인생을 허비하지만, 의지를 가진 사람은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행동을 동반하지 않는 욕망은 불행 그 자체다. 건강한 몸을 원하면 운동이라는 행동을 해야 하듯이, 부자가 되려면 이를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 이것이 ‘걱정’과 ‘생각’의 차이다.

돈 생각을 하지 않으면 평생 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아시아엔> 독자들이 ‘돈 걱정’에서 벗어나 ‘돈 생각’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길 바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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