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 24] 시장 어려울수록 언론이 중심 잡아야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스마트인컴 대표,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시가 6억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친구가 모임에 나와서 최근 일주일 동안 100만원을 현금화했다고 말한다. 그 말만 하고서 친구는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남은 친구들은 왜 그 친구가 100만원 어치 주식을 팔았는지 분석하기 시작한다. 마침 한 친구가 그의 집에 사촌동생이 왔었다는 정보를 전해준다. 다른 누군가는 그 사촌이 사업에 실패해 살림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론은 어렵지 않게 났다. 그가 주식을 판 이유는 형편이 어려운 사촌을 돕기 위해서였다. 이 ‘분석’은 동창회 커뮤니티에 올라 삽시간에 ‘사실’로 퍼진다. 이 분석의 결과가 사실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당신이 이 동창회의 일원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당장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6억원을 투자하고 있는 친구가 100만원이 없어서 주식을 팔았다고? 사업에 실패한 조카를 돕기에 100만원은 너무 적은 액수 아닌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 ‘당사자한테 물어봤어?’ 나는 이런 질문을 뉴스를 볼 때도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 이해하기 힘든 분석들이 많기 때문이다.
북핵 위기와 외국인투자자
2018년 한반도는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향해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앞서 2017년 8월에는 북한과 미국이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지금도 그리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벌써 몇번의 전쟁을 하고도 남았을 만큼 ‘말 폭탄’을 쏟아 부었고 그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비슷한 시기에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던 코스피지수가 하락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코스피지수 하락이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주요 원인으로 많은 외국인이 북한과 미국의 갈등, 즉 북핵 문제로 인해 한국의 상황을 불안하게 봤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외국인은 8월 들어 약 10일 동안 1조원 가량을 순매도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매도의 원인을 오로지 북핵으로 돌리는 것은 ‘어려운 조카를 돕기 위해서’라는 분석만큼 이상하다.
우리 증권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본의 규모는 600조원에 달한다. 말 폭탄이 오가던 열흘 동안 600조원 중 무려 1조원이 현금화되어 빠져나갔다. 당신이 다른 나라의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전쟁이 날 것 같다고 한다면 투자한 자금 중 600분의 1만 회수하겠는가. 그런데도 북한과 관련된 이슈가 있으면 언론은 늘 증시를 들먹인다. 어느 때는 북한 때문에 지수가 떨어졌다고 하고 또 어느 때는 ‘북한 이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수가 올라갔다고 분석한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는 내국인은 팔고 외국인은 샀다.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만약 전쟁이 임박했고 한국인만 모르는 어떤 정보가 있다면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일시에 대거 출국할 것이다(물론 이런 정보화 시대에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한 하한가에 파는 한이 있더라도 국내에 투자된 모든 돈을 회수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이 서해상에서 교전을 했을 때도,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과 핵은 위협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아주 낮다. 물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하더라도 정부와 군은 그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또한 언론은 정부의 대응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은 다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위험한 발언을 할 때마다 라면과 쌀을 사재기해야 할까? 예비군들은 자진해서 재입대를 해야 할까? 투자자들은 또 무엇을 해야 할까? 보유 주식을 몽땅 현금화해서 금이나 달러로 바꿔야 할까? 그걸 들고 잠잠해질 때까지 해외에 나가 있어야 하는가?
언론이 나서서 공포와 불안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 북한이 왜 갈등하는지, 그 험악한 말들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차분하게 분석해서 불안을 해소해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언론은 ‘불안, 심각, 충격’ 등을 말하고 독자들은 되레 차분했다. 북한 리스크가 이번에는 다르다는 한 기사에 독자들은 ‘외국인들의 이익실현’이라는 댓글을 달고 있었다.
우리 언론들은 미국, 유럽, 중국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당장 우리 경제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주식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그 일과 관련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국내 기업은 별로 없다. 다만 주가에 타격이 있을 뿐이다. 기업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주가가 떨어진다면 오히려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일이다(내가 위기 이후를 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언론은 ‘전대미문의 위기’라고 과장할 게 아니라 위기의 본질을 기사로 써서 독자들로 하여금 위기 이후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