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곳입니다. 내 안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곳입니다. ‘내 탓이요’만 하다가 죽게 만드는 종교사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당 뜰만 밟지 말고 흑암의
Author: 김서권
성질·감정대로 사는 ‘자존심’, 하나님 언약대로 사는 ‘자존감’
성질대로, 감정대로 사는 것은 자존심이고 하나님의 언약대로 사는 것이 자존감입니다.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살면 비교의식·열등의식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내 삶의 주인을 바꾸면,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듯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내게 주셨으니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을 증언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을 알고 믿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쉼’을 주십시오”
쉼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에 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숨을 쉬면 쉼이 옵니다.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선적 종교사상에서 벗어나 진실과 겸손으로
우리 쉼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웁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에 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숨을 쉬면 쉼이 옵니다.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삶이 곤고할 때 찾는 사도 바울의 서신
삶이 곤고한 이유는 내 지체 속에 거하는 죄 때문이라고 사도바울은 설명하였습니다. 내 몸에서 행하는 존재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약점 때문에
“교회는 교양강좌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교양강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는 곳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6~18절) 내 힘이나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곧 영적 문제이고, 그
“인생 여정 가운데 찾아오는 한번의 기회”
사도 바울의 복음 여정이 나의 것이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복음의 여정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내 죽음의 두려움은 다 끝났습니다.
이웃을 실족시키지 않으려면
이방인의 실족을 막기 위해 보여주신 예수님의 포용을 가슴에 담고 나로 인해 내 이웃, 이방인이 실족치 않도록 올바른 믿음을 가집시다. 예수님은 어떤 포용을 보여주셨을까요. 복음의 순례자로
아첨하는 말로 양심을 팔 것인가, 담대하게 증거할 것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복음의 여정입니다. 복음의 언약 안에서 복음의 여정 안에 있는 나는 그리스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으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언젠가는
바울은 어떻게 바리새인과 서기관 음해에도 살아남았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복음의 여정입니다. 복음의 언약 안에서 복음의 여정 안에 있는 나는 그리스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으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언젠가는
‘시대’와 ‘세대’를 보는 ‘분별력’
시대와 세대를 보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시대란 하나님이 이끌어가는 전체적인 시간표이고, 세대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진행되는 개인적인 시간표입니다. 종교사상에 빠져 육신적 표적만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전도하면 알게 되는 것들
전도는 은사가 아닙니다. 전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돈만 쌓아놓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자녀들에게 돈만 남겨주면 동물처럼 먹고 입고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 시스템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선택…광야에 서있는 삶, 연회장에 앉아있는 삶
예수님과 함께 빈들에 있겠습니까. 혹은 세례요한의 목을 쟁반에 올려놓고 살인의 광기 속에서 먹고 마시는 헤롯왕의 연회장에 앉아있겠습니까. 차라리 빈들에 서서 “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질문해보십시오. 예수님이 누구신지
지금 나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지금 나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현주소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이면 염려도 없고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바울은 핍박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