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 21] 최악 위기···”국민연금, 당신 역할 너무 중요합니다”

요즘처럼 증시가 위기 국면으로 치달을 때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많다. 사진은 2019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김성주 이사장(왼쪽)과 임직원.

[아시아엔=박영식 주식농부,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친구들과의 파티에 수박 화채를 내놓으려고 한다. 수박 5개를 사려는데 파티 주최자는 수박을 고를 줄 모른다. 맛있는 수박 화채를 대접하고 싶은 주최자는 자신의 고민을 친구들과의 커뮤니티에 올렸다. 그러자 친구 한 명이 ‘수박 선별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자신이 골라주겠다고 한다.

시장에 갔더니 800개 가까이 되는 수박이 쌓여 있다. 모양을 보고 고를까 아니면 두드려보고 고를까? 그도 아니면 자기만의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걸까? 어떻게 수박을 고를지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수박 선별 전문가의 행동이 이상하다. 그는 과도를 꺼내 수박의 한 귀퉁이를 잘랐다. 그러면서 말한다.

“5개를 샀는데 그게 맛이 없으면 큰일이잖아. 이런 식으로 200개의 수박 귀퉁이를 잘라 담으면 평균적인 맛을 낼 수 있지. 맛이 없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올해 생산된 수박이 전체적으로 맛이 없기 때문이야.”

그를 ‘수박 선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가?(실제로 시장에서 이렇게 행동하면 큰일 난다).

패시브 전략?···그럼 투자 전문가는 뭐하게?

이제 수박 200개를 코스피200으로 바꿔보자. 코스피200은 시장 대표성, 유동성, 업종 대표성, 시가총액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다. 기업의 수는 얼마 안 되지만 전체 시가총액의 86퍼센트(2018년 11월 19일 기준)를 차지하기 때문에 종합주가지수와 같이 움직인다. 그리고 증권시장에는 코스피지수의 등락과 일치하는 수익률을 추구하는 인덱스펀드가 넘쳐난다. 국민연금, 각종 공제회, 자산운용사 등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도 시장의 수익률을 좇아가는 투자를 선호한다.

이른바 ‘패시스passive 전략’이다. 시장 수익률을 추구한다는 말은 참 그럴싸한데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투자전략이다.

투자를 본업으로 하는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요리사일까? 정비공일까? 농부일까? 그럴 리 없다. 그들은 투자의 전문가여야 한다. 요리사는 좋은 식재료를 선별하는 눈이 있다. 정비공은 어떤 부분이 고장 났는지 대충 훑어도 잘 안다. 농부는 좋은 씨앗을 보는 눈이 있다. 마찬가지로 투자의 전문가는 좋은 기업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어떤 기관이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를 운용한다고 하자. 200개 기업의 전망은 하나 같이 밝을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설사 모든 기업의 전망이 밝다고 해도 정도의 차이는 있다. 그런데도 200개 기업의 평균을 추구하는 이유가 뭘까? 다른 인덱스펀드도 다르지 않다. 특정 업종의 기업들을 모아 지수를 만드는 펀드도 많다. 해당 업종에 있는 기업은 모두 전망이 밝은가.

코스피지수가 상승하면 수익을 내고 코스피지수가 하락하면 손실을 본다는 원칙은 전혀 전문가답지 않다. 특정 업종의 기업들에 마구 투자하는 것 역시 전문가다운 투자라고 볼 수 없다.

“5개 기업의 주식을 골라 매수했는데 수익률이 낮으면 큰일이잖아. 지수를 따라가면 평균적인 수익률을 낼 수 있지. 물론 손실을 볼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전체적으로 시장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야. 내 책임은 없다는 거지.”

앞서 예로 든 수박 선별 전문가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다소 비약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돈을 맡아 운용해야 하는 전문가라면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투자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보여달라

이쯤에서 국민연금의 투자 전략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8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기금은 650조원으로 주식에는 38퍼센트를 투자하고 있다. 이 중 국내 기업에 투자되고 있는 자금은 전체의 19퍼센트로 무려 123조원이나 된다. 국민연금은 이 자금 중 일부를 수십 개 기관에 나눠 위탁 운용하고 있는데 자금을 맡긴 운용사에 코스피200 등 벤치마크 추종 비율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개별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인덱스의 비중을 늘리라고 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개별 기업의 가치가 아니라 지수가 주가를 주도하는 것은 증권시장의 왜곡이다. 다양한 인덱스에 포함된 종목은 본질가치보다 높게 평가되고 인덱스에 포함되지 않은 종목은 시장에서 소외된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은 제 자리를 찾아간다. 내가 심각하게 보는 것은 자본의 효율적 배분이다.

‘패시브’라는 말의 의미대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로 시가총액이 큰 종목에만 자본을 투자하면 정작 필요한 기업에는 자본이 돌지 않게 된다. 유망한 기업이 자본을 구하지 못해 투자시기를 놓친다면 우리 경제 전망은 어둡다. 필요한 자본을 모을 수 없다면 굳이 상장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기업가정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필자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문가들, 자산운용사의 전문가들이 기업의 미래가치를 보는 눈이 있다고 믿는다. 있어야만 한다. 그러니 지수가 올라가면 수익을 내고 내려가면 손실을 본다는 식의 수동적이고 무책임한 투자를 그만둬야 한다. 지수에 편입된 종목을 기계적으로 주워 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좋은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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