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①] ‘대주주만’ 기업의 주인? ‘투자자 모두’가 주인!
[아시아엔=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사)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주식, 농부처럼 투자하라> 등 저자] 82세의 노인이 있었다. 그는 낡은 빌라의 반지하 방에 살면서 택시운전으로 먹고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호텔 앞에서 손님을 태우려고 가던 중 순간적인 실수로 호텔의 회전문을 들이받은 것이다. 사람도 다치고 회전문도 망가졌다. 회전문에 대한 변상액만 4억원. 그로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호텔의 사장이 부사장에게 택시기사의 경제 사정을 알아보라고 지시한 것이다. 기사를 만나고 온 부사장은 변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을 만큼 사정이 어려웠다고 보고했다. 사고를 낸 지 사흘째, 택시기사는 호텔측으로부터 피해 변상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4억원은 무척 큰돈이다. 어지간한 중산층이라도 살림이 거덜날 만한 액수다. 당신이 실수로 누군가에게 4억원의 재산피해를 입혔다고 상상해보라. 아찔하지 않은가. 택시 기사에게 호텔 사장은 은인 중 은인이다. 하늘에서 귀인이 나타나 물에 빠진 그를 구해준 것이다.
모든 언론이 일제히 이 일을 두고 ‘따뜻한 선행’, ‘통 큰 기부’,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의 제목을 달아 크게 보도했다. 기사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 역시 칭찬 일색이었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다들 어떤 일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지 알 것이다.
선행을 베푼 것인가, 회사에 손실을 입힌 것인가? 하지만 나는 호텔 사장의 ‘통 큰 변상액 면제’가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돈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속이 배배 꼬인 사람도 아니다. 이제부터 욕먹기 딱 좋은 ‘훈훈한 미담에 딴죽 걸기’를 하려고 한다. 과도하거나 비논리적이라면 얼마든지 비판을 해도 좋다.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보자. 당신은 주방장 출신의 친구와 51대 49로 자금을 투자해 식당을 개업했다. 식당 운영은 친구가 하는 대신 당신은 이익 중 20%만 받기로 합의했다. 결산하는 날이 되어 식당에 갔더니 친구가 낮에 벌어진 일을 말해주었다. 부모와 함께 온 꼬마가 장난을 치다가 100만원이 넘는 텔레비전을 부쉈는데 알고 보니 꼬마의 생일날이었고 그 부모에게 100만원은 꽤나 부담이 되는 액수여서 그냥 밥값만 받고 보냈다는 것이다.
친구는 꼬마의 부모가 정말 고마워했다고, 다른 손님들도 자신을 칭찬했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훈훈한 미담이다. 동창회에 나가서 말했다면 “마음이 훈훈해지는군. 역시 내 친구야”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주방장 친구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그러니까 이번 달 이익으로 새 텔레비전을 구매하자.”
아직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다. 만약 그 호텔의 어느 과장이 택시기사에게 “형편이 어려운 것 같으니 변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신이 사장이라면 그 과장을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이 그냥 가라고 했으니 그 돈은 당신이 변상하세요. 그리고 사표 가져오세요.”
주방장 친구는 식당의 유일한 주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식당의 재산에 관한 결정은 동업자인 당신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과장은 호텔의 주인이 아니라 직원이다. 그에게는 독단적으로 변상을 면제해줄 권한이 없다. 사장이라면 어떤가? 그 호텔이 자기 개인회사라면 당연히 할 수 있고 칭찬을 받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나 그 호텔은 주식회사이며 사장 역시 과장과 마찬가지로 호텔의 직원일 뿐이다. 그가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주식회사의 주주 중 1명이면서 사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직원에 불과한 것이다.
주식회사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주식회사의 사장은 직책이지 주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경영을 맡았다고 주인이 되는 건 아니다. 식당에서 일어난 해프닝이 진짜 미담이 되고, 호텔의 변상 면제가 진짜 감동이 되려면 그들이 자기 개인 돈으로 텔레비전을 사고, 회전문을 고쳤어야 했다. 이사회의 의결을 거쳤다면 그것 역시 미담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랬다면 주주들도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도울 때 타인의 돈을 쓴다면 선행이 아니다. 선행을 하려면 자기 지갑에 있는 돈을 꺼내야지 공금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그 많은 언론이 하나같이 선행이라고 떠들었지만 진실의 또 다른 면은 “주식회사에 4억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남의 돈으로 선행을 베푼 사장도, 그걸 칭찬한 누리꾼들도 주식회사의 기본은 생각하지 않았다. 주식회사는 다수의 주주가 자신의 자본을 기업에 투자하고 투자한 자본만큼 기업의 이익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것이 주식회사의 기본적인 약속이다. 투자를 유치하거나 실제 투자에 임할 때 계약서에 서명하지는 않지만 이런 약속이 기본전제다. 그런데 대주주는 회사 전체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소액주주들은 자신이 기업의 ‘주인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 역시 소액주주를 무시한 채 기업과 대주주를 동일하게 여긴 채 보도하고 있다.
주식회사에 대한 이러한 인식 부족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불합리한 일들의 원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 곧 동업자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상장한다는 것 역시 동업자를 모집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주주의 숫자가 많고 매일 바뀌기는 하지만 동업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주식회사의 상식이다. 이 상식을 기준으로 두고 비상식적인 행태들을 고발하고자 한다. 대응할 방법이 없어 포기했던 일들을 다시 들추어보고자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투자를 해본 사람에게는 뼛속 깊이 새겨진 내용일 것이다. 물론 당장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방치하기보다 계속해서 들추어내는 편이 낫다. 테이블 위에 문제를 올려놓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비상식적인 일들이 사라지는 세상이 더 빨리 올 것이라고 믿는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