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⑩] 담합해서 돈 벌고, 벌금은 회사 돈으로

면세점 담합은 공정거래 당국에서 종종 조사를 받곤 했다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스마트인컴 대표,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동일한 제품을 생산해서 경쟁관계에 있는 두 기업이 있다. 이들은 이윤 창출과 생존을 위해 기술개발 경쟁, 가격 경쟁, 마케팅 경쟁 등을 벌인다. 그 결과 품질은 향상되고 가격은 하락한다.

이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시장경제의 원리다. 경쟁하는 기업들은 힘들지만 소비자들은 낮은 가격에 질 좋은 재화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힘든 경쟁에서 벗어나 사이좋게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담합’이다.

사업자가 협약, 협정, 의결 또는 어떠한 방법으로 다른 사업자와 서로 짜고 물건의 가격이나 생산량 등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제3의 업체에 대해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거나, 이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말한다. 말이 길지만 핵심은 ‘부당한 이익’이다.

면세점들이 담합을 했다가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영업담당자들끼리 미리 연락해 마진이 적은 전자제품을 할인행사에서 빼기로 말을 맞췄다고 한다. 이를 통해 얻은 부당이득의 총합은 8억여원. 이 달콤한 부당이득이 신문 사회면에 담합을 주제로 한 사건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들키는 바람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결과적으로 손해를 본 것이다.

손해 보는 담합?

그런데 우리가 책에서 배우지 못한 희한한 담합도 있다. 이익을 취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부당한 손해를 보는 담합이다. 당신이 모니터를 생산하는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생산 규모도 꽤 커서 수출도 하고 있다.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업체도 있는데, 당신의 기업은 40퍼센트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고 다른 경쟁업체가 30퍼센트를, 여타 업체들이 나머지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규모의 경제를 이용해 제품을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결심을 한다. ‘앞으로 수도권에서는 우리 물건을 팔지 않겠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인데 이 시장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가능한 이야기일까? 상식적으로는 절대 말이 안 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점유율 1위 기업이 2위 기업에게 수도권 시장을 양보하고 대신 2위 기업은 다른 지방에서는 판매를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1위 기업의 공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2위 기업이 대신 제품을 생산해주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내막을 알면 이 황당한 담합이 이해가 된다. 상장되어 있는 1위 기업의 대주주이자 경영자의 지분은 25퍼센트이고, 상장되지 않은 2위 기업의 대주주이자 경영자의 지분은 90퍼센트이다. 그리고 비밀이 밝혀진다. 두 기업의 대주주이자 경영자는 동일인이었다. 혼자서 왼손과 오른손을 맞잡고 담합한 것인데 이로 인해 두 회사는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하지만 과징금은 대주주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 부담했다.

재벌 기업 자회사의 땅 짚고 헤엄치기

먼저 간단한 비상식 하나를 짚고 넘어가자. 1위 기업은 수도권으로 영업망을 확장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 수익을 더 낼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으니 이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은 손해를 본 것이나 다름없다. 담합을 통해 이득을 본 사람은 대주주 한 명밖에 없다. 그런데 과징금은 기업에서 나간다. 주주들은 두 번 손해를 입은 것이다. 그런데도 주주들은 여기에 대항할 방법이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엄연히 경쟁관계에 있는 두 기업을 한 사람이 다수의 지분을 갖고 경영해도 합법이라는 것이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보기 위해 다시 동업하는 식당으로 가보자.

이 식당은 삼겹살을 판다. 당신이 오랜만에 갔더니 친구가 바로 옆에 삼겹살을 파는 또 다른 식당을 개업했다. 지분은 친구가 90퍼센트를, 나머지 10퍼센트는 공동 투자한 식당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식당’에서는 길 건너편에서 오는 손님은 받지 않는다. 친구를 만났더니 얼마 전 담합으로 과징금을 맞았다며 ‘우리’ 몫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돈으로 과징금을 낸다고 한다.

주주들의 수가 워낙 많고 지분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렇지 단순화해서 살펴보면 지극히 비상식적인 일이다(이게 상식적으로 여겨진다면 그만 책을 덮어야 한다).

또 다른 비상식을 보자. 어느 날 당신이 매출과 매입전표를 보니 삼겹살의 공급업체가 바뀌었고 단가도 올라갔다. 전체적인 삼겹살 값이 올랐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알고 보니 친구의 아들이 삼겹살 공급업체를 차린 것이었다(이게 상식적이라고 여겨진다면 당신과 동업하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다).

식당 하나에 삼겹살 납품해서 얼마나 남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일 뿐이고 현실세계에서는 엄청난 규모다.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혹은 ‘부당지원’으로 불리는데, 공정거래법상 내부거래의 규제 대상은 총수 일가의 지분이 상장사는 30퍼센트, 비상장사는 20퍼센트 이상인 재벌 계열사로 하고 있다(중소기업은 50퍼센트까지 허용된다). 규제 대상인 계열사는 약 90여 곳인데 이들 기업의 내부거래 규모는 2017년에만 7조 9,183억원이었다.

상장사 지분율을 20퍼센트로 낮춰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 실행된다고 해도 여전히 불만이다. 효율성을 위해 자회사를 만들 수 있지만 그 자회사의 대주주는 왜 늘 대주주 일가여야만 하는가. 대부분 이미 만들어진 시장의 지분을 떼어주는, 그래서 땅 짚고 헤엄치면서 이익을 내는 자회사의 경영은 왜 늘 대주주 일가가 하는가. 기업의 경영권을 물려줄 만큼 유능하다면 왜 늘 그렇게 쉬운 일만 맡기는가.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갈취하거나 편법적으로 상속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왜 그대로 두고 있는가.

경영자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또한 그 이익을 주주들에게 공평하고 공정하게 나줘줄 의무가 있다. 그것이 상식이다. 해서는 안 되지만 기업이 이익을 보는 담합을 했다면 기업이라는 법인이 벌금을 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손해 보는 담합’처럼 그것이 대주주 개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담합이었다면 그 벌금은 대주주 개인이 물어야 한다. 결정도 경영자이자 대주주가 하고, 이익도 그가 보는데 과징금을 왜 애먼 주주들이 공동으로 부담해야 하는가.

땅 짚고 헤엄치는 자회사를 통한 상속은 너무 쉽다. 상장만 하면 최초 투자금의 수십 배를 쉽게 벌어들인다. 그 이익은 전부 대주주와 그 일가를 제외한 나머지 투자자의 것이다.

인간은 자기 이익에 충실하다. 그 이익을 위해 불법도 감행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도덕심에 호소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결국 답은 상식에 부합하는 엄정한 제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