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⑭] ‘무능한’ 경영자의 ‘유능한’ 상속 처리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스마트인컴 대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 이하인 기업들이 있다. 주가를 1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값이 1 이하라는, 시가총액이 순자산보다 적은 기업이라는 뜻이다. 분모가 분자보다 크면 소수점 이하의 숫자가 되는 게 당연하니 별일 아닌 것 같다.

주식을 좀 아는 사람들 역시 “자산 대비 저평가되었다”는 논평을 덧붙이는 정도에서 그친다. 이상한 일을 일상적으로 보게 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필자 역시 비정상적인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부작용을 어느 정도는 겪고 있다. 그러나 상식의 바탕 위에 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PBR이 1 이하라는 건 참 한심한 일이다.

주식의 가격에는 이미 미래가 들어와 있다. 올해 적자를 면치 못하더라도, 심지어 몇 년간 적자를 낸 기업이라도 미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주식시장은 기업이 가진 순자산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매긴다. PBR 1 이하라는 숫자의 의미는 “자산 대비 저평가되었다”가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자산을 팔아버리는 것이 기업 활동을 유지하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인데, 기업을 이 지경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도 지분만 많으면 ‘당당하게’ 경영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상식과 거리가 멀다.

순자산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기업의 경영자는 지분과 관계없이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자리를 내놔야 한다. 필자로서는 아이디어가 없지만 그런 경영을 하고서도 자리를 내놓지 않는 경영자를 제재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한 매듭을 지어놓고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무능한 경영자의 유능한 상속 처리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능한 경영자들 중 상당수는 사실 대단히 유능한 사람들이다. 먼저 한 기업의 사례를 보자.

1970년 설립된 A사는 제지회사로 1996년 상장되었다. A사의 재무제표를 간단히 살펴보면 2012년 말 기준 매출액 1132억원, 영업이익 165억원, 당기순이익 84억원을 기록했고 자본금 110억원에 자기자본이 1018억 원인 알짜 중견기업이다.

특히 종업원이 104명에 불과해 노동생산성이 매우 좋은 회사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A사의 시가총액은 2013년 2월 18일 현재 391억원에 불과했다. 이나마도 2012년 8월 12일 시총 244억원에서 약 60퍼센트 오른 것이다. A사의 2012년 실적 기준, PBR과 PER(주가수익비율)은 각각 0.39배와 4.7배로 매우 저평가되어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회사의 주가는 성장성과 수익성 외에 배당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2006년에서 2011년까지 A사의 배당을 살펴보니, 2006년과 2007년에는 각각 액면가 5,000원 기준 20퍼센트를 배당한 반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2~5퍼센트의 저배당을 했다.

2008년과 2010년의 경우 순이익이 각각 7억원, 11억원 가량이었기에 이해가 된다. 하지만 2009년과 2011년은 각각 45억원, 4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저배당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편, 이 회사의 주가는 순이익이 60억~70억원대를 기록하고 배당률도 높았던 2006년과 2007년에 급등해 2007년 8월에 3만9,8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시장에서 기업의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도록 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10년은 우습고 20~30년을 계획하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는 ‘그 어려운 일’을 그들은 해내고야 만다. 외부의 어떤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뚝심도 있다.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장기적인 계획과 뚝심에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주가가 적정 수준으로 가려고 하면 자사주로 방어한다. 언젠가는 제 가치를 인정받을 거라며 길게 보는 사람들도 쥐꼬리 배당에 지쳐 돌아선다. 그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시장에 나쁜 소문이 돌면 돌수록 이토록 유능한 대주주의 계획은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계획의 목적은 저렴한 상속세를 물고 자식에게 지분을 넘겨주는 것이다. 언젠가 40대 후반의 경영자가 상속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평균 수명을 감안할 때 그는 거의 30년의 ‘절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뿐인가. 절세 외에도 자식 사랑을 실천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상속 경영을 중단하라

이렇듯 기업을 위한 경영이 아니라 상속을 위한 경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상속 및 증여재산은 상속을 개시한 때의 시가에 따라 평가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된 상속증여세법 덕분이다. 몇 년 전 혹은 몇 년 후 시세를 기준으로 상속세를 물릴 수 없으므로 상속할 당시의 시세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일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인이 시세를 정할 수 없는 금이나 주택 등과 달리 주가는 대주주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자산의 가치를 스스로 정해 상속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합법적 탈세’를 가능하게 하는 이런 허점 때문에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고 국가의 세수는 줄어드는 것이다.

물론 모든 대주주가 이런 전략을 쓰지는 못한다. 보통은 업력이 길고 업종의 성장성이 떨어지며 많은 토지와 설비를 갖춘 기업의 대주주가 쓰기 좋은 전략이다. 그래서 이들은 ‘성장성이 떨어지니까 시가총액이 순자산 이하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변명하곤 한다. 하지만 업종의 성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곧 사양산업을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들 기업들은 성장성은 떨어지지만 매년 일정 수준의 이익을 낸다. 크게 성장하지는 못하지만 안정적인 기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익을 모아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게 아니라면 배당금을 많이 줘야 한다. 성장성도 없고 배당도 미세하게 책정하는 기업에서 투자자들이 얻을 이익은 없다. 그런 기업은 상장된 채 있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몇 년 전 칼럼을 통해 “PBR이 1 이하인 회사의 경우, 즉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액보다 낮은 경우 순자산가액을 상속증여세의 과세 표준으로 삼자”는 주장을 했다. 그 주장을 철회해야겠다.

투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다. 예측의 근거는 누적된 과거의 결과물인 현재다. 따라서 정확한 현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물론 정확한 현재를 바탕으로 해도 예측은 틀릴 수 있다. 하지만 부정확한 현재를 근거로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주가의 등락을 맞추는 것만이 예측은 아니다.

사람의 인생이 그렇듯 기업도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방향성이 있다. 그 방향성을 바탕으로 미래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이다. 나는 예상한 흐름이 나타난다면 당장 주가가 떨어져도 기다리고, 반대로 주가가 올라도 흐름과 다르면 매도하는 방식으로 투자해왔다. 단순히 특정 시점의 주가 등락을 맞히는 거라면 그건 예측이 아니라 원숭이도 하는 ‘찍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현재에 대한 데이터는 많다. 경영자의 말도 있고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각종 수치도 있다. 그 중에는 순자산에 대한 평가도 있다. 지금은 대주주가 원할 때만 자산에 대해 재평가를 한다. 하지만 10년 전, 20년 전에 평가한 자산으로는 정확한 현재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정기적이고 의무적인 자산재평가 제도를 제안한다. 그렇게 되면 투자자들은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상속을 위한 경영도 일정 부분 막을 수 있다. 대신 재평가에 따른 차액에 대한 세금은 조정해줄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기업인들의 의욕을 꺾어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주식회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합당한 과세’로 경제활동이 위축된다면 능력 있는 기업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설사 위축된다고 하더라도 상속을 위한 경영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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