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기적’을 바라신다고요?···당신이 그 주인공입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기적이란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 또는 진리(眞理)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을 말한다. 불가사의는 본래 불교에서 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 또는 가르침을 뜻한다. 그리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상태를 일컫는다.
기적이 우리 현실에 존재할까? 어떤 문화에서나 기적적인 사건에 대한 믿음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믿음은 종교가 가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원시문화에는 자연의 인과관계라는 과학적 개념이 충분히 발달되어 있지 못했으므로 ‘초자연적’ 기적이라는 관념도 완전하게 발달되지 못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비상한 사건이나 힘의 작용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들도 의식(儀式)이나 마법(魔法) 또는 샤머니즘 등 여러 가지 양식을 통해 보다 정상적인 행동양식들과 통합된다. 어떤 문화에서든 기적적인 사건에 대한 믿음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기적에 대한 이 믿음은 실제로 모든 종교가 갖는 특징이기도 하다.
초기 불교의 기록에 따르면 고타마 붓다는 ‘모든 요가 수행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존재였던 그가 당연히 지녔던 기적의 능력을 가리켜 그 힘 자체에는 종교적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히 대승불교의 전통에는 부처의 유물에 관련된 기적뿐 아니라 그의 탄생과 생애 및 이후의 불교성인들의 탄생과 생애를 기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만연했다.
그리스도교 <신약성서>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병을 치료하거나 음식물을 넉넉하게 나누어주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신약시대 이후에도 기적은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기적은 그리스도교 성인이 죽은 뒤뿐만 아니라 살아있을 때도 그들 생애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마호메트는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이 위대한 기적이라는 원칙 아래 기적과 기적의 힘을 부인한 유일한 종교 창시자였다. 그러나 마호메트가 죽은 뒤에 나온 <성인전>(聖人傳)에서는 그의 생애를 가장 훌륭한 기적적 일화들로 서술했다.
원불교에서는 기적에 대해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원불교에서도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기도했을 때 흰 종이에 맨손으로 인장을 찍자 ‘혈인(血印)’이 나타난 기적이 1919년에 있었다. 그런데 소태산 부처님께서는 종교가 이적(異蹟)으로 사람을 모으면 오래 못 간다고 했다.
그러나 진리를 향해 자기의 소망을 지성으로 비는 진리불공(眞理佛供)과 또 실생활에서 최선을 다하는 실지불공(實地佛供)을 아울러 올리면 상상도 못할 위력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진정한 불공법이고 기적을 비는 기도법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 어렵게 세 식구가 사는 가정이 있었다. 그런데 이 집에 걱정거리가 생겼다. 다섯 살 막내가 가난한 형편으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병이 깊어져 가기만 했다. 엄마는 아무런 도리가 없어 앓는 아이의 머리만 쓸어줄 뿐이었다.
어느 날, 이 집 큰아이는 기적만이 동생을 살릴 수 있다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를 듣게 되었다. “기적이라도 있었으면” 다음 날 아침 소년은 엄마 몰래 저금통을 가지고 나왔다. 모두 합해 7600원이었다. 소년은 그 돈을 들고 십리 길을 달려 시내에 있는 약국으로 갔다.
“아이고 얘야, 숨 넘어갈라, 그래 무슨 약을 줄까?” 숨이 차서 말도 못하고 가쁜 숨만 헉헉 몰아쉬는 소년에게 약사가 다가와 물었다. “저, 저기 도~동생이 아픈데 기적이 있어야 낫는데요.” “이걸 어쩌나, 여기는 기적이란 걸 팔지 않는단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옆의 신사가 물었다. “꼬마야, 네 동생한테 어떤 기적이 필요하지?” “어, 나도 몰라요. 수술해야 하는데 돈은 없고 기적이 있으면 살릴 수 있대요. 그래서 기적을 사야 하는데…”
신사는 7600원으로 기적을 사겠다는 소년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소년의 동생을 진찰한 뒤 병원으로 옮겨 수술까지 해주었다. 약사의 동생인 그는 큰 병원의 유명한 의사였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소년의 엄마가 수술비용을 물었을 때 그 의사가 말했다. “수술비용은 7600원입니다.”
이야말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아이를 살리겠다는 어머니의 그 간절한 진리기도와 소년의 천진(天眞)과 일심(一心)을 다한 실지기도가 합해진 위대한 불공의 결과가 이런 기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기거나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기적을 빈다. 그런데 살면서 상식으로 생각할 수도 없을 기이한 일이, 그리고 진리의 위력이 행해졌다고 믿을 만큼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개 기적을 빌면서도 사람들은 기적이 정말 일어날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기적은 그렇게 이루어지기 힘든 일일까? 그렇지 않다. 기적은 바라고, 믿고, 행동하고,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흔한 현상이다. 지금부터 그렇게 믿고 빌고 싶은 기적을 원한다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고 지성이 곧 부처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의 원리를 알지 못하고 사사(私邪)하고 기괴(奇怪)한 것을 찾으며 역리(逆理)와 패륜(悖倫)의 일을 행하면서 입으로만 기적을 빈다면 이것은 사도(邪道)와 악도(惡道)를 행하는 일이라 자칫 기적보다는 천벌을 받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