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맞는 5단계, 충격·분노·타협·우울·수용···”눈물 나도록 살아라”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인생의 최후를 어떻게 살다가 떠나면 좋을까??과연 죽음을 정면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을 우리는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했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를 바라보는 것이 매정하게 보일 수 있으나 죽음의 과정을 알게 해서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해주고 죽음을 위엄 있게 맞도록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 죽음을 맞이하는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 엘리자베스 쿠버로스(Elizabeth Kubler-Ross)의 주장이다.
첫째, 충격과 부정(Shock and Denial)이다.
죽음이 앞에 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은 충격을 받고 믿지 않으려고 한다. 또 진단 과정이 잘못되었거나 그 외에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둘째, 분노(Anger)의 단계다.
죽음을 확인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단계로 ‘왜 내가 죽어야하는가?’라는 반응을 보인다. 신을 원망하고 운명을 저주하고 가족, 친구, 의사, 병원 등 주위 상황에 대해서 화를 낸다.
셋째, 타협(Bargaining)의 단계다.
신이나 입원 중일 경우 의사, 가족 등과 타협하려고 한다. ‘내가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종교 단체 등에 헌금을 하거나 마음 속으로 다짐과 약속을 한다.
넷째, 우울(Depression)의 단계다.
타협으로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에 우울해 하고 위축되며 자살도 고려한다.
다섯째, 받아들임(Acceptance)의 단계다.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이를 받아들이는 단계로 용기 있게 죽음과 사후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때 종교적인 신앙이 큰 힘이 된다.
이 다섯 단계를 거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모든 사람이 이렇지는 않다. 특히 가까운 가족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너무나 어렵다. 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사실을 통고하는 역할을 가족이 할 것인가 의사가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존재한다.
환자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알기를 꺼리는 면도 있다. 이런 경우 그 개인이 처하고 있는 심리적인 면, 질병에 대한 인식과 죽음을 인정할 능력 여부와 안정감 등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말을 해야 한다.
36세 나이로 대장암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난 영국인 샬롯 키틀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작성한 글이 감동을 준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살고 싶은 나날이 저리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죽음을 앞두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봤어요. 기본적 의학 요법은 물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습니다. 침도 맞았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놓고 나니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아이들 껴안아주고, 뽀뽀해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얼마 후 나는 그이의 곁에서 잠을 깨는 기쁨을 잃게 될 것이고, 그이는 무심코 커피 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딸 아이 머리도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는 저만 아는데 앞으론 누가 찾아 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를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기쁨을 품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 그거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번 뽑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죽음이라도 생사를 해결한 사람은 다르다. 범부들은 죽으면 끝이라 하고 깨달은 사람은 이 죽음을 변화로 안다. 그러므로 죽음에 다다라 종종걸음을 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잘 죽어야 다시 잘 태어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이 세간의 애착(愛着) 탐착(貪着) 원착(怨着)을 모두 여의며, 매일 매일 법설(法說)을 들어 정신을 맑힌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천도(薦度)만 될 뿐 아니라 그 법력(法力)이 허공법계에 사무쳐서 미물곤충까지 천도시킬 수도 있다. 눈물이 나도록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