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 29] 언론, ‘대주주 갑질’·’주식시장 불합리’ 파헤치길

정의당 추혜선 의원(왼쪽 5번째)과 전국금융산업노조,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대표 등이 2019년 2월22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주주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지주회사법’ 등 ‘대주주 갑질 방지 금융 5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몇년간 ‘박스피’라고 불리던 코스피지수가 2017년부터 오르기 시작하더니 2018년 초에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언론은 대단한 잔치라도 벌어진 양 흥분했지만 개인투자자 대부분은 그 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개미들은 담 너머로 들리는 흥겨운 노랫소리에 속이 아팠다. 이런 시장에서도 수익을 내지 못한 개인들이니 다른 때는 어땠을까?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사실 개인투자자들이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합의가 거의 이뤄진 듯하다.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식’으로 군중심리에 따라 투자한다’, ‘저가주를 선호하며 대단한 한방을 노린다’, ‘단기간에 써야 할 돈으로 투자한다’, ‘기업에 대한 공부는 하지 않고 남이 모르는 정보를 찾는다’, ‘무리한 레버리지를 사용한다’는 등으로 보도된다.

필자 역시 이 견해에 동의한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농부처럼 투자하라고 당부해왔다.

“주식투자는 매매 게임이 아니다. 기업에 대한 투자다. 그러므로 투자하려는 기업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라. 그래도 늦지 않다. 한방을 노리다가는 한 방에 쪽박 찬다. 여유자금을 갖고 긴 안목으로 투자하라. 그리고 상식적인 수익을 기대하라.”

투자실패 책임을 개인에게만 물을 수 있는가

강연회 등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약간의 변화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은 예전 방식, 실패할 확률이 지극히 높은 방식으로 투자하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실패 이유를 짚어주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보면 그렇다.

모든 투자의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허위 공시에 속듯 사기를 당하기도 하지만, 거기에도 본인 책임은 있다. 허위 공시에 넘어갔다는 건 그만큼 기업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증거다. 우량기업에서 허위 공시가 나올 리 없으니 말이다. 이쯤이면 개인투자자들의 책임을 충분히 물었다. 이전에 냈던 책들에서도 지겹도록 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번에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고자 한다.

그렇다 한들 이 모든 것이 오롯이 개인투자자들만의 잘못일까? 개인들이 시세차익에 목숨을 거는 데는 쥐꼬리 배당도 한몫 한다. 단기투자를 하는 건 기업을, 정확히는 대주주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다. 불신 이유는 불통이다.

주주총회에서도 동업자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더욱이 기업이 기관에 조금 더 빨리 정보를 제공하는 사례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공시되지 않은 물밑정보가 암암리에 떠도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개미들은 그런 정보를 찾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갑질에 관심이 많다. 운전기사나 종업원을 노예 대하듯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극적이다. 대학원생을 괴롭히는 교수의 갑질도 언론의 단골소재다. 도대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인지 궁금한 자들이다. 그 자들의 횡포와 피해자들의 처참하고 황당한 상황은 독자들로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얻는다. 갑질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정신병적 행태에 대해서는 당연히 처벌이 있어야 하고 언론의 대서특필도 당연하다.

언론, 주식시장 불합리에도 관심 기울여야

나는 언론들이 지위를 이용한 비인간적인 갑질만큼, 대주주의 소액주주에 대한 갑질에도 비슷한 관심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때리지도 않았다. 욕한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불법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회에 주는 피해는 ‘충분히’ 치명적이다. 불합리한 쥐꼬리 배당은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유보금이라는 이름으로 갈취하는 것이다.

합법적인 자회사를 통해 자식들에게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일감을 몰아주는 것 역시 갈취와 다르지 않다. 구중궁궐에서 대리인을 내세워 주주들을 상대하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상식을 깨는 일이다.

언론은 불법만을 다루지 않는다. 도덕적인 일탈 역시 중요한 보도대상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근간인 신뢰를 흔드는 ‘합법’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오히려 대주주의 편에 서있는 게 아닌가 싶은 때도 많다. 단언컨대 언론들이 비상식적인 합법을 집중적으로 때린다면 놀랍도록 많은 국회의원들이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법안을 발의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독재국가가 아닌 이상 다른 나라들도 언론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기자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가 되었든 질문할 권리가 있다. 모든 정부기관은 기자의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기업도 기자의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답을 하지 않을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 막대한 권한은 우리 사회가 언론에 빌려준 것이다. 그래서 신문에 광고를 하지 않는, 종이값도 안 되는 구독료만 지불하는, 심지어 인터넷으로 돈 한푼 내지 않고 기사를 보는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될 의무가 있다.

주식시장에 한정해서 말하면, 개인투자자들에게 투자에 대한 합당한 대가가 돌아가는 구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 기업, 금융당국, 국회에 왜 개인투자자들이 불합리한 피해를 보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뉴스는 구성된 사실이라고 한다. 보도된 것이 사실이라도 보도되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라면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나는 우리나라가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당연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자본시장이 서민의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개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담대한 투자자가 되기를 바란다. 투자한 기업에 악재가 있을 때 불안에 못 이겨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몇년째 주주총회에서 경영자를 봤는데 이 정도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누군가 은밀한 정보로 유혹해해도 “그건 불법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기업의 성과를 공유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언론은 힘이 세다. 단기간에는 어렵겠지만 주식시장의 불합리한 구조를 의제로 설정한다면 자본시장이 서민의 희망이 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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