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유비의 유언 “선한 일이 작다고 해서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덕산재(德山齋) 바로 앞에 작은 공원이 있다. 내 다리가 불편하여 일산의 보물인 호수공원엔 갈 엄두도 못 내고, 틈나는 대로 이 작은 공원을 산책하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한다. 지팡이에 의지하며 기를 쓰고 걸어도 불과 몇백 미터를 걷지 못한다. 중간 중간 작은 벤치가 없으면 그나마도 걸을 생각도 못낸다.
그 고마운 벤치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 일산 동구청이나 내가 사는 백석동에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누구나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작은 공원의 벤치, 그 얼마나 감사한지!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 나쁜 사람들만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세상에 온통 좋은 사람들만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생각이 옳은 것일까? 이 세상은 악인 보다 그래도 선한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누가 만들었던 간에 공원에 벤치를 만들어 놓으면 누구나 많은 사람이 쉴 수 있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이 세상이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은 없을 것이다.
지난 6월14일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고등학생의 선행이 알려져 많은 이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사거리에 하수구가 막혀서 도로에는 물이 넘쳐났고 행인들은 길을 건널 수가 없어 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도로가 침수돼 건너지 못하고 계속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 남학생이 무릎을 꿇고 발도 빠져가며 하수구를 찾아 이물질을 걷어내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자 물은 거짓말처럼 금세 다 빠지고 도로가 드디어 제 모양을 드러냈다. 잠깐 내린 비로 하수구에 나뭇잎 등 이물질이 막혀 물이 빠지지 못했는데 학생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지나가는 차량의 물세례를 받으며 작은 선행을 베푼 것이다.
목격자들은 당시 상황을 여러 장의 사진에 담아 SNS에 올렸고 작은 선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학생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실행에 옮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작은 선행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이런 작은 선행들이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목숨을 구한 작은 선행’ 이야기다.
작은 보트를 가진 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해마다 여름철이면 보트에 가족을 태우고 호수를 저어 가 낚시를 즐겼지요. 어느 해 여름이 끝나자 그는 배를 보관해 두려고 땅 위로 끌어올렸는데 배 밑에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주 작은 구멍이었지요. 그는 어차피 겨울 동안은 배를 육지에 놓아 둘 것이므로 내년 봄에나 수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겨울이 오자 그는 페인트 공을 시켜서 보트에 페인트를 새로 칠하게 했습니다. 이듬해 봄은 유난히 일찍 찾아왔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빨리 보트를 타고 싶다며 성화를 부렸습니다. 그는 보트에 구멍이 뚫린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아이들에게 보트를 타도록 승낙했습니다.
그로부터 두 시간이 지난 후에 그는 배 밑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기억이 번개처럼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수영에 익숙하지 못했지요. 그는 누군가에게 구원을 청할 생각으로 급히 호수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 두 아들은 배를 끌고 돌아오고 있네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아들을 포옹한 다음 그는 배를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배의 구멍을 막아 놓았던 것입니다. 그는 페인트공이 배를 칠할 때, 그 구멍까지 고쳐 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선물을 들고 페인트 공을 찾아갔습니다. 페인트공이 놀라며 말했습니다. “제가 배에 칠을 했을 때 대금은 지불해 주셨는데 왜 이런 선물을 주십니까?”
“배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당신은 페인트칠을 하면서 발견하고 막아 주셨지요. 올 여름에 그것을 고처서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깜빡 잊어먹고 있었답니다. 당신은 내가 그 구멍을 수리해 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깨끗이 수리를 해 주었소. 당신은 불과 몇 분 안에 그 구멍을 막았겠지만, 덕분에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구해주셨소!”]
삼국지에 이런 말이 나온다. “勿以善小而不爲勿以惡小而爲之” 즉 “선한 일이 작다고 해서 하지 않아서는 안 되고 악이 작다고 해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유비의 유언이다. 유비는 후한 말 한나라를 부흥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거병하여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던 인물이다.
관우와 장비, 조자룡과 제갈공명 같은 인재들을 곁에 두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마는데, 그가 죽기 전에 제갈공명에게 “새는 죽을 때 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 말이 진실하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일단 내 아들 유선(劉禪)을 임금 자리에 올리시오. 그래서 섬겨보아도 도저히 안 되겠거든 폐위시키고 그대가 그 자리를 이으시오.”
유비는 왜 제갈공명에게 이렇게 무시무시한 당부를 했을까? 그의 아들 유선은 임금 자리에 오르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선은 중국역사에서도 유명한 바보였는데, 문제는 그가 그렇게 된 데에 아버지인 유비의 잘못도 컸다.
그런데 제갈공명은 “저는 죽을 때까지 아드님에게 충성을 다할 겁니다”라고 했다. 공명은 실제로 부족하기 짝이 없는 유선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과로로 죽었다. 그런 제갈공명과 이야기를 마친 유비는 편안한 마음으로 아들 유선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선한 일이 작다고 해서 하지 않아서는 안 되고, 악이 작다고 해도 저질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