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 16] 주가조작은 자본주의 근간 흔들어···”강력 처벌을”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스마트인컴 대표] 주식투자는 보물찾기가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지도 한 장을 들고 생사의 고비를 넘긴 끝에 엄청난 보물을 찾아내고야 만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투자는 다르다.
저평가된 기업이 있을지언정 숨겨진 보물 같은 기업은 없다. 저평가된 기업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것이 해결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계속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면서 가치를 누적해가는 것이 기업이고 거기에 맞춰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주식투자다.
그러나 이런 상식을 잊은 투자자가 적지 않다. 보물찾기처럼 한 방을 바라는 것이다. 인천항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봐도 배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항구에 앉아 배만 기다리는 사람은 스스로 누군가의 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탐욕은 사기꾼의 토양이며, 탐욕에 휘둘리는 사람은 사기꾼의 먹잇감이다. 그래서 사기사건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사람이 많다. 이렇게 투자자 개인의 잘못도 있음을 일단 피력하고, 2010년에 발생해 2017년에 황당하게 마무리된 사건 하나를 말하려고 한다.
주가 조작, 자본주의 근간 흔드는 범죄
2010년 12월 한 기업이 귀가 번쩍 뜨일 만한 희소식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한다. 외교부를 통한 발표였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불과 보름 만에 3000원대이던 주가가 5배 이상 뛰었다. 이후 내용이 엄청나게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2012년 1월 감사원이 그 의혹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주모자인 ○회장은 고점에서 이미 주식을 처분하고 해외로 도주한 뒤였다. 2014년 ○회장의 배임혐의가 공시되었고 이 기업의 주식은 거래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2015년 상장폐지되면서 300~400원에 정리되고 말았다. 2년 동안 도피 중이던 ○회장은 결국 자진 귀국해 재판을 받았다. 1심은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신고·공시의무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배임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좀 달랐다. 주가 조작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단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그 뒤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것이 2017년이다.
약 7년 동안의 일을 별일 아닌 듯 짧게 서술했지만 최고가였던 1만 8000원에 주식을 샀다가 300원에 정리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1000만원을 투자했다가 16만원이 손에 남았다면 그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이 기업에 투자한 사람 중에는 ○회장 출신 지역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을 포함한 상당수 투자자들은 그저 뜬소문을 믿고 투자한 게 아니었다. 그저 주가가 오르니까 뭔가 있나 보다 하고 투자한 것도 아니었다. 외교부까지 끼어 있는 공시를 보고 투자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에게 어떤 잘못을 발견할 수 있을까. 외교부가 없었더라도 공시를 의심해야 한다면 무엇을 보고 투자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법을 잘 모른다. 특히 형법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리고 전업투자자로서 주가조작을 포함해 기업을 이용한 범죄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민감하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도 최종 판결이 징역 3년이라는 점, 더구나 집행유예 5년이라는 점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집행유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선고된 형을 집행하지 않고 미루는 제도. 범죄의 정도가 약하거나 개선의 여지가 있는 범죄인에게 형의 집행을 받지 않으면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형사정책적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과연 이 사건의 ‘범죄의 정도’가 약한가?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 간 사람이 없을 뿐 피해의 정도와 범위는 깊고 넓다. 평생 힘들게 일해서 모은 돈을 전부 투자한 사람이 없을 거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 증권시장과 기업은 자본주의의 근본 동력이다. 그것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공시에 대한 불신, 기업에 대한 불신, 나아가 사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범죄를 정도가 약하다고 할 수 있는가?
또 하나, 정말 ‘개선의 여지’가 있는가? 허위 공시를 이용한 주가조작은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치밀한 계획 하에 진행된 범행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개선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는가? 그런 사람에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금융범죄 강력히 처벌해야
다시 말하지만 나는 법을 잘 모른다. 도대체 어떤 법리에서 이와 같은 판결이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게 어떤 법리든 상식에는 맞지 않다.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라는데 법이 상식에 맞지 않다면 개정하는 것이 옳지 ‘법이 그렇다’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동안 나는 금융범죄에 대한 판결들을 보면서 범죄의 무게에 합당한 처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우리 법원이 금융범죄에 대해서만 유독 관대한 것처럼 보이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판결은 확정되었지만 투자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그런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엔론사태’의 주역인 케네스 레이Kenneth Lay와 제프리 스킬링Jeffrey Skilling은 각각 24년 4월과 24년 형을 선고받았다.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에도 시세조종행위 등의 주가조작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부당이익이 5억~50억원일 경우 3년 이상의 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적용된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이번 정부에서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교란행위에 대한 엄벌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 어떻게 될지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의 법을 조금 더 강화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행위, 우리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훨씬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부당하게 얻은 이익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벌금을 매겨야 한다. 그리고 금융범죄를 계획하는 사람은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낼 각오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집행유예를 받거나 몇 년 복역한 뒤 떵떵거리며 사는 꼴은 보지 않아도 된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당당하게 활보할 때, 기업을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한 사람이 또 다시 사장님으로 떵떵거리고 살아갈 때 그것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몇 년 전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가 초중고생 1만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서 고등학생의 56퍼센트가 ‘10억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초등학생은 17퍼센트, 중학생은 39퍼센트였다.
설문의 취지는 ‘청소년 정직지수 조사’였으나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조금 다르다. 수감생활 1년과 10억원이 교환되는 것, 즉 죄를 짓고도 잘 먹고 잘사는 것을 자주 접했기 때문에 그렇게 답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금융범죄의 무게에 따라 엄중한 처벌을 해왔다면 청소년들은 이렇게 되묻지 않았을까?
“10억원이 생기는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1년만 살아요? 청춘을 거기서 다 보내고 나와서도 답이 없는데 그 짓을 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