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 31] 백마 탄 초인이여, 개인투자자가 불리한 구조 해결을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어디 있으랴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린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다. 길을 알려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닥쳐 현행범이라며 체포했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서 있던 주택가 골목과 가까운 곳에서 절도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두 사람은 각자 독방에 수감됐다. 경찰이 들어와 제안을 한다. 만약 저쪽 방에 있는 사람이 범행하는 걸 목격했고 당신은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는 중이었다고 진술하면 곧바로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제안을 저쪽에도 했다고 알려준다.

그 자리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과연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그 사건과 관련이 없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는 게 사실에 맞는 진술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려니 불안하다. 그는 상대방이 누군지 모른다. 어쩌면 진짜 도둑일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도둑은 틀림없이 내가 범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도둑이 아니더라도 빨리 누명을 벗기 위해 거짓말을 할지도 모른다. 사실대로 말하면 단독범행이 되고 그의 범행을 목격했다고 말했는데 저쪽도 똑같이 말한다면 영락없는 공범이다.

억울한 두 사람이 한 방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진술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복잡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두 사람이 서로를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불안해할 필요도 없이 명쾌하게 진술을 끝냈을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개인투자자들

‘죄수의 딜레마’를 살짝 수정해봤다. 죄수의 딜레마는 서로 협력할 때 가장 좋은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도 상대방을 믿지 못해 양쪽 모두 불리한 결과를 맞게 된다는, 협력과 갈등에 관한 게임이론이다. 실제로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추정되나 아직 확인은 되지 않은 두 명의 용의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는 데 쓰였고, 그 뒤 ‘죄수의 딜레마’이론으로 불리며 널리 활용됐다.

원래 설정을 억울한 누명을 쓴 두명으로 수정한 이유는 우리 개인투자자들의 처지가 그래서다. 같은 기업의 주주라도 우리는 각자의 ‘독방’에 앉아 있다. 혼자 있는 우리는 무기력하다. 기껏 해야 종목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정도인데 그마저도 한데 힘을 모으려는 내용보다 서로를 비난하는 내용이 더 많다.

내게는 큰돈이지만 기업 전체로 보면 미미한 지분이니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다. 전업투자자로서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나 역시 대주주 앞에서는 왠지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아예 방법이 없을까?

상장사는 의무적으로 주주게시판을 개설하고 주주가 질문을 올리면 주식담당자로 하여금 답글을 달게 한다. 이때 자주 묻는 질문을 따로 정리해두면 업무 과부하도 없을 것이고 투자자들에게도 용이할 것 같다. 이밖에도 인터넷 카페,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 등 소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긴 하지만 그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인투자자 불합리한 증시구조 바꾸려면

필자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아이디어를 구하고 있다. 작지만 모으면 큰 힘이 되는 각자의 지분을 쉽고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투자자이자 유권자로서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앞서 제안한 제도개선에 동의한다면, 그것이 제도개선으로 이어지게 할 방법은 무엇일까?

함께 아이디어를 찾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개인투자자들이 도박판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기업의 성장과 합리적인 수준의 배당에 따른 기업가치의 상승보다는 시세차익만 남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팽배하다. 약자들끼리 서로를 등쳐먹으려고 아등바등해봐야 열에 아홉은 패자가 될 뿐이다. 승자였던 나머지 한 명도 다른 도박판에서 아홉 명 중 하나가 된다.

“한몫 챙기자”는 마음보다 “내 회사”라는 주인의식이 필요하다.

투자는 기업과의 동행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은밀한 정보보다는 기업 그 자체의 가치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공포와 탐욕에서 벗어나 위기 이후를 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우리가 도박판에 머물고 있는 한 불합리한 증시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다수가 상식보다 높은 수익, 즉 비상적인 수익을 거두려고 하는 바람에 당연히 얻었어야 할 상식적인 수준의 수익조차 거두지 못하고 있다. 기업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려고 하고 소주주들을 호구로 생각하는 대주주, 소주주들의 재산을 갖은 방법으로 빼돌리는 것이 합법인 제도, 조직적인 금융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 비상식적인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의 투자는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다. 이 지뢰들을 걷어낼 수 있다면 우리의 투자는 훨씬 더 평온해질 것이다. 기관과 외국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기업의 미래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며, 비로소 자본시장이 서민들의 명실상부한 희망이 될 것이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없다. 먼저 우리 투자자들이 주식투자에 대한 올바르고 상식적인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주위에 전해야 한다. 주식투자가 도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건 주식투자가 정말 도박이어서가 아니라 도박의 요소를 줄여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론을 만들어서 압박해야 한다. 하다못해 욕설이 오가는 종목 게시판에서라도 상식을 말해야 한다.

다시 죄수의 딜레마다. 우리는 이기심의 골방에서 나와야 한다. 서로 소통하면서 아이디어를 모은다면 변화의 시작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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