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이목 집중시킨 ‘2014 아시아 인물’ 1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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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아시아에는 여러 명사들이 등장해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정권이 교체돼 권력을 잡은 인물도 있는 반면, 권력에 저항하려는 인물도 나타나 주목을 끌었다. 기업경영에서 큰 성과를 이룬 새로운 주인공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시아엔>은 2014년 아시아를 움직인 주요인물 10인을 선정했다. 편집자

<사진=AP/뉴시스>

1. ‘반부패 개혁’ 드라이브 시진핑 중국 주석

시진핑(61)은 현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총서기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으로서 강력한 반부패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2000년 푸젠성(福建省) 당위원회 서기, 2002~2007년 저장성(浙江省) 당위원회 서기, 2007년 상하이시上海市) 당위원회 서기를 지냈다. 특히 푸젠성 당위원회 서기, 저장성 당위원회 서기 재직시 경제발전에 공을 많이 세우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였다.

2012년 11월 15일,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된 데 이어 중앙군사위 주석에 올라 무력을 장악한 시진핑 주석은 이듬해 봄에는 당, 정, 군 3권을 틀어쥔 명실상부한 1인자가 됐다. 2014년 안으로는 국가헌법일을 제정하고 ‘의법치국’(依法治?·법에 따른 국가통치)정체를 강조하는 한편 반부패 개혁정책을 펼쳐 공직자 18만명을 낙마시켰다. 밖으로는 역사문제로 갈등을 빚는 일본에 강경한 외교정책을 구사해 역대 가장 강력한 지도자임을 각인시켰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 아시아판은 11월17일호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표지모델로 올리고 ‘시 황제(Emperor Xi)’란 제목을 붙였다. 타임은 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이 중국 인민을 일어나게 했고,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이 중국인민을 부유하게 하고, 시진핑 주석이 중국 인민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뉴시스>

2. ‘승부사 정치’ 거듭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베 일본 총리는 취임 이후 ‘승부사 정치’를 거듭해왔다. ‘집단자위권’을 도입하는 등 보수우익 정책을 연이어 채택하고 ‘아베노믹스’를 통해 만성적인 디플레 상황을 타개하려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취임 이후 집단자위권을 도입하기 위해 다각적인 시도를 해왔다. 마침내 지난 7월에는 내각결의를 통해 “집단자위권 행사가 헌법상 허용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는 집단자위권이 사실상 일본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이 국내외 상식으로 통해 왔다. 하지만 이같은 장애물을 국회 심의도 없이 ‘내각결의’ 하나로 뒤집은 것이다. 이에 따라 ‘집단자위권’이라는 용어가 올해 일본에서 하나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아베가 내세운 논리는 ‘적극적인 평화주의’. 오늘날의 안보는 그 어느 나라이든 단독으로 지킬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 일본은 최근 해외분쟁 현장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가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나 호주 등과 손잡고 이런 비판에 맞서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보수우익 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아베는 대내적으로는 ‘알 권리 침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을 강행했고, 일본 국민의 과반이 원전 재가동에 반대함에도 ‘원전제로’ 정책을 사실상 폐기했다.

아베 정부는 아베노믹스를 통해 주가가 상승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는 자체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아베정권 출범 전날인 2012년 12월 25일 1만80.12 포인트에서 중의원을 해산한 이달 11월21일에는 1만7357.51 포인트로 7천 포인트가량 상승했다. 또 현재의 경제상황에서 다른 대안이 없다며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지만 소비세 인상 논란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겹치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중의원을 해산하는 ‘결단’을 내렸다. 아베의 ‘승부사’ 정치가 또다시 발동된 셈이다.

아베 총리는 개헌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자임해 왔다. 이에 따라 그는 일본을 패전국으로 규정한 전후체제 개편을 위해 총선 후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쟁포기를 규정한 헌법 제9조의 개정을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AP/뉴시스>

3. ‘경제성장 드라이브’ 모디 인도 총리

일본에 ‘아베노믹스’가 있다면 인도에는 ‘모디노믹스’가 있다.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15대 총리는 집권 후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겨냥한 ‘모디노믹스’로 경제성장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지난 5월 총선에서 구자라트 주지사 나렌드라 모디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haratiya Janata Party, BJP)이 압승을 거뒀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파키스탄이 분리된 이후 인도 선거에서 간디와 네루 가문으로 대표되는 국민의회파(Congress Party)가 다수당 지위를 놓친 건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

모디는 전력과 도로, 철도 건설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고 재정적자 해소, 외국인 투자 확대, 조세 및 노동시장 개혁등을 통해 10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모디노믹스’를 내세웠다.

지난 1950년 구자라트주의 힌두 집안에서 6남매의 셋째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차(茶) 장사를 도왔다. 차 장사를 하는 하위계층 부모에게서 태어난 모디에 대해 반대파들은 “차 장사를 한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를 이끌겠느냐”며 비아냥거렸다. 그는 1970년 힌두 국수주의 단체 ‘민족봉사단(RSS)’에 들어가 선전원으로 일하면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이듬해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벌어졌을 때에는 민족의용단에 정식 가입했다. 델리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구자라트대학에서는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뉴시스>

4. 인도네시아 최초 민간인 출신 ‘서민 대통령’ 조코위

조코위(53)는 2005~2012년 수라카르타 시장을 지냈으며, 2012년 자카르타 주지사로 당선되어 2014년까지 재직하였다. 자카르타 주지사를 지내며 높은 인기를 얻었으며, 2014년 7월 대통령 선거에 민주항쟁당 후보로 출마해 ‘위대한 인도네시아 운동당’의 프라보워 수비안토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조코위의 당선으로 인도네시아는 역사상 최초로 직선제에 의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조코위는 지난 10월 20일 인도네시아 제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에 따라 군 경력이 전혀 없는 최초의 민간인 대통령이자, 엘리트/기성세대 출신이 아닌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조코위 대통령은 그러나 자신의 경제정책과 개혁구상을 실현하려면 여소야대의 의회와 거대 야권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회는 프라보워 총재가 이끄는 야당 정치연합이 전체 의석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조코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당의 의석은 40%에도 미치지 않는다.

조코위 대통령은 정부예산의 20%선에 달하는 에너지 보조금 축소,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 활성화, 사회간접자본 확충, 부패척결, 국민화합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2012년 자카르타 행정특구 장관 당선 후 빈민에 대한 무료 의료보험 도입, 엄격한 반부패 제도로 시민의 지지를 얻었다. 같은 해 영국에서 세계 최우수 시장상을 받았다. 그의 ‘자카르타 경험’은 인도네시아 미래발전의 모델로 간주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5. 터키 첫 직선 대통령 당선으로 권력독점 에르도안

레제프 타이예프 에르도안(60)은 2003년 터키 총리가 된 데 이어 올해 터키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 에크멜레딘 이흐산오을루를 누르고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권력이 강화된 에르도안 대통령은 종교와 아랍어 교육을 확대하는 등 이슬람주의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터키 국가교육위원회가 오스만터키어를 고교 과목으로 채택하는 등 공교육의 이슬람화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스만어 수업 강행 의지를 밝혀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28일 취임 후 터키공화국을 건국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묘소 참배를 마치고 방명록에 “오늘은 처음으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로 새로운 터키를 건설하게 됐다”고 썼다.

<사진=노동신문/뉴시스>

6. 잇단 ‘숙청극’으로 권력 강화 북한 김정은

북한의 최고권력자 김정은(30)은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영희 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후 북한 제3대 원수, 조선로동당 제1서기 겸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되었다. 이후 이영호 군총참모장 등 이른바 ‘운구차 7인방’과 심지어 고모부 장성택 등을 숙청했다.

이같은 숙청을 통해 권력기반을 공고하게 다진 김정은의 향후 노선과 행보는 국제사회의 큰 관심사이다.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은 앞으로 경제건설과 핵무기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는 이른바 ‘병진 노선’의 연장선상에서 적극적으로 시장화 정책을 펴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핵무기 보유에 대한 자신감이 시장화를 추진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곧 ‘3년 유훈통치’를 끝내는 김정은은 내부적으로 친위·혈연 세력을 앞세우고 유일영도체계의 당위성을 내세워 조직지도부 권력을 조절해 나가는 고도의 통치행위를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AP/뉴시스>

7. 홍콩 민주화시위 주역 조슈아 웡

조슈아 웡(黃之鋒,19)은 홍콩의 학생 운동가이다. 홍콩공개대학(The Open University Of Hong Kong)의 학생이며, 홍콩 민주화 요구 시위의 주축인 중·고교생 단체 학민사조(學民思潮)의 위원장이다.

시위대는 입후보자 자격을 제한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2017년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 선거안 철회를 요구하며 석달째 도심 점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슈아 웡은 11월 30일 홍콩 당국이 시위대 진압에 나서 40여명을 체포하자 다음날인 12월 1일 밤부터 시위 지도부 동료들과 함께 한때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2012년10월 홍콩에서 “반 국교과”(反國?科,홍콩 학교에서 애국 교육 과목 설립에 대해 반대)시위 활동 등 참여했다. 그 이후 학민사조는 홍콩 행정 장관 량진영(梁振英)을 하태라는 운동을 지지했다. 2014년10월8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 아시아판은 2014년10월8일호에서 조슈아 웡을 표지모델로 올리고 ‘항쟁의 얼굴(The Face of Protest)’이란 제목을 붙였다.

Norway Nobel Peace Prize
<사진=AP/뉴시스>

8.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 파키스탄 교육인권운동가 말랄라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 18)는 파키스탄의 여성 인권운동가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2009년, 11살 나이에 이슬람원리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의 지배하에 있었던 스와트계곡에서 공포에 떨며 사는 사람들의 참상을 BBC방송의 우르두어 블로그를 통해 비판하고 어린 소녀들 교육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말랄라는 이후 탈레반이 소녀들의 교육을 계속 금지하자 이를 전세계를 향해 폭로하고 지지를 호소하며 평화활동에도 적극 나서 유럽과 미국 등에서 주목을 받았다.

탈레반이 파키스탄군의 대규모 군사작전에 의해 스와트계곡에서 축출된 후 파키스탄 정부는 그녀의 본명을 공개하고 공적을 표창했다. 말랄라는 이후 파키스탄 정부 주최 강연회에 참석하여 여성의 권리 등에 대해 적극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이로 인해 탈레반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됐다. 그는 2013년 여름 반기문 UN사무총장 초청으로 유엔에서 똑 부러진 음성으로 “모든 어린이는 학교에 가기를 원한다”고 연설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말랄라는 12월9일 노벨상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BBC방송 대담 프로그램 ‘하드토크’에서 “내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 파키스탄이 선진국이 되고 모든 아이가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을 실현할 최선의 방법이 정치이고 총리가 되는 것이라면 나는 틀림없이 그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7살 나이로 역대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 말랄라는 수상소감에서 “이제는 어린이들을 동정하는 데 그치지 말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며 “더 이상 어린이들이 교육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AP/뉴시스>

9. 세계 2위 인터넷기업 알리바바 창립자 마윈

마윈(馬云, 52)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설립자로 세계 2위의 인터넷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64년생인 마윈 회장은 항저우杭州)사범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영어강사로 일했다. 1995년 초 미국에 갔을 때 처음 인터넷을 알게 된 마윈은 일찌기 인터넷기업의 성장성을 내다봤다. 1999년 자본금 8500만원으로 지인들과 공동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창립 14년 만에 인터넷 불모지였던 중국에서 알리바바는 직원 2만3000명, 분기당 2900억원의 순수익을 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013년 5월19일 알리바바 CEO에서 물러나 현재는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알리바바는 지난 9월 뉴욕증시에 상장돼 22조7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알리바바가 조달한 이 금액은 미국 증시사상 최대 규모다. 알리바바는 현재 시가총액 241조원을 자랑하며 페이스북과 아마존 등 기존의 IT강자들을 제치고 구글에 이어 세계 2위의 인터넷 기업으로 우뚝 서있다.

<사진=뉴시스>

10. 삼성그룹 경영 떠맡아 ‘빅딜’ 성사 이재용

이재용(47) 삼성그룹 부회장은 지난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쓰러진 이후 삼성그룹을 사실상 떠맡고 있다. 현재 공식직함은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지난 10월29일 금융위원회는 삼성생명 및 삼성화재 대주주 변경을 승인했다. 이로써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지분을 취득하여 명실공히 삼성그룹 주요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지휘하고 있는 삼성그룹은 지난 11월 한화그룹과의 ‘빅딜’을 단행했다.

삼성테크윈 등 일부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한 ‘빅딜’은 이재용 부회장의 첫번째 ‘결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빅딜에 대해 삼성그룹 경영패러다임의 변화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모든 분야의 사업에 무차별적으로 진출하던 과거 경영방식을 탈피해 경쟁력 있는 분야에 집중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향후 경영능력과 행보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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