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빴던 2014년…아시아 10대뉴스

2014 갑오(甲午)년 아시아는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크고 작은 전쟁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고, 아직도 수십만명의 난민이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고 있다. 쓰촨성 지진, 말레이시아 여객기 사고, 세월호 참사 등 잇단 사건사고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됐다. <아시아엔>은 숨가쁘게 지나온 2014년 아시아의 가장 중요했던 뉴스 10개를 선정했다. -편집자

아베노믹스, 진퇴양난에 빠져

20년가량 디플레이션에 시달려온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하면서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라는것이다. 아베노믹스는 금융의 양적완화를 통해 20년동안 일본을 괴롭혀온 디플레망령을 걷어내고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흑자로 돌려보려는시도이다.

아베총리는 지난 2012년 12월 취임하자마자 이같은 정책을 본격추진했다.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시중에 자금을 적극적으로 공급하고 엔화가치 하락을 유도했다. 또 1천조원을 돌파해 GDP의 두배를넘는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렸다. 아베노믹스 덕분에 외관상 일본경제는 일단 개선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수출기업의 경쟁력이 되살아나고 일본주가도 상당히 회복됐다.

그러나 최근들어 그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비판론도 무성하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마이너스를 기록해 비판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분기 마이너스 7.3%(연율기준)에 이어 3분기에도 1.6%(연율기준) 감소했다. 3분기 최소 2.1% 성장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보기좋게 깨버렸다. 이 때문에 일본주가가 급락하고 대외신인도도 추락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11월 1~2일에 일본의 국가신용등급과 주요금융사의 신용등급을 연이어 강등했다.

요컨대 아베노믹스를 통해 일본기업의 대외경쟁력이 다소 향상됐지만, 일본경제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디플레망령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내수를 살려야하지만, 소비세를 인상해 내수활성화에 역행하고 있다. 일본 아베노믹스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내수를 살리자니 당장 재정적자 축소가 어렵고 재정적자를 축소하자니내수가 타격을받는다. 이런 한계가 아베정부에 대한 신뢰성 위기로 이어졌고, 아베 총리는이를 돌파하기 위해 중의원 해산과 조기총선거라는 강수를 들고나왔다.

대만 지방선거서 국민당 참패

11월 29일 대만 지방선거로 대만 정치지형이 큰 변화를 맞았다. 대만 집권여당인 국민당이 참패한 것. 국민당은 주요도시 6곳 가운데 5곳에서 야당에게 패했다. 신베이시에서 국민당 주리룬 후보가 유일하게 당선됐지만, 애초 30만표의 큰 표차로 이길 것이란 예상과 달리 2만 5천표 차이로 간신히 이겼다. 유일하게 승리한 선거구조차도 ‘반쪽짜리’ 승리였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선거구는 단연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시. 대만 차세대 대선 주자로 꼽히던 국민당 타이페이 시장후보 롄성원마저도 큰 표차로 무소속 커원싱에게 패배했다. 며칠 후 마잉주 대만 총통은 국민당 패배의 책임을 짊어지고 국민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 가장 주목을 받고있는 인물은 단연 무소속 커원저(柯文哲?55) 타이페이시장 당선자이다. 그는 외과의사 출신 정치신인으로 대만 차세대리더라고 불리던 롄성원(44? 連勝文)을 제치고 타이페이시장에 당선됐다. 이에 따라 커원저는 2016년 1월에 있을대만 대선의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홍콩 민주화 운동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

9월 28일, 홍콩 24개 대학 학생들이 홍콩 금융중심가 ‘센트럴(Central)’을 점거했다. 일명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이라 불리는 홍콩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것. 경찰의 물폭탄에도 시민들은 ‘우산’을 들고 나와 시위를 계속 이어나갔다. 시위의 목적은 홍콩의 ‘자치권 보장’. 중국당국이 홍콩 행정장관 후보자를 직접 선정한다는 결정에 홍콩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거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는 한달만에 점점 홍콩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센트럴 지역을 시작으로 코즈웨이베이(Causeway Bay), 몽콕(Mongkok)등 홍콩의 중심거리에 시민들이 모여 평화시위를 하기 시작한 것. 하지만 시위 52일만에 홍콩당국은 ‘바리케이트 강제 철거’를 시작했다. 갈수록 확산되는 민주화 시위의 불길을 잡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 지도자 조수아웡을 포함, 80명이 넘는 시위대를 체포했다.

이에 대해 조수아웡과 학생지도부는 홍콩정부와 대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하지만 초반에 ‘센트럴을 점거하라(Occupy Central)’을 주도했던 3명의 지도자가 경찰에 자수하면서 홍콩민주화 운동은 한 풀 꺾였다. 아직도 학생단(Scholarity)은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으나, 홍콩 민주화운동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 홍콩정부가 계속해서 시위지역을 탈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시위의 탄력도 현저히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실세 장성택 처형되고 최룡해 등장

김정은이 집권 2년차를 맞이하던고모부 장성택이 재판장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사진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그리고 2013년12월 12일 장성택이 처형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세계에 전해졌다. 북한의 김정은이 실세인 장성택을 처형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최룡해가 북한의 새로운 2인자로 부각됐다. 장성택 처형 이후 1년이 지난 오늘날 북한은 ‘빨치산 혈통’ 출신인 최룡해의 권력을 다지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빨치산 혈통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동영화를 만들고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

장성택 처형은 동북아 정세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정성택은 북한 실세이자 ‘중국통’으로, 북중관계에 가교역할을 했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중관계는 어색해진 반면, 북한과 러시아는 더 가까워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노란리본’ 추모물결

앞으로 한국은 ‘4월 16일’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바로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3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이 참담한 인재(인재)는 한국사회를 깊은 슬픔과 분노에 잠기게 했다. 시민들 사이에서 이같은 슬픔과 분노에 동참하기 위해 노란리본을 자발적으로 다는 움직임이 확산됐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중앙재난시스템의 부재와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일부 승무원의 ‘무책임’이었다. 300명여명의 탑승객을 뒤로 한 채, 그 누구보다 먼저 선박을 빠져나오는 선장의 모습이 유투브와 언론을 통해 전세계에 전해졌다. 선장의 무책임하고 뻔뻔한 모습에 전세계인들이 분노했다. 더욱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선박 앞에 해경과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사고 발생 당일 수색 및 구조요원이 충분히 투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정부와 해경은 ‘골든 타임’을 놓쳤고 3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사고 이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세월호 특별법’이 야당과 세월호 유가족을 중심으로 제안됐다. 특별법의 구체적 내용, 특히 수사권과 기소권을 둘러싸고 여당, 야당, 세월호 유가족 간의 의견 대립이 빚어지고 사회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긴 논란과 혼선 끝에 지난 11월 7일 국가안전처 신설,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법),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골자로 하는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Islamic State-Henning IS 등장으로 중동정세 요동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S)의 등장 이후 중동 문제해법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 IS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레반트 전지역을 장악하려 한다. IS의 목표는 수니파 칼리프 제도의 부활. 문제는 이러한 극단주의 이슬람 신념을 이루기 위한 방식이다. IS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르지 않는다. 지금까지 셀 수 없는 민간인들이 IS에 의해 학살당했다. 학살을 피해 자신의고향을 떠나는 난민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이미 시리아 내전으로 3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데 이어 IS로 인한 난민까지 더해 중동 일대가 난민으로 가득하다. 이미 IS로 인한 난민이 수십만명을 헤아리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내년에는 더욱 늘어나 1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유엔은 어림잡고 있다.

여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와 달리 IS는 SNS를 적극활용한다. IS는 직접 만든 SNS를 통해 자신들의 이념과 활동을 전 세계에 널리 홍보하고 있다. 이에 테러조직에 적극 가입을 원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비단 중동뿐만 아니라 영국인을 비롯해 서방세계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이 IS에 가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오고 있어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또한 서방국가에 군사적으로 밀릴 때마다 ‘인질참수’ 동영상을 찍어 SNS를 통해 퍼뜨린다. 지난달에는 시리아인인질 22명을 차례로 참수하는 영상을 공개한 적이 있다.

IS 등장으로 인해 이라크 정권의 기반이 흔들림은 물론 가뜩이나 불안한 중동정세가 앞으로 더욱 혼미해질 것으로 보인다.

가자지구 끝나지 않은 분쟁

지난 7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기구 간분쟁이 다시 시작됐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2천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숨지고, 1만1천명이 다쳤다. 또 1만7천채의 가옥이 파괴되고 집을 떠난 피란민만 10만명에 달한다고 유엔은 추정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50일 사이에 벌어졌다. 이스라엘 공습이 계속되고 희생자가 증폭되자 공습중단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가중되었고, 8월 26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휴전협정을 맺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11월 23일 이스라엘 군이 휴전협정을 어기고 가자지구의 한 주민을 사살했다는 소식이 알자지라와 AFP통신을 통해 전해지면서 가자지구에 또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자매 성폭행 사건으로 인도 시민분노 폭발

지난 5월 인도에서 사촌지간인 두 소녀가 망고나무에 매달린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용변을 보러갔다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 인도 경찰은 뒤늦게 범인 추적에 나서 용의자 4명을 체포했다. 이들 중에는 현직 경찰도 있었다.

피해가족과 주민은 하루 전에낸 실종 신고를 경찰이 묵살하지만 않았어도 참변을 막을 수있었다며 침묵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 끔찍한 사건은 인도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인도 전역에서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과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이러한 인도 시민의 요구에 정부당국과 경찰은 물대포를 쏘는 등 과잉진압으로 대응했다.

고위 정치인들의 망언까지 잇따라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사건이 발생한 우트라프라데시주의 집권당인 사마지와디당(SP)의 총재이자 야다브 주정부 총리의 아버지인 몰라얌싱은 “사내애들이니까 (성폭행같은) 실수도할수있다”고 발언했으며, 인도 중부 마드야프라데시주의 주정부 내무장관 바부랄가우르는 “성폭행이란 가끔은 옳고 가끔은 그른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인도 지식인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몰지각한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성폭행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실종 이어 피격사고

말레이시아 항공에게 2014년은 최악의 한 해였다. 지난 3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실종되고 피격됐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쿠울라룸프르를 출발해 베이징으로 가던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갑자기 실종된 사건이 일어났다. 승객과 승무원 239명을 태우고 사라진 ‘말레이시아 여객기 실종사건’은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신이나 비행기 잔해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에 지난 10월 ‘말레이 여객기 실종사건’과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지난 7월에는 295명을 태운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내전중인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미사일에 격추됐다. 추락한 여객기는 네덜란드를 출발해 쿠알라룸푸르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내전중이이었던 우크라이나 정부와 친러시아 반군은 미사일 격추의 책임을 서로 떠밀고 있다.

태국 19번째 군부쿠테타

지난 5월 태국 사회는 다시 혼란에 휩싸였다. 5월 7일 태국 헌법재판소가 잉락 친나왓 총리 해임을 결정하자 친정부(레드 셔츠)파와 반정부(옐로우 셔츠)파 사이의 갈등이 다시 격화된 것이다. 이어 같은 달 22일 태국군부가 쿠테타를 일으켰다. 1932년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이후 19번째 군부 쿠테타다. 쿠테타를 이끌었던 프라윳 찬-오차 육군참모총장은 총리로 취임됐고, 전체 각료의 3분의 1이상을 군 출신 인사로 채운 새 내각 각료 명단을 발표했다.

쿠테타를 반대하는 인사 260명이 체포되고 60여 명이 군법재판에 넘겨졌다. 지금은 군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의 발생하고 있지 않아 상황은 비교적 정리된 양상이다. 태국 군사정부는 내년 7월 개혁위원회와 제헌위원회를 구성 새 헌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내년 10월에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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