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전 미 국무장관이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과 인터뷰한 가운데 한 말이다. 참으로 폐부를 찌른다. 미국의 국무장관은 단순히 외무부 장관이 아니다. 닉슨이 사임할 때의 법적 행정적
Author: 김국헌
[김국헌의 직필] 신현돈 前1군사령관 추태에서 배울 것은?
사관생도는 예복을 입고 뛰지 않는다 군복은 신성한 것이다. 사관생도는 예복을 입고서는 아무리 바빠도, 설사 생도대장(준장)이 불러도 뛰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사관학교의 모태가 된 미국사관학교에서 이루어진
[김국헌의 직필] 정조의 얼과 백제정신 살린 ‘광역시’를
수원, 오산, 용인을 합하여 수원광역시를 만드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다. 수원 화성은 정조가 한양에 버금가는 도시로 조성하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화성을 축조하기 위해 당시의 기술과
[김국헌의 직필] 섬진강에 광역 ‘슬로우시티’ 만들자
의대를 목포에 둘 것인가, 순천에 둘 것인가가 쟁점이 되고 있다. 순천에 의대를 유치하겠다는 것은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 공약이고 목포에 의대를 유치하겠다는 것은 민주당 박지원의 오랜
[김국헌의 직필] 시진핑=모택동+주은래+등소평?
모택동은 불이고, 주은래는 물이고, 등소평은 길이다. 모택동은 왕조를 일으켰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민심을 잡아 왕조를 창건했다는 데서 한의 유방(劉邦)에 흡사하다. 모택동은 공산혁명을 ‘불씨 하나가 광야를
[김국헌의 직필] 무능 대통령보단 ‘내각제’가 낫다
내각책임제를 생각해볼 필요조건은 성숙되었지만 내각제로 바꿀 수 있을지, 내각제의 단점은 무엇이며 이를 보완할 조건은 무엇인가 등은 내각제의 충분조건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감정이다. 김대중은 허약한 노태우
[김국헌의 직필] 아베 총리에게 고함
명성황후 대신 쇼다 미치코 황후가 난자당했다면 당신은? 1894년 7월 23일 새벽 4시 일본군은 경복궁에 침입하여 국왕과 왕비를 감금하고 조선군을 무장해제하였다. 1910년의 한일병탄, 1905년 을사늑약 이전에
[김국헌의 직필] 장군들이 청와대 기웃거리지 않게 해야
우리 국군은 하나가 아니다. 해공군은 국방부를 육방부라고 하여 ‘당신들의 천국’으로 본다. 육군도 하나가 아니다. 출신별로 큰 차이가 난다는 것도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장교의 경우도
[김국헌의 직필] 군 사법체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독일에서는 군사법원을 별도로 두지 않고 군사재판도 민간법원에서 한다. 군인은 ‘군복을 입은 시민’이라는 이념을 투철히 반영한 것이다. 우리도 군인이라는 ‘신분의 특수성’이 과연 절대적인가를 성찰해볼 때가 되었다.
[김국헌의 직필] 軍의 자정능력 너무 걱정하지 말라
상식과 논리 최근 일련의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 개혁 움직임이 시동되고 있다. 이런 때 이 문제를 연금개혁과 연계시킨다는 것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연금개혁에
[김국헌의 직필] 일본군 만행 흉내내는 군대폭력
19세기까지도 영국 해군에는 사관학교 건물이 없었다. 교육·훈련 몫으로 지정된 함선 자체가 사관학교였다. 수병들 먹을 물이 없더라도 사관이 세수할 물은 있어야 했다. 사관의 권위는 이만큼 절대적이었다.
[김국헌의 직필] 북-일, 북-미수교 머잖은데 박근혜 정부는 뭐하나?
세계는 돌고 있다! 1972년 미국은 중국과 수교했다 앞서 1969년 ‘진보도 중소분쟁’에서 중국은 소련에 일패도지(一敗塗地)했다. 모택동은 중국이 도저히 소련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과 수교한
[김국헌의 직필] ‘무대 김무성’ 벌써 줄세우려 하는가?
무대 김무성이 한민구 국방부장관에게 했는지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에게 했는지 모를 행태가 화제다. 보도에 의하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 오라면 오란 말이야! 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가 무엇을
[김국헌의 직필] 통수권을 능멸한 짓이다
장관이 이번 사건을 신문보도를 보고 알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하지만 오랫 동안 국방부에 몸담았던 선배로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윤 일병 사고는 그 자체로
[김국헌의 직필] 이순신 영화 ‘명량’, 일본인 중국인도 봤으면
일본군에서 대좌로 복무하였으나 성남학원을 건립하여 교육자로 헌신한 김석원 장군은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매년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를 참배하였다. 그는 일본군에 복무할 당시 해군성 정문에 놓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