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A 글로벌 리더스 포럼, 인도네시아를 가다 下] 인도네시아에서 함께 한 열정과 도전의 4박5일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사진 류진·김기만] (사)아시아기자협회(AJA, 아자)가 주최하고 <아시아엔>과 <매거진 N>이 후원해 8월 23~2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수라바야에서 열린 ‘2017 AJA 글로벌 리더스 포럼’ 개최안내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인도네시아 인구하고 자원 많은 나라지만 가봐야 별 것 있겠어?” “일본 관광이나 중국 골프여행이면 모를까…” 대부분 시큰둥했다. 그리고 몇 주 후, 포럼 참가자들 반응은 이랬다. “다시 꼭 찾고 싶은 나라 목록에 인도네시아를 넣겠다.” “딴 곳에서 경험 못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일정마다 정성을 다해 진행해준 아자에 감사드린다.” “내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때 참석할 기회를 달라.”
아시아기자협회는 작년 5월 초 인도네시아 대통령궁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을 만나 그의 방한 때 아주대에서 토크쇼를 하자고 제안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이를 수락하고 2주 후 한국에 와 ‘청년의 미래’를 주제로 김동연 당시 아주대총장(현 기획재정부 장관) 진행으로 토크쇼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당시 조코위 대통령은 “한국의 기업인들이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인도네시아를 자주 찾아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당시 토크쇼에 앞서 아시아기자협회가 수여하는 ‘2016 자랑스런 아시아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7 AJA 글로벌 리더스 포럼’은 이렇게 시작됐다.
DAY 3 수라바야로 이동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금요일 아침 자카르타 거리를 헤쳐 공항까지 맞춰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공항에 도착해 보니 자카르타공항이 상전벽해가 됐음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번이 다섯 번째인데, 놀랄 만큼 달라졌다. 내년 아시아경기대회 덕택이 아닌가 싶다.
자카르타에서 수라바야까지는 1시간20분. 비행기 창 밖으로는 연기를 간헐적으로 내뱉는 나즈막한 산들과 섬들이 보인다. 인도네시아가 아직도 활동중인 화산과 숱한 섬으로 이뤄진 나라임을 실감케 한다. 방문단이 지금 향하는 곳은 항구도시 수라바야다. 이 도시는 부산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고 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부라위자야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김진만 교수가 맞아준다. 그는 외교부에서 30년 이상 근무했다고 한다. 수라바야공항에서 숙소까지는 1시간30분 거리. 왕복 2차선과 4차선을 달려도 그리 막히는 길은 없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른한 오후 그늘막 안으로 일행이 모여든다. 2003년 초 전국민을 텔레비전 앞에 붙잡아놓은 드라마 ‘올인’ 실제 주인공인 차민수 교수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차 교수의 차분하면서도 알맹이 있는 강의에 일행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의를 기울인다.
“지금은 무한경쟁의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고 있다. 4차산업은 정보·의료·교육·서비스산업 등 지식 집약적 산업을 총칭한다. 스마트폰의 새로운 기술이 날로 향상하여 이미 정보화 시대를 맞았다. 뉴스가 급속히 전파돼 전 세계의 모든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특히 의료분야에 혁신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로봇이 수술에 동원되며 수술 후 회복도 빨라질 것이다. 인간의 머릿속에 칩을 심어 모든 지식을 한꺼번에 집어넣는 것도 가능해진다. 삶의 질 향상은 필연적으로 서비스분야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카지노의 고급화와 대형화다. 인공지능으로 생산시설이 자동화되고 있는 것은 명암이 있다. 인공지능 발전이 일자리 감소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현재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청년실업과 인구고령화에 직면한 한국은 이제 카지노와 같은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꾀해 4차산업시대를 선도해야 한다.”
이날 저녁, 귀한 손님이 초대됐다. 수라바야상공회의소(Chamber of Commerce and Industry) 자마디 소장이다. 그는 명함을 두 개 건넸다. 하나는 상공회의소 소장, 다른 하나는 자신이 소유와 경영을 겸하고 있는 ‘타타 부미 라야’ 회사 대표 명함이다. 50대 중반인 자마디 소장은 “수라바야는 한국인들의 투자를 언제나 환영한다. 우리는 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항구여서 운송이 편리하고 품질이 뛰어난 자원도 풍부하다. 여러분이 투자하신다면 도울 수 있는 게 많다”라며 홍보에 적극 나섰다.
적도 바로 아래 수라바야에서의 한여름 밤은 깊어가고 시계는 9시를 가리킨다. 일행은 서둘러 식사자리를 파해야 했다. 두시간 남짓 후면 브로모 화산지구로 향한다. 그 곳에서의 일출을 맞으러 가려면 잠시라도 잠을 자둬야겠기에….
DAY 4 자정 언저리, 얼풋 들었던 잠에서 깨어난 나를 맞이해주는 건 풀벌레 소리, 수라바야 귀뚜라미 울음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 초저녁과 신새벽을 포함해 하루 5차례나 이슬람사원에서 스피커를 통해 퍼져오는 코란 낭송소리에 비하면 자장가나 다름없는 풀벌레들의 합창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오른다.
브라위자야대학 한국어과 4학년인 가이드는 “두시간 정도 간 뒤에 지프차로 갈아타고 1시간쯤 가면 브로모 화산에 도착한다”고 한다. 지프차로 옮겨타려는데 “안녕하세요” 하는 한국말 인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1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이곳 아이들은 브로모는 무척 추우니 모자와 장갑을 준비해야 한다고 외친다. 능숙한곡예운전으로 포장 반, 비포장 반 덜컹덜컹 달려 도착하니 새벽 4시께, 인산인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이에선 “브로모 일출을 보면 운수대통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비운의 사도세자비 혜경궁홍씨가 지은 ‘동명일기’를 떠올리며 20~30분 지났을까, 멀리 하늘이 붉고 밝으스레 물들기 시작한다. 정말 잠깐 사이다. “와,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해는 허공 위로 쑤욱 솟아오른다.
이때 일행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화산인 듯 아닌 듯 1km쯤 떨어진 바톡산(Batok mountain)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거였다. 화산운동을 할 때는 불길도 보이지만, 지금은 연기만 나오는 정도다. 산은 위에서 아래로 가르마 타듯 화산재가 흘러내린 흔적을 안고 있다. 그때 드론이 연기가 나는 화산 주변을 빙빙 도는 게 보인다. 무슨 장면을 찍느냐고 물으니 분화구 주변을 중심으로 촬영중이라고 했다.
방문단은 다시 지프차에 올랐다. 40분쯤 달리니 사막이 나오고 500개가 훨씬 넘는 계단 위로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계단 100개쯤 남기고 “우우웅, 웅우웅, 우웅웅~” 소리가 점점 가까워온다. 분화구에서 허연 연기와 함께 나는 소리다. 화산이 쉬고 있는 동안에도 저 정도니 폭발 때는 어떨까 가히 짐작이 간다. 무섭고 위대한 자연의 힘이다. 나는 공연한 기대를 해본다. ‘저걸 전기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숙소로 되돌아오는 버스 안. 일행의 얼굴엔 다소 피곤함과 함께 뭔가 해냈다는 자신감이 동시에 묻어있다. “이 먼곳까지 와서 한밤중 일어나 일출도 보고 화산도 구경하고,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한 장면들을 봤으니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잠시 낮잠을 즐긴 후 방문단은 회의실로 모였다. 이곳에서 인니 글로벌 리더십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진솔한 삶을 털어놨다. 주식농부 박영옥 스마트윈컴 대표를 시작으로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조은경 다손 대표, 정승원 (주)오쿠 회장, 이규진 삼성수내과 원장, 김기만 미라클팜 대표, 윤석호 (주)네모파트너스 CEO, 박성현 에스명심 차장 등은 각자 10~20분씩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털어놨다. 각자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겸손한 맘으로 정직하게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어려움도 견딜 수 있었고 어느새 길이 보이더라.”
2시간 남짓 발표와 질의·응답을 마친 방문단들은 저녁 식사 후 풍등에 자신들의 바람을 하나둘씩 적기 시작했다. 처음 나무에 걸릴 듯하던 풍등이 20분 이상 고공으로 순항하자 모두는 일제히 박수를 치며 얼싸안고 환호했다. “뜻을 세우면 반드시 이뤄진다!” 수라바야의 둘쨋 밤 별은 유난히 빛났다.
DAY 5 4박5일의 일정이 언젠가 싶게 휙 지나간다. 자카르타로 다시 이동한 일행은 오후 쇼핑과 시내 관광 후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저로 향했다. 만찬에는 호스트인 조태영 대사 부부와 세뮤얼 팡게라판 인도네시아 정보통신부 차관보가 함께 했다. 인도네시아 국영통신사 임원으로 있던 그는 6개월 전 조코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됐다고 했다. 이른바 ‘조코위 키즈’인 셈이다. 밤 11시 항공편에 맞추려면 만찬시간은 1시간 30분 남짓, 정성들여 준비한 한식과 인니 현지식이 일품이다.
식사를 마친 조 대사가 노래방 기기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정확한 발음으로 인도네시아어로 노래를 두곡 잇따라 불렀다. 그때였다. 잠시 흡연을 즐기던 팡게라판 차관보가 마이크를 넘겨받더니 노래를 부른다. 프랑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다. 어느 새 방문단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어깨를 걸고 한목소리, 하나가 돼 있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