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병철 시인이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2021년 7월 제22대 대통령선거 출마선언할 무렵 쓴 것으로, 필자가 15일 <아시아엔>에 보내왔습니다. 현재 국립암센터에서 암 치료 중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국민의힘

이 글은 이병철 시인이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2021년 7월 제22대 대통령선거 출마선언할 무렵 쓴 것으로, 필자가 15일 <아시아엔>에 보내왔습니다. 현재 국립암센터에서 암 치료 중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국민의힘
구월 초하루 아직 아침이다. 이현(二絃)을 듣는다. 현이 적어 울음이 깊은가. 나는 그 깊이를 감당할 수 없다. 햇빛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오늘 눈부신 볕살 아래서 미루어둔
내일은 날이 환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내일은 눈이 좀 내렸으면 좋겠다고 당신이 말한다. 그러면 좋겠네. 눈 온 뒤 더 눈부신 날을 생각한다. 동쪽으로 가서 해돋이를 보았으면
내일은 날이 환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내일은 눈이 좀 내렸으면 좋겠다고 당신이 말한다. 그러면 좋겠네. 눈 온 뒤 더 눈부신 날을 생각한다. 동쪽으로 가서 해돋이를 보았으면
내가 나비였을 때 당신은 꽃이었지요 내가 꽃이었을 때 어느새 당신은 나비가 되었고요 내가 메마른 흙이었을 때 당신은 촉촉한 비되어 오셨습니다 내가 산이었을 때 당신은 그
스승 무위당 10주기(2004년) 때, 원주 소초면 수암리 묘소에서 ‘나의 스승은 백수였다’라는 시를 읽었다. 내 나름으로 스승의 10주기에 올리는 헌시(獻詩)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우상(牛?)이란 장기표 형의 법명이다. 형이 수배 중에 부산의 태종사에 잠시 머물러 있을 때, 그 절의 주지로 계시던 도성(道性)스님에 의해 삭발, 출가하게 되면서 스님으로부터 수계 때
시인 신경림 선생의 영결식 소식을 뒤늦게 들었지만 올라가서 참배할 사정이 아니었기에 마음 속으로 선생의 명복을 기원했다. 그런데도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선생의 얼굴이 그려지며 선생에 대한 생각이
나의 스승은 백수였다. 처음 스승을 만났을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스승은 그렇게 백수로 사셨다. 백수로 사셨기에 만날 사람 자유로이 만나셨고 백수였기에 우리 또한 자유롭게 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