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 19] 국민연금 누구 위해 있는가?···수탁자 책임 제대로 해야

국민연금 본사 건물. 2015년 4월 입주를 시작했다 직원들 분발하시길…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스마트인컴 대표] 3년 전 주주총회를 앞두고 필자는 8개 기업에 공식적으로 주주제안을 했다. 이후에도 공식적으로 8개 기업에 주주제안을 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주주총회에서 항의한 적이 있고, 대표이사나 임원을 만나 기업과 주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안건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을 주주제안을 형식을 갖춰 제대로 하고 언론에도 알린 것은 작게라도 변화의 씨앗을 만들어보려는 시도였다. 배당성향을 높여달라는 내용은 거의 공통적으로 들어 있었고 그 외에도 자사주 매입 및 소각, 자회사 합병, 지배구조 및 재무구조 개선, 적극적 IR 등 다양한 제안을 했다. 고려해 보겠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고 채택된 안건은 적었지만 이제 시작이니 낙담하지 않는다.

소액주주들의 힘을 모으려는 시도도 해봤다. 감사 임기가 만료되는 기업이 있었는데 기업과 소액주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감사를 선임해보려고 했다. 소액을 투자한 주주들을 한데 모으면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지인이 포털사이트의 증권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증권 게시판에는 주가 전망, 경영진 비판, 서로에 대한 비난 등 다양한 글이 올라온다. 조회수도 높았다. 그런데 우리가 소액주주들에게 제안한 글에는 고작 7개의 댓글이 달렸다. 200명 넘는 사람이 읽었는데 댓글을 쓴 사람이 고작 7명이라니···.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역시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몇 주 되지도 않는 걸 보태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자괴감도 작용했을 테고 위임장을 써서 보내기가 번거롭기도 했을 것이다. 전자투표제가 의무적으로 도입되고 한두 기업에서 소액주주들이 이겼다는 소식이 들리면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기관투자자 누구 위해 일하는가

필자는 전업투자자다. 그래서 8개 기업에 다양한 주주제안을 할 수 있었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주주제안까지 하기란 어렵다. 아쉬운 감이 있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집단이 있다. 왜 그러고들 있는지 알 수 없는 집단이다. 바로 기관투자자들이다.

우리는 대주주와 그 일가를 제외한 주주들이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안다. 뒷돈을 받을 리도 없으니 기관투자자들 역시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기권은 중립이 아니라 대주주의 편에 서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관투자자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상장사 주식을 100조원 넘게 보유하고 있고 5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도 320여개에 이른다. 그런 국민연금이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늘리기 위해 의결권을 행사했다거나 대주주를 압박했다는 이야기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지분의 힘으로 기업을 좌지우지하라는 게 아니다. 정당한 대접을 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라는 것이 있다. 국민의 돈, 투자자의 돈을 맡은 기관투자자들의 수탁자로서의 책임에 대한 원칙으로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2010년 영국이 처음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는 현재 네덜란드, 이탈리아, 일본, 대만 등 10여개국에서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의 반대로 늦춰지다가 2016년 12월에야 금융위원회가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공표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1. 기관투자자는 고객, 수익자 등 타인 자산을 관리.운영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명확한 정책을 마련해 공개해야 한다.

2. 기관투자자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실제 직면하거나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이해상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관해 효과적이고 명확한 정책을 마련하고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3. 기관투자자는 투자대상회사의 중장기적인 가치를 제고하여 투자자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높일 수 있도록 투자대상회사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4. 기관투자자는 투자대상회사와의 공감대 형성을 지향하되, 필요한 경우 수탁자 책임 이행을 위한 활동 전개 시기와 절차, 방법에 관한 내부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5. 기관투자자는 충실한 의결권 행사를 위한 지침, 절차, 세부기준을 포함한 의결권 정책을 마련해 공개해야 하며, 의결권 행사의 적정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의결권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사유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6. 기관투자자는 의결권 행사와 수탁자 책임 이행 활동에 관해 고객과 수익자에게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7. 기관투자자는 수탁자 책임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 필요한 역량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상 7개의 원칙 중 몇 가지는 원안에서 대폭 후퇴한 것이라고 한다. 2018년 11월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를 확정지은 기관은 67곳이다. 공식적으로 참여 예정을 밝힌 기관은 40곳이라고 한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위탁자산운용사를 선정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침 때문으로 보인다.

몇 년 전 일이긴 하나 2016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수수료를 받으면서 투자자들의 돈을 투자해주는 자산운용사 49곳이 1,320개 투자 대상 기업의 주주총회의 안건에 반대한 건수는 180건이었다. 전체 안건 7,175건 중 고작 2.5퍼센트에 불과했다.

국민연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5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의결권 반대 비율은 20퍼센트였다. 2016년 10.07퍼센트, 2017년 12.87퍼센트에 비하면 조금 나아졌다고 볼 수 있으나

아직까지 스튜어드십 코드를 확실하게 행사한 경우는 없었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할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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