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⑫] 거수기 사외이사 ‘이제 그만!’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스마트인컴 대표,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사외이사는 주로 거수기 노릇만 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공시시스템에 제출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이 이사회에 올린 3178건의 안건 중 사외이사가 반대의사를 표시한 안건은 5건에 불과했다. 도덕적인 비난이 소용없는 줄 알지만, 참 염치도 없다. 아마 다른 상장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주주와 경영자가 동의어로 쓰이는 우리나라에서 절대 다수의 대주주는 자기 말에 무조건 찬성해줄 사람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6년 5대 그룹 상장사의 사외이사들은 연간 9번 정도 이사회에 참석해 평균 3건의 안건을 처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월급쟁이들의 평균 연봉은 3,000만원이 조금 넘고, 이들 중 천만 명 이상이 3,0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연봉을 받는다. 330만명은 3,000만원에서 5,000만원 사이다. 연봉이 5,000만원이 안 되는 사람이 전체 직장인 중 75퍼센트를 넘는다. 그런데 5대 재벌 기업의 사외이사들은 1년에 9번 출근해 대략 3건의 안건을 처리하면서 평균 6,400만원의 연봉을 받아간다.
3건의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하루 8시간 일한다고 해도 일당 700만원 이상이다. 시가총액 상위 100위 상장기업의 사외이사 평균 연봉도 4,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연간 9일 일하고 상위 10퍼센트의 연봉을 챙겨가니 여기가 바로 신의 직장 아닌가.
어떤 제안에 반대하려면 그것을 뒤집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반면 찬성은 쉽다. “참 좋은 의견이다!”라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 유치원생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직장인 평균치를 훌쩍 넘는 연봉을 받아간다니 참 이상하다.
생선가게를 맡은 고양이를 감시하는 친구 고양이
사외이사의 본분은 감시와 견제 그리고 반대다.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이 기업이 아닌 대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닌지 감시해야 하고, 기업에는 이익이 되지만 사회에 해악이 되는 건 아닌지 견제해야 한다. 또한 불합리하거나 부족한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더 좋은 안을 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라고 기업이 주주들의 공동 재산에서 각출해 월급을 주는 것이다.
애초 감시와 견제를 당할 사람이 감시와 견제를 실행할 사람을 뽑도록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생선가게를 맡은 고양이를 감시하라고 친구 고양이를 고용하는 꼴이다. 겉보기에는 주주들의 투표에 따르는 지극히 민주적인 의사결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이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안다. 1주 1표라는 방식으로 투표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걸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런 제도가 계속 유지되는 이유를 나는 정말 모르겠다.
대주주와 경영자가 다를 때는 좀 더 면밀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대주주와 경영자가 같은 사람일 경우에는 대주주의 이사 선임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 과격한 결정이 아니다. 경영진의 전횡을 막으라고 적지 않은 연봉으로 고용한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굳이 월급까지 줘가면서 고용할 필요는 전혀 없다.
대주주가 일방적으로 선임하는 이사도 그렇지만, 감사 선임 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퍼센트로 제한하는 것 역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아니 의결권을 전혀 주지 않더라도 상황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대주주가 뽑은 사람들 중 한 명이 감사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가서 물어보고 싶다. “감시당할 사람이 감시할 사람을 선택하는 게 말이 되나요?”
초등학생은 물론 지나가는 강아지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그런데 이런 웃기는 제도가 2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사외이사의 자격조건들
이쯤에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대주주가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노심초사한다고 해서 세상 물정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그저 찬성만 하면 되는, 지극히 수준 낮은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많은 연봉을 주는 걸까? 1년에 9번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해 손만 들면 되는 일이라면 일당을 30만원만 준다고 해도 서로 하겠다고 줄을 설 텐데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직장인이라면 월차를 내고서라도 30만원을 벌어가려고 할 것이다. 그래도 직함이 이사이니 대외적으로 체면을 구기지 않을 정도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인 걸까?
그냥 친한 사람에게 내 돈이 아닌 돈으로 인심을 쓰는 경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외이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도 아닌 듯싶다. 2017년 5대 그룹 상장사가 선임한 사외이사는 모두 98명으로 전·현직 대학 교수가 46명, 관료 출신이 34명이다. 관료 출신들의 전직은 장관, 차관, 판사, 검사,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이다. 전방위적으로 인맥이 넓은 대학 교수를 비롯해 행정과 사법부 등에 직접적인 인맥이 있는 관료들이 그렇게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알지 못한다. 왜 대주주들이 그저 찬성표만 던질 뿐인 그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걸까?
기업은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하는 재화를 제공한다. 우리에게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제공하는 기업은 이윤을 내고 성장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퇴보한다. 이것이 내가 기업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기업은 과도하게 이익을 내서는 안 된다. 적정하다는 말이 애매하기는 해도 적정한 가격에 재화를 제공하고 적정한 이익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풍요와 윤택함을 제공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게 된다. 풍요와 윤택함을 제공하는 과정 역시 공정해야 한다. 내가 투자한 기업이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냈다면 그 수익을 내게 돌려준다고 해도 달갑지 않다. 이 모든 과정에 사외이사의 역할이 함께한다.
사외이사, 즉 감시자가 되려면 해당 기업과 업종의 특성은 물론 주식회사의 일반적인 구조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를 생물학 강의실에 데려다 놓으면 인사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를 고려한다면 이사회 구성 중 사외이사의 비율은 최소 25퍼센트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실질적인 수치는 25퍼센트 정도로 추정되는데 수적으로 열세인, 거기에 외부인이라는 불리한 조건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을 제대로 견제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전문가가 사외이사가 되어야 한다. 또한 대주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통제권을 쥐고 있는 대주주로부터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바로 사외이사제도가 시행되는 진짜 이유다. 그렇다면 이 사외이사를 누구의 손으로 뽑아야 하는가. 감시를 받아야 할 대주주이자 경영자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