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⑥] 재벌 3세, 4세 경영 제대로 승계되려면
[아시아엔=박영옥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스마트인컴 대표, 주식농부] 인사담당자는 입사지원자의 무엇을 보고 채용하는가? 지원 동기, 학벌, 외국어 능력, 학점, 기타 경험 등 다양한 요소들을 살필 것이다. 회사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다르겠지만 공통점은 그 모든 것이 입사지원자의 ‘과거’라는 사실이다.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통해 그의 포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포부의 진정성은 그의 과거를 통해 증명된다. “귀사의 제품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면서 과거에 영어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면 인사담당자는 콧방귀를 뀔 것이다. 미래에 하겠다고 말한 일이 과거의 궤적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그의 과거를 통해 미래에 어떻게 행동할지 추측하고 판단한다. 사소한 약속도 잊지 않고 지켰던 사람은 미래에도 그렇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좋은 성적을 냈던 운동선수는 올해에도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높다. 몇 년간 실적이 좋았던 보험설계사는 내년에도 좋은 실적을 낼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승진 역시 그의 과거 실적을 근거로 이뤄진다. 과장일 때 보여준 능력(여기에는 성실함, 정직함 등 인성도 포함된다)을 보고 차장이 되기에 충분한지 판단하는 것이다.
경영자는 무엇을 보고 채용하는가
‘어떤 사람을 입사시켜야 하는가?’ 혹은 ‘어떤 사람을 승진시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그 직책을 맡겼을 때 어떤 사람이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당연히 가능하다. “기업은 누가 경영해야 하는가?”
질문도 단순하고 답도 간단하다. 경영 능력이 있는 사람이 경영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경영 능력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역시 그의 과거를 보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횡령한 과거가 있는 사람을 경영자 자리에 앉힐 수 없다. 작은 난관도 뚫어본 적이 없는 사람을 경영자 자리에 앉힐 수 없다. 부하직원들과 갈등을 자주 일으켰던 사람 역시 경영자에는 적합하지 않다. 앞으로는 잘하겠다고 해도 그들이 보여준 약점을 극복한 과거가 없다면 믿기 어렵다.
반대로 위기에 처한 기업에 전문경영인으로 들어가 회생시킨 사람이라면 비슷한 처지의 기업에 어울리는 경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체계를 잡는 성과를 보여준 사람이라면 갑자기 성장해서 중구난방인 기업이 탐낼 만하다. 신사업을 개척하는 역량을 보여줬다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려는 기업에 안성맞춤이다. 꼭 외부인사일 필요도 없고 전문경영인이었을 필요도 없다. 기업 내에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경험이 많은 사람을 경영자로 임명할 수도 있다. 100퍼센트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합리적이며 상식적인 인재 등용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떤가. “창업자는 경영자 자리에 적합한가?” 예를 들어 1억원의 창업자금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200억원 규모의 기업으로 키운 창업자가 있다면 그는 경영자 자리에 적합한가? 이 역시 곧바로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열심히 키워온 기업을 스스로 망하는 길로 인도한 창업자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묻는다면, 최근 몇 년간의 기업경영 성과 등 과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본 다음 판단하겠다. 여기까지 동의한다면 다음 질문은 쉽다.
“경영자의 아들은 경영자 자리에 적합한가?” 그럴 리 없다. 현재의 경영자가 지금까지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고 인품 또한 훌륭하더라도 대답은 바뀌지 않는다. 경영능력과 인품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그대로 유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경영자의 아들 역시 자신의 과거로써 미래를 증명해보여야 한다.
일등을 놓친 적이 없고 그 성적을 바탕으로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해도 그것으로 경영능력이 검증되지는 않는다. 초중고 시절 좋은 성적을 유지한 사람은 농부의 아들 중에도 있다. 외국 명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은 공무원의 아들 중에도 있다.
경영자 아들이 경영자가 되는 건 경영능력이 유전이라서?
경영자의 아들이 경영자가 되려면 경영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후계자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참고사항은 될지 몰라도 검증받은 것은 아니다. 나라를 외세에 빼앗긴 왕도 왕위계승을 위한 엄격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주주의 아들딸이 초고속으로 승진하는 사례를 자주 본다. 도대체 어떤 성과를 냈기에 남들은 수십년 바쳐도 도달하지 못하는 자리를 몇년 만에 꿰차는 것인가. 한번도 회사에서 일한 적 없는 사람이 대주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자 자리에 앉는 꼴도 우리는 본다. 부모의 능력은 자식의 실력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 된다. 또한 아무리 개인기업이라고 해도 함부로 자식에게 경영자의 자리를 물려줘서는 안 된다. 그 회사에도 직원들이 있고 직원들 뒤에는 그들의 가족이 있다. 주식회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중견기업에서 임원으로 있다 퇴사한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말이 좋아 3세, 4세 경영이지 같이 일하다 보면 가슴이 턱턱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앞으로 이 기업이 어떻게 될지, 불안감이 밀려오는 게 사실이에요. 돈 한 푼 벌어본 적 없이 부모덕에 벤츠 몰며 부족한 거 모르고 자란 3, 4세가 직원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겠어요? 기업에 위기라도 닥치면 돌파할 수 있을까요?”
일상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비상식은 아니다. 반대로 일상에서 늘 보는 일이라고 전부 상식은 아니다. 대주주와 경영자가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고 자식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지 않는 것이 뉴스가 되는 나라에서 내가 말하는 상식은 백면서생의 주장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경영 능력이 있는 사람이 경영자의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상식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비상식이 횡행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