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 22] 기관투자자·펀드매니저들 우직하게 지혜롭길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투자수익은 공돈이 아니다. 노동의 대가다. 기업을 공부하고 소통하고 동행하는 노동이 있어야 투자수익을 거둘 수 있다.
반대로 공돈이라고 생각하고 덤비면 자기 돈이 다른 사람의 공돈이 된다. 그래서 필자는 기업을 공부하는 데 시간을 낼 수 없는 개인투자자라면 간접투자를 하는 편이 낫다고 말해왔다. 앞서 설명했듯 생업에 종사하는 것만도 벅찬 사람보다 업무 시간 내내 기업을 연구하고 경제동향을 예의주시하는 사람들이 투자를 더 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간접투자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간접투자 시장이 더 커져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바로 앞 편에서 자산운용사를 ‘수박 감별 전문가’에 비유해놓고 간접투자를 권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간접투자 시장이 커져야 하는데 그러자면 먼저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 현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기관투자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기관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들은 정말 ‘품위 없는’ 매매 행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는 게 보이는데도 바닥에서 ‘과감하게’ 매도한다. 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내 나름대로 이해해보면 이렇다.
똑똑한 펀드매니저가 좋은 주식 바닥서 매도하는 이유
펀드매니저가 바뀐다. 새로 온 매니저는 우선 손실이 난 종목 중 로스컷 제도를 이용해 해당 종목을 정리한다. 기업의 내용이 좋아도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 종목은 정리한다. 이런 식으로 자기만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려고 한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자신의 성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손실이 난 종목을 정리하지 않고 두었는데 그게 지속되면 자기 책임이다. 그대로 두었는데 상승하면 전임자의 공이다. 손실이 나 있던 종목을 오자마자 정리하면 그것은 전임자의 책임이 된다.
이외에도 기관투자자의 바르지 못한 행태는 많다.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본질가치가 훼손된 게 아니더라도 무조건 팔아치운다. 해외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당 기업에 악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데 내동댕이치듯 팔아버린다. 늘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니라고 손사래 치지는 못할 것이다.
혼자 있는 개인투자자는 작은 물결을 쓰나미로 오인해 불안해할 수 있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문가다. 시장이 흔들려도 기업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기업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면 굳건하게 기관투자자로서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럼으로써 투자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한다.
또한 매니저들은 고객의 자산을 내 돈처럼 관리하는 윤리관을 가져야 하고 기업의 성과를 공유한다는 투자 철학을 가져야 한다. 도박판의 밑천 많은 타짜처럼 자금을 운용해서는 안 된다.
펀드매니저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틀림없이 억울해할 것이다. “우리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 줄 아느냐”고 항변도 하고 싶을 것이다. 매니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장기적인 기업의 미래를 분석하는 것은 똑똑한 행동이 아니다. 한 기업이 힘이 축적되고 성장해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나는 이런 상황을 감안해 기업의 성장주기에 맞춰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매니저들은 이런 방식으로 투자할 수 없다.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수익률을 평가받기 때문이다. 시장의 수익률을 맞추려면 시가총액이 크고 한창 들썩거리는 주식을 사야 한다. 그러다가 기업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았는데도 회복 시간이 더딜 것 같으면 사정없이 내던진다. 그렇게 해야만 시장의 수익률에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철학 제대로 세워야 투자성과 높아져
자산을 위탁하는 연기금도 단기적인 성과로 판단하고 개인 고객들도 단기적인 수익을 요구하니 매니저로서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매니저의 문제가 아니라 연기금과 자산운용사의 정책 문제다. 또한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개인의 태도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기관투자자의 태도가 바뀌면 우리 주식시장이 건전하고 올바른 시장이 될 수 있다. 기업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경제에 도움이 되고 가계에도 도움이 되는 시장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매게임을 하지 않고 기업의 성장을 돕고 그 성과를 공유한다는 투자 철학을 실행에 옮긴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자기 기관의 수익률만 챙기려는 태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규모가 큰 국민연금의 변화를 기대한다. 단기적인 성과를 재촉하고 시장의 수익률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실제 수익률은 후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코스피지수가 크게 상승한 2017년 국내 주식에 투자해 거둔 성과는 20퍼센트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주식에 투자해 거둔 수익률은 평균 0.66퍼센트다. 1998년부터 2016년까지의 평균 수익률 역시 5.74퍼센트로 그다지 높지 않다. 말하기 민망하지만 내가 개별 기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한 수익률보다 훨씬 낮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전문가 집단이니 투자 철학만 제대로 세운다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 한 가지를 조심스럽게 짚어야겠다. 간접투자 시장이 적다고 했는데 사실은 가계 자산의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2018년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가계자산 중 부동산(거주주택, 거주주택 외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1.3퍼센트였다. 호주(50.4퍼센트), 네덜란드(45.5퍼센트), 미국(43.8퍼센트), 영국(37.4퍼센트) 순이었다.
금융자산은 41.7퍼센트인데 그중 78.4퍼센트가 보험과 예금, 전세보증금으로 이른바 안전자산에 묶여 있다. 직장인이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을 모아야 한다고 한다.
연봉의 절반을 생활비로 쓴다면 20년을 모아야 한다. 집은 삶의 근거지이므로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래서 더욱 삶의 근거지를 마련하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할지 나로서는 모르겠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비율이 선진국 수준으로 가야 한다는 말은 할 수 있겠다. 부동산에 묶여 있는 돈은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고 기업에 있는 돈은 부가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가계의 돈이 기업에 가 있어야 국민들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