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 26] “한국언론 ‘주식 보도’ 이것이 문제다”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스마트인컴 대표] 가을이 되면 퍼렇던 감이 발갛게 익어간다. 아직은 떫지만 햇볕이 안 드는 곳에 잘 보관하면 겨우 내내 홍시로 먹을 수 있다. 수확기가 되기 전에도 홍시는 있다. 자연은 공산품과 달리 생산 시기가 일정하지 않아서 한 가지의 감이라도 어떤 것은 올되고 어떤 것은 늦된다.
익지 않은 감은 어지간한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지만 빨간 홍시는 가만 두어도 떨어진다. 바람이 살랑 불어도, 참새 한 마리가 가지에 앉았다 날아가기만 해도 떨어진다. 이때 바람이나 새를 홍시가 떨어진 원인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들이 없어도 어차피 중력만으로 그냥 떨어질 게 분명하니 말이다. 이 글에선 앞서 언급한 ‘대북 리스크’와 관련해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외국인 매도 이유, 물어는 봤나?
2017년 8월 10일로 돌아가 보자. 이날 오후 1시경 한 언론은 코스피지수가 대북 리스크로 ‘끝없이 떨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올렸다. 당시 실제 하락한 정도는 28.94포인트(1.28퍼센트)였다. 이 정도 하락이 끝없이 떨어지는 거라면 3퍼센트쯤 하락하면 어떤 표현을 쓸지 궁금하다. 이 기사는 ‘북한과 미국의 긴장 때문에’ 뉴욕 증시도 이틀 연속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0.17퍼센트, 나스닥종합지수는 0.28퍼센트, S&P500지수는 0.04퍼센트 하락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금과 엔화로 몰리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장 마감 후 수정된 기사에는 2340선까지 무너졌던 코스피지수가 기관들의 매수에 힘입어 ‘간신히’ 2359선까지 회복했다고 쓰였다. 결국 이날 코스피는 0.39퍼센트 하락하는 것으로 마감했다. 1.28퍼센트 하락이 ‘끝없이 떨어지는’ 것이라면 그 후 0.89퍼센트 상승한 것 역시 대단한 표현을 써야 맞다. 그러나 ‘간신히’라는 표현으로 마무리했다.
궁금하다. 이 기자 혹은 언론사는 매도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 주식을 왜 파세요? 혹시 북한 때문인가요?”라고 질문해봤을까? 기사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뉴욕증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뉴욕증시에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북한 때문에 파는 거냐고 물어보기는 했을까? 역시 기사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0.5퍼센트도 안 되는 하락의 원인을 북한 리스크라고 단정하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편의상 특정 날짜의 특정 기사를 예로 들어 설명했지만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북한과 함께 미국의 금리, 유럽, 중국, 외국인, 기관, 연기금 등은 지수 등락의 단골 원인이다. 언론과 애널리스트, 전문가, 증권사 등은 오전과 오후 시황을 정확하게 분석한다. 9시 이후,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세계경제가 국내 증시에 미친 영향을 정확하게 분석한다. 지수가 떨어지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만한 일을 찾아내고 올라가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만한 일을 찾아내면 된다.
뭔가 마땅한 것이 보이지 않으면 기대감이나 불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만사형통이다. 몇 시간 새 변하는 외국인, 기관, 개인의 투자 심리를 마치 바로 곁에서 지켜본 양 알아낸다.
기업은 없고 지수만 있는 시황 분석
지수의 등락은 ‘상장된 모든 기업의 주가 등락의 총합’이다. 어떤 기업에는 악재가, 또 어떤 기업에는 호재가 있었다. 어떤 기업은 대주주가 횡령을 했고 어떤 기업은 대주주가 주주친화 정책을 발표했다. 어떤 업종은 정부 정책의 수혜를 입게 되었고 어떤 업종은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었다. 어떤 기업은 실적이 100퍼센트 성장했고 어떤 기업은 반 토막이 났다. 그 모든 일의 총합이 주가지수의 등락으로 나타난다. 즉 상장된 기업에 매기는 가치의 총합이 주가지수인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것을 한두 가지 원인(그것도 별로 정확하지 않은)만 갖고 분석하는 것은 억지다. 배가 떨어졌다고 까마귀에게 모든 걸 덮어씌우는 것과 같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매를 원인으로 보는 것 역시 억지다. 수급은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외국인과 기관은 자본력이 크다. 이들의 매매에 따라 지수가 오르내리는 것도 맞다. 그러나 이것은 분석이라기보다 동어반복에 가깝다. 큰 자금력을 가진 쪽이 매수 버튼을 많이 누르면 주가는 상승하기 마련이다.
하락하는 혹은 상승하는 지수를 보면서 꿰맞추기 식으로 원인을 갖다 붙이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최소한 사실인 양 보도하지는 말아야 한다. 원인 분석이 의미가 있으려면 예측도 가능해야 한다. 예측이 되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본인들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할 능력이 있음을 알려드린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코스피, 코스닥지수를 예측하는 일을 포기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줄도 모르겠다. 코스피지수 1만 포인트를 찍더라도 내가 투자한 기업이 하한가를 기록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대로 1000포인트로 주저앉더라도 내가 투자한 기업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면 나는 성공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주가는 그대로라도 기업의 본질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면 그 역시 성공한 투자다.
시황 분석을 보면 기업은 없고 지수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생상품에 투자한 사람은 지수에 관심이 있겠지만 기업에 투자한 사람은 지수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파생상품이 아니라 기업이다. 언론은 사람들이 숫자에 현혹되지 않고 투자의 본질인 기업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코스피지수에 대한 호들갑도 그렇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10대 대기업 집단의 시가총액이 전체의 50퍼센트를 넘는다. 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이를 두고 언론은 지수가 떨어졌다, 올랐다 하며 격앙된 어조로 말하지만 실상은 몇몇 기업의 주가 등락이 전부일 수 있다. 중형주 지수와 소형주 지수의 동향도 고려해서 보도해줬으면 한다.
또한 외국인이 빠져나간다고 호들갑을 떨기 전에 우리 자본시장에서 외국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을 문제 삼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국내 증시가 외국인의 현금인출기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우리나라 시가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지, 무엇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지 짚어주는 것이 본질을 꿰뚫는 기사라고 생각한다. 부디 투자자들이 투자의 본질을 보면서 담대하게 투자할 수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