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④] 우발적인 배임·횡령은 없다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정당한 승부를 근거로 하는 프로 스포츠의 근간을 훼손했고, 스포츠 정신 함양에 이바지해야 할 선수가 경기를 조작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
떠들썩했던 프로야구 선수의 승부조작에 대한 법원 판결문 중 일부다. 법원 판결은 집행유예였으나 한국야구위원회의 징계는 영구 실격이었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프로에서 뛰고 있는 야구선수들은 대부분 초등학생 때 야구를 시작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더욱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경기성적에 따라 진로가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그들 중 단 10%만 프로구단에 들어간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1군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사람은 더 적다. 그중 하나가 되기 위해 흘렸을 땀의 가치는 측정 불가능하다. 그렇게 오로지 야구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 입장에서 보면 영구 실격은 크나큰 비극이자 지나친 처사일 수 있다.
하지만 가혹하게 처벌하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해야만 한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에게 가벼운 처벌을 내린다면 이는 곧 잘못된 행위를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선수가 야구와 관련 없는 범죄, 예를 들어 폭행이나 음주운전을 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법적인 처벌과 함께 야구위원회의 징계도 가능하겠지만 아예 야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건 부당할 수 있다.
직업인으로서 저지른 범죄에 더 엄격해야 하는 이유
자신의 직업을 이용한 범죄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해야 한다. 공무원이 그 직위에 부여된 권한을 이용해 사적인 이득을 챙겼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시는 공직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의사가 의약품을 빼돌려 이득을 챙기거나 의료도구를 이용해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다시는 의사 가운을 입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다. 그냥 일반인의 자격으로 저지른 범죄와 전문적 식견을 갖춘 직업인으로 저지른 범죄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식칼이 강도의 손에 들어가면 흉기가 되듯 어떤 직업이 가진 업무와 권한이 이를 오남용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면 흉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상식이며, 대중의 상식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내 상식은 광복절만 되면 무너지곤 했다. 횡령이나 배임으로 형을 살고 있는 기업인에 대한 특별사면 때문이었다.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대통령의 특별사면 대상에 누가 포함되는지를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항상 재벌총수가 그 중심에 있었다. 엄벌을 외치던 신문들도 이 시기가 되면 이상한 논리를 폈다. 그중 할 말을 잊게 한 칼럼이 있었다. 칼럼의 필자는 기업인을 사면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방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사면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열정과 역량을 기업 활동에 쏟도록 유인해야 하며, 그 결과 일자리가 생기고 경쟁력이 강화되면 그것으로 우리 사회가 명확하게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폈던 그는 법학과 교수였다.
사실 이런 논리는 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 같다. “총수가 감옥에 있으니 기업의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의사결정권자가 감옥에 있으니 투자결정을 내릴 수도 없다. 한 사람이 갇혀 있음으로 해서 거대한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를 사면하면 고마워서라도 투자를 할 것이고 그러면 경제 활성화도 되고 일자리도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
그럴싸한 궤변이다.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데도 이 궤변에 동의하는 이들이 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은 잠시 내려놓겠다. 기업 차원에서만 말해보자. 예를 들어 기업에서 자재관리를 담당하는 과장이 창고에서 자재를 빼돌려 팔아먹었다면 그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일단 절도죄가 성립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법적 처벌이 내려지기 전에 해고라는 처벌을 먼저 받게 될 것이다.
“재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던 과장이 없으니 자재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떤 물건은 부족하고 어떤 물건은 쌓여 있다. 그를 복직시켜 다시 일하게 하면 고마워서라도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러면 회사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논리적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자재를 빼돌린 사람이 자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돈을 경영자라는 직함을 이용해 빼돌린 사람이 경영을 잘할 거라는 논리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더불어 사면되었기 때문에 투자를 많이 한다면 그것 역시 경영자로서는 실격이다. 사업적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보은하는 심정으로 투자한다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기업에 손해 입힌 대주주 권한 제한해야
횡령을 한 사람은 경제사범이다. 개인이나 기업, 공공단체, 국가 따위를 대상으로 경제적인 법익을 침해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사면해서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논리라면 도둑을 사면해 국민 재산을 지키게 하고 강도를 내보내 국민 안녕을 도모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기업인 역시 자신의 직책과 관련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면 법의 처벌을 받은 후에 경영자로 복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논란이야 있겠지만 우발적인 범죄라면 이해해줄 여지가 있다. 그러나 우발적 배임 횡령은 없다.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서 주도면밀하게 진행하는 범죄가 횡령이다. 그 작업을 혼자 하는 게 쉽지 않으니 기업 내부의 핵심 인력까지 동원했을 것이다.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기업에 손해를 끼친 사람이 기업 경영을 잘하고 나아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한국에서는 대주주이자 경영자인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있으면서도 이른바 ‘옥중결제’로 기업을 경영한다. 복역기간이 얼마인지는 관계없다. 언젠가 그는 감옥에서도 유지하던 결정권을 고스란히 지닌 채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면에 대한 궤변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결국 모든 결정권한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똑바로 봐야 한다. 경영자가 감옥에 있어서 문제가 아니라 감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질적인 경영권을 쥐고 있어서 문제다.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업에 손해를 끼친 경영자가 다시 그 자리에 와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갖고 있다. 이 상식이 현실에서 상식적으로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주주는 스스로를 경영자로 임명한다. 그 경영자가 직위를 이용해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더 이상 자격이 없다. 나는 횡령, 배임 등의 범죄로 기업에 손해를 끼친 대주주의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박탈해야 한다. 의결권은 박탈하되 배당에 대한 권리를 그대로 두면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사유재산, 즉 지분에 대한 권리 박탈을 문제 삼을 수 있으나 그 지분을 통한 권한을 범죄에 이용했으므로 박탈 사유는 충분하다.
음주운전을 했다고 차량을 몰수하지는 않는다. 다만 운전을 못하게 할 뿐이다. 음주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은 차량이 도로 위의 흉기인 것처럼 횡령, 배임 등의 범죄를 저지른 대주주의 권한 역시 자본시장의 흉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