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옥의 주식이야기⑬] “주총 휴일에 실시하고 전자투표제 시행을”
[아시아엔=박영옥 주식농부, 스마트인컴 대표이사, 아시아기자협회 이사] 지방선거부터 대통령선거까지 한국에선 2~3년마다 전 국민이 참여하는 선거가 열리고 그때마다 나는 매번 투표소를 찾는다. 미리 받은 정보로 후보를 선택했으니 선거 당일은 기표만 하면 된다. 투표소가 집 가까운 곳에 있으니 굳이 자동차를 탈 필요도 없다. 산책 나가듯 편안한 복장으로 잠깐만 걸어가면 손쉽게 투표를 할 수 있다. 필요한 게 있다면 투표를 하겠다는 마음 하나다.
잠깐 황당한 상상을 해본다. 투표를 하기 위해 3시간 동안 운전을 해야 하고, 그도 모자라 주차장부터 산 중턱까지 1시간을 걸어야 한다면? 복장 규정도 엄격해 남자는 정장에 넥타이, 여자는 치마에 굽이 5센티미터 이상인 구두를 신어야 투표소에 입장할 수 있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동시에 열리는데 두 투표소의 거리가 1시간 이상 걸린다면? 이런 황당한 상황이라면 투표율이 얼마나 될까? 국가는 국민들이 쉽게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강한 의지로 최선을 다해야만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건 민주주의 선거가 아니다.
누구를 위한 주주총회인가
그런데 민주주의 정신에 어울리지 않는 선거가 그것도 대형 규모로 열악한 환경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업종과 기업 규모가 다 다른데 어쩌면 그렇게 업무처리 속도가 비슷한지 12월 결산법인은 3월을 불과 열흘 남겨두고 주주총회를 개최할 준비가 완료된다. 좀 부지런한 기업은 2월에도 할 법하고 처리할 게 많은 기업은 4월에도 할 법한데 실무자들이 어디 모여서 회의라도 하는지, 2018년의 경우 3월 23일 하루에만 539개사가 주총을 열었다.
금융위원회가 기업들의 주총 분산을 독려한 탓인지 2017년 수퍼 주총데이에 비해 353개 기업이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슈퍼하다. 이렇듯 평일 아침에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주총의 속내는 빤하다.
‘몇 주 되지도 않으면서 주총에 와서 고함 치고 항의하면 피곤하기만 하다.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할 건데 가능하면 조용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소액주주들의 표가 모이는 걸 눈으로 확인하면 다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결집할지 모른다.’
실제로 어떤 기업의 주총에서 항의하는 주주에게 몇 주나 들고 있는지 묻는 진행자도 있었다. 물론 그들 나름의 논리는 있을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이 하는 말을 다 들어주면서 어떻게 기업 경영을 하나. 기업은 모름지기 오너가 있어야 책임 경영을 할 수 있다. 주가가 오르면 다 팔고 나갈 거면서 웬 주인 행세냐? 끝까지 기업을 지킬 사람은 우리 대주주 일가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동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상장할 때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당당하게 저런 말을 하는 대주주는 없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비상식적이라고 여기는 일 중에는, 실제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 많다. 감시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비난은 싫어하고 칭송은 좋아한다. 이익을 나누는 것보다 독식하는 걸 좋아한다.
뒷간이 그렇듯, 상장할 때의 마음과 이후의 마음은 다르다. 이런 인간의 마음이 어쩌다가 발현되는 것이라면 규제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절도죄가 있는 것은 남의 물건을 탐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고 폭행죄가 있는 것은 말로 되지 않을 때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덕에 기댄 비판보다는 자기 이익에만 충실하고 싶은 욕심을 가둘 울타리가 필요하다.
주주총회는 ‘주주에 의해 구성되는 주식회사 최고의 의사결정 기관’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주주들의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국가적인 선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최선과 강한 의지’가 있어야만 권리를 행사하는 여건이어서는 안 된다.
주주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는 몇가지 제안
주주총회를 간단히 개선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전자투표 도입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8년 3월말 기준으로 전자투표를 도입한 기업은 코스피 360개 사, 코스닥 842개 사, 상장된 2,045개 사 중 59퍼센트에 해당하는 기업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투표 이용 현황을 보면 전체의 38.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주주들의 참여를 쉽게 한다는 취지인데 반대할 명분이 있는가. 이런 제도를 의무화하지 않고 선택 사항으로 남겨뒀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제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라도(이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일하는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이다) 주주총회를 휴일에 열고 그것을 생중계하면 주주총회와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를 굳이 평일 아침에 할 이유가 없다. 담당자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1년에 한 번이니 휴일 출근을 못할 것도 없다. 버크셔 해서웨이처럼 축제를 벌이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월차를 내지 않아도 갈 수 있는 날로 하라는 것이다. 또 주주총회를 생중계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혼자서도 방송을 하는 시대이니 기술적인 어려움은 전혀 없을 것이다.
현행 전자투표제는 주주총회 이전에 투표하도록 되어 있다.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최고의 의사결정’을 하는 일인 만큼 설명과 토론을 들어보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대주주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민주적인 주식회사 경영’을 위한 제도들이 제안되면 늘 외국계 헤지펀드가 단기적인 이익을 위한 결정을 할 거라고 걱정들을 한다. 나는 우리 투자자들이 ‘배당성향을 100퍼센트로 하라’는 안건에는 반대표를 던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비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대주주이자 경영자의 제안이 합리적이라면 생중계를 보던 주주들이 거기에 표를 던질 것이다. 주주들이 어리석은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대주주가 어리석은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되돌려 주겠다.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커지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이 어렵다는 말에 대해서는 대주주 역시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되돌려 주겠다. 하나는 현실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하나는 현실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 휴일에 하는 주주총회를 생중계하면서 전자투표제를 도입한다고 무슨 큰일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여전히 대부분의 권한은 대주주에게 있다. 그저 견제를, 감시를 좀 하겠다는 것뿐이다. 관행과 기존 제도에 비춰보면 과격한 제안으로 보일 수 있다.
이해관계를 떠난 위치에 있는 어느 대학 교수님의 걱정도 보이고 사실을 전한다는 기자의 염려도 보인다. 하지만 일일이 열거하고 반론하지 않겠다.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비상식적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