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겨울이었다. 나는 깊은 산속의 폐허가 된 절의 한 방에서 같은 처지의 고시생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석가래가 주저앉고 기울어진 지붕에서 기와가 떨어져 내리는 절이었다.
Author: 엄상익
[엄상익 칼럼] 헛것에 세뇌돼 있는 나에서 벗어나려면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혼소송 의뢰인인 여성이 변호사인 나를 배임죄로 고소했다. 남편으로부터 돈을 먹고 자기에게 불리하게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그녀 머리속에 가득 찬 것 같았다.
[엄상익 칼럼] 총무원장의 죽음과 시베리아 자작나무
1973년 냉기 서린 바람이 불던 2월 무렵이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두 소년이 가야산 해인사를 찾아왔다. 그들은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수백명 넘는 스님들 밥을
[엄상익의 시선] ‘뜻대로 하소서’ 고백할 때…
사막을 여행한 적이 있다. 몰려있는 낙타 중의 한 마리가 소리를 높여 울고 있었다. 사람을 태우기 싫은 것 같았다. 낙타는 몸을 흔들며 싫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낙타의
[엄상익 칼럼] 이웃을 괴롭히면서 지배하는 사람들
밤늦게 고급빌라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경찰서에 있는데 와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찰서로 갔다. 형사과 벽의 시계가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형사과 구석에 두
[엄상익 칼럼] 메모 충실히 하는 기자, 자료 받아쓰는 기자
메모를 잘하는 선수들을 본 적이 있다. 팔십 가까이 기자의 외길을 가는 조갑제 대표가 사람들을 만날 때 옆에 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조갑제 대표는 진지하게
[엄상익 칼럼] 초등부터 의대 열풍, ‘이면’ 한번 돌아보면…
산부인과 의사인 아내의 언니는 작은 의원을 하고 있었다. 수술을 하다가 환자의 출혈이 심해지면 온가족에게 비상이 걸렸다. 아내까지 동원되어 혈액원으로 피를 구하러 다녔다. 작은 의원에도 풍파가
[엄상익 칼럼] “곱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역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젊은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노파를 봤다. 불쌍한 표정을 짓지만 이상하게도 그 얼굴에서 젊은 날의 어떤 모습들이 느껴졌다.
[엄상익의 시선] “나는 열심히 변기를 닦고 있다”
오늘은 오줌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어제 저녁 넷플릭스에서 보던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 나오는 장면이 마음에 남았다. 술에 취한 여성이 몽롱한 상태로 앉아있는 소파의 끝자락에서 오줌이
[엄상익 감사인사] “저의 ‘글빵’ 독자님들께”
나의 ‘글빵 가게’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글빵을 팔고 댓글빵을 받으면서 사는 노년의 인생이 즐거운 것 같습니다. 마치 따뜻한 화로가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엄상익 칼럼] 내 안에 있는 영적 존재, ‘하나님’
변호사를 하면서 살인죄로 체포된 두 명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 두 명 중 한 명이 잔인하게 사람을 난자한 사건이었다. 사이코패스의 짓 같은 느낌이었다. 죽은 자는
[엄상익 칼럼] 열등감과 자존감
실버타운에서 검사 출신의 노인과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정권을 잡고 있던 TK출신 검사로 승승장구했었죠. 서울법대 재학 중 고시에
[엄상익 칼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고 싶은 그대에게
백년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덤을 정리했다. 남의 땅 산자락에 남아있는 봉분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폐가 되기 때문이다. 백년 전 죽은 조상 할머니 할아버지는 누구였을까. 가족도 친구도
[엄상익의 시선] “기도해 줘, 나 암이래”
어제는 어린시절부터 평생 우정을 나누어 오던 동네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했다. “야 상익아 기도해 줘. 나 암이래. 의사가 수술을 하래.” 그의 목소리에는 갑자기 앞에 높은
[엄상익의 시선] 세모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생각한다
화면 속에서 대담을 하던 90세 노인 이근후 박사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법정스님은 왜 ‘무소유’를 소유했을까요? 죽은 후에 자기 책을 더 이상 내지 말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