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첨하는 말로 양심을 팔 것인가, 담대하게 증거할 것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복음의 여정입니다. 복음의 언약 안에서 복음의 여정 안에 있는 나는 그리스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으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언젠가는 선을 이루는 날이 오게 됩니다.(로마서 8장 28절)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라. 내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나에게 소원을 두시고 행하게 하십니다.(빌립보서 1장 6절, 2장 13절)
창세기 3장 15절, 여인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며 그의 눈으로 나라들을 살피시니 거역하는 자들은 교만하지 말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시편 103편 19절, 시편 66편 7절)
복음의 여정을 가는 동안 내가 평안히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는 것은 나를 안전하게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4편 8절, 이사야 7장 14절)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전한 바울은 바리새인 서기관 종교인의 음해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로마로 무사히 가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 사도행전 23장 11절)
하나님 앞에서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썼던 사도 바울의 심령 안에는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들어 있었기에 ‘이단이라 하는 도’를 전한다 하여 벨릭스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고 매 맞고 배고픔과 침 뱉음을 당할지라도 설득력 있는 세상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면 답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할 때마다 운명에 묶였던 저주가 떠나가고 완악했던 벨릭스 총독의 마음을 녹일 만큼 파괴되었던 인간관계가 회복되며 회당장과 온 집과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을 만큼 바울의 전도 현장은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절박한 재판정 앞에서도 담대하게 바울이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유대민족의 원수인 총독 앞에서 아첨하는 말로 양심을 팔아버린 더둘로처럼 악인의 부활에 참여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나님께 향한 소망 즉, 재림의 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믿음으로만 의인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4장 14~16절, 고린도전서 2장 1~2절, 사도행전 18장 5, 9~10절)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공개적으로 밝히 증거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셨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