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 25] 언론의 불안 조장과 과도한 기대는 ‘투자의 적’

2018년 6월 런던 하원 밖 EU 잔류 지지세력의 시위 <AFP=연합뉴스>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스마트인컴 대표,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위기의 과장은 국내외 경기 상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특정 기업에 대한 위기 역시 부풀리는 경우가 많다. 2017년 한국항공우주는 원가 부풀리기,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등 의혹에 휩싸여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이 기업의 대주주는 한국수출입은행으로 공기업이나 다름없다. 사건이 터지면서 주가는 반 토막이 났고, ‘분식회계 혐의 한국항공우주, 상장폐지 가능성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해당 기사는 한국항공우주의 주가 급락, 검찰 수사 등을 거론하면서 “펀더멘털 측면에서도 위험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실었다. 그런데 기사의 마무리는 달랐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상장폐지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만약 상장폐지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투자자가 많았다면 기사 첫머리에 “한국항공우주, 상장폐지 가능성 낮다”라고 써야 했다. 상장폐지 가능성이 낮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1년 내내 주가 반 토막에 이어 상장폐지 우려까지 겹치며 투자자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식으로 불안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기사는 내용의 핵심을 제목으로 하고 중요한 내용부터 써야 한다. 기껏 불안을 조장해놓고 결론은 아니라고 하는 건 순서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위험을 과장해 암울한 전망을 하는가 하면 근거가 부족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 거기서 당장 엄청난 수익이 날 것처럼 보도한다. 특정 업종의 전망이 밝으면 거기에 속하는 모든 기업이 황금알을 낳을 것처럼 보도한다.

아주 작은 연관성만으로 테마주에 편입시켜 보도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언론을 따라 투자한다면 그야말로 뇌동매매가 될 수밖에 없다. 뇌동매매는 실패의 지름길이다. 그렇게 보면 언론이 투자자를 실패의 지름길로 안내하고 있는 꼴이다.

물론 필자는 언론 일반에 대한 논평을 하는 것은 아니다. 증권시장과 관련한 기사만을 말하고 있다. 2017년 들어 코스피지수가 최고가를 갱신해갈 때 언론들은 어제보다 몇 포인트 오르지도 않았는데 최고가를 갱신했다며 수선을 떨었다.

그리고 북한 리스크가 대두되었을 때는 몇 포인트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시장에 큰 충격이라도 있는 양 난리를 피웠다. 이처럼 주식 관련 기사는 기대와 불안의 양극단을 달리는 경우가 많다. 불안이나 과도한 기대는 투자의 적이다. 차분하고 사실에 기초한 기사로 과도한 불안과 기대를 제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언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아래 칼럼은 2016년 브렉시트 때 필자가 기고한 것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칼럼에 소개한 당시 기사의 제목들을 살펴본 다음 현재의 상황을 상기하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위기는 늘 전대미문이다

또 다시, 전대미문의 위기가 닥쳤고 나는 시켜놓은 점심을 먹지 못했다. 많은 전문가, 비문전가의 예상을 뒤엎고 영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했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설마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가자 전 세계 증시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흔들리는 유럽연합, 금융시장의 혼란이 예견되었다. 엔화와 달러는 급등했고 파운드화는 급락했다. 한국 증시는 거의 패닉 상황이었다. 코스피는 3.09퍼센트 하락 마감했고 코스닥은 장중 7퍼센트 대까지 폭락했다가 4.76퍼센트 하락 마감했다. 언론들도 큰 소리로 ‘브렉시트가 온다!’고 외치면서 불안을 가중시켰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 것일까?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해야겠다. 영국의 EU 탈퇴가 내가 투자한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나는 6월 24일 ‘일단 매도한 뒤 추이를 지켜보자’ 혹은 ‘불안하니까 일단 매도하자’며 보유 주식을 매도한 이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달러와 엔화의 강세는 수출 기업에는 호재이고 원자재 등을 수입해야 하는 기업에는 악재다. 파운드화의 약세는 영국에 수출하는 기업에게 악재이긴 하지만 영국이라는 무역대상이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내가 투자한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면 결국 제 가치대로 인정을 받을 것이다.

브렉시트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도 업종 내에서 건실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이라면 이후에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위기는 늘 새롭다. 외환위기, 9.11테러,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의 재정위기 등은 우리가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뭔가 사건이 터지면 화들짝 놀라 싼 값에 주식을 던져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날 내가 점심을 먹지 못한 이유는 싼 값에 나온 주식을 즐겁게 사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동안 눈여겨 봐두었던 기업의 주식을 열심히 매수했다. 약 40억원 어치를 샀으니 모니터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이전 수준을 회복한 주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투자자라면 좀더 담대해져야 한다. 불안은 전염성이 강하다. 근거 없는 불안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잘 아는 기업에 여유 자금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 위기와 기회의 요인이 무엇인지 아는 기업에 급하지 않은 자금을 투자해놓으면 부화뇌동할 일도 없고 외부 요인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하락하더라도 기다려줄 수 있다.

날씨를 완벽하게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튼튼하게 잘 지은 집에 있다면 석 달 열흘 장마가 와도 불안할 이유가 없다. ‘역사상 가장 복잡한 이혼’이라고 할 만큼 탈퇴 협상을 하는 중에도 ‘위기가 온다!’는 외침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0퍼센트의 확률로 전혀 다른, 전대미문의 위기가 또 다시 도래할 것이다. 그때는 배추 값이 폭락했다고 고추밭을 갈아엎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시아경제> 2016년 7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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