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시가 있는 풍경] ‘백수의 꿈’ 이병철
일이 삶의 목적이 아님을 안다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존재란 그대로 여여한 것이므로
애써 무엇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
매 순간을 다만 감사하고 즐길 뿐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한 없다
때로는 바라는 것도 있고
이를 위해 기도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매달리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이리 살아있음을 먼저 감사하고
존재 그 자체를 즐긴다
삶을 기쁨에 두는 것
언제나 기쁨에 머무는 것
그것이 삶의 만트라다
하는 일 없이 바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여유를 잃지는 않는다
바쁘다는 것은 왕성한 호기심
설렘으로 이 또한 즐길 따름이다
소유하는 것이 소유당하는 것임을 알기에
가진 것이 없지만 성긴 그물을 스치는 바람처럼 여유롭다
덧붙여 꾸미지 않음으로써 가려졌던 아름다움이
환히 드러나게 한다
세상이 더 갖기 위해 정신없이 내닫을 때도
느리게 걸으면서 길섶에 핀 들꽃에 오래도록 눈 맞추거나
때로는 돌아서서 걷는 것도 멋진 여정임을 안다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세상의 평판이 아니라 가슴의 울림
언제나 겸손하지만 어디서나 당당하다
끼니를 구하기 위해 존재를 저당 잡히지는 않는다
세끼면 황송하고 두 끼면 넉넉하고
한 끼라도 족하다
달랑 숟가락 하나만 들고 남의 잔칫상에 가 앉더라도
감사하고 즐기며 마음 모아 축복한다
삶이란 한 바퀴의 순례
또는 무대 위를 뛰노는 한마당 연극 같은 것
멋진 경험하기거나 신명 나게 즐기기일 뿐
매 순간을 활짝 가슴 열어 환하게 미소 짓기
쓸모없음이 쓸모인,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백수인 세상
그것이 꿈꾸는 세상이다
마침내 백수가 세상을 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