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의 돈 생각⑤] 부자는 나쁘다는 편견을 버려라

“당신은 죽을 때까지 돈 걱정을 하시겠습니까?” “욕망이 앞서는 사람은 요행수를 바라면서 불평으로 인생을 허비하고, 의지를 가진 사람은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주식농부’로 잘 알려진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가 늘 던지는 질문이다. 기업의 가치에 투자하는 ‘농심투자법’으로 연 50% 이상의 투자수익을 거두며 ‘주식농부’로 널리 알려진 박영옥 대표가 <아시아엔>에 글을 연재한다. 그는 “주식이 아닌 기업에 투자했기 때문에 행복한 투자자가 될 수 있었다”며 “농부가 볍씨를 고르듯 좋은 기업을 골라 투자한 뒤 성과를 공유하라”고 말한다. <편집자>

[아시아엔=박영옥<주식, 투자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얘야, 너는 기업의 주인이다> <주식, 농부처럼 투자하라> 저자,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와타나베 켄 주연의 <인셉션>(Inception)은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고 새로운 생각을 심을 수 있다는 것을 기본 설정으로 삼고 있다. 타인의 머리 속이 범죄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영화에 따르면 말은커녕 협박으로도 안 될 때, 상대방의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조작할 수 있다. 무의식까지 조작하므로 그 어떤 논리보다도 강력하게 작동한다. 설정 자체가 그리 놀랍지는 않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조작하는 일은 인류사에서 종종 벌어져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화다. 남아선호사상, 인종차별, 신분제, 혈액형 등…. 자신도 여자의 몸에서 나왔으면서 여자를 무시하고, 멜라닌을 기준으로 사람의 우열을 평가한다. 귀하고 천한 사람은 날 때부터 결정된다고 하고, 사람의 성격이 고작 혈액형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편견과 이권이 있을 뿐 논리는 없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런 문화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에게는 ‘원래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부자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부자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부자인 어떤 사람을 만나고 나면 상황에 따라 생각을 바꾸기도 하지만,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만 할 때는 편견을 버리지 못한다.

부자라는 말을 한 개인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의미로 쓸 때 부자의 이미지는 특히 부정적이다. 왜 그럴까? 부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동화 속 부자 가운데 착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동화 속에서 부자는 심술궂고 외모도 별로고 심지어 어리석기까지 하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착하고 외모도 그럴 듯하며 지혜롭게 표현되기도 한다. 대체로 주인공은 가난한 사람이다.

동화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난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동화의 끝은 대부분 권선징악인데, 이 역시 부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부자는 벌을 받아 가난해지고 가난한 자는 복을 받아 부자가 된다. 동화뿐 아니라 속담이나 심지어 성서도 그렇다. 가진 사람은 못 되게 묘사되고,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성경에 나와 있다.

그런데 동화의 결론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뭔가 좀 이상하다. “부자는 나쁘고 가난한 사람은 착하다”는 프레임의 전형을 보여주는 <흥부전>을 보자. ‘심술궂은’ 부자에게 하늘이 내리는 벌이 가난인데, ‘착한’ 주인공은 이미 이야기의 시작에서부터 하늘이 내리는 벌인 가난에 시달린다.

게다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인데, 흥부는 부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뭔가를 하지 않는다. 제비 다리를 고쳐줬지만 그 자체는 부를 쌓는 일과 무관하다. 흥부는 뚜렷한 직업도 없이 자식들이 줄줄이 생길 때까지 가난하게 살았다. 무능·무욕·선함을 연장선상에 놓고 봐도 되는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가난한 상태로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당신에게 부자는 어떤 이미지로 남아있는가? 혹시 당신은 지금까지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시켜주는 증거만을 찾아 수집하고 조작하지는 않았는가?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부자는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될 몹쓸 무엇이다. 부자가 되면 흉한 몰골로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천벌을 받을 것인데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들을 욕하면서도 내심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막연히 가지고 있던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부자가 되고 싶은 진심이 충돌하여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부도덕하고 심술궂은 사람 중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다. 가난한 사람 중에도 부도덕하고 심보가 고약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분법적인 판단에서 나온 편견을 버리고 부자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부유함을 샘내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입힐 것이 아니라, 그가 풍족한 지갑을 가지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배우는 게 합리적이다. 풍족한 자본을 유지하고 더 늘리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배워야 한다.

부자를 싫어하면서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부자를 싫어하면 부자에게서 배울 수도 없다. 증오하는 대상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부자가 되고 싶은지, 부자에 대한 꺼림칙한 마음은 없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내 안의 음성으로 가장 진지하고 솔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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