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장영옥과 장남(윤우), 차남(윤세)을 데리고 함양에 도착한 인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도인’이라고 알려지는 바람에 그곳 유지들과 어울려 지내게 되었다. 딴에는 그들 모두
Author: 최은아
[인산 김일훈 58] 천연기념물 154호 ‘상림’ 품은 함양, 성자를 기다리다
경상남도 함양읍에는 ‘상림(上林)’이라는 인공 숲이 있다. 예전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고 불렀으나 그 숲의 중간 부분이 홍수로 무너져 상림과 하림(下林)으로 나뉜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하림은 훼손되어 흔적만
[인산 김일훈 57] 공주 마곡사 산판의 지게꾼···불의한 경찰을 혼내다
참나무골에는 기와를 구워내는 기와 가마가 있었고, 인산과 그의 아내는 갓 태어난 장남 윤우와 함께 그곳 기와막 곁방에서 살았다. 날이 밝으면 인근 산판에 나가 하루 종일
[인산 김일훈 56] 국민의료법 제정과 한의사자격증에 숨은 이야기들
1951년 9월 25일, 정부는 국민의료법을 제정ㆍ공포하였다. 비록 전시(戰時)이긴 하였지만 정부 수립 이후 각 방면에서의 국가 체제 정비를 해나간다는 정책의 일환이었다. 그 법에 따라 그 이듬해
[인산 김일훈 55] 부친 장례를 마치고···’짧은 생애 통해 내가 이룬 결과, 다 볼 순 없겠지만’
인산 역시 아버지와 아내를 계룡산 밑 백암동에 두고 부산에 내려와 있던 처지였으므로 9ㆍ28 서울 수복 직후부터는 틈을 내어 가족에게 다녀오고는 했다. 그 사이에 아버지 경삼
[인산 김일훈 54] 부산 동광동 세춘한의원 시절…”거기 가면 못 고칠 병이 없다네”
마침내 김일성의 명령을 받은 공산군들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하여 한반도 전역이 전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한국전쟁의 시종 진행 과정이나 그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 사실은 익히
[인산 김일훈 53] 민족 최대 비극의 날을 앞두고
민족 비극의 시작을 잉태한 경인년의 첫 태양이 여느 해와 다름없이 밝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충남 논산군 은진면으로 내려와 살던 최영호 선생이 백암동에 걸음을
[인산 김일훈 52] 종교집단으로부터 교주 제안을 받지만…
‘인술(仁術)이 무엇이던가? 의자(醫者)로서 재물을 밝힌다면 어찌 인술을 베푼다고 자처하는 마음의 풍요를 누릴 수 있으리오?’ 하루는 인산이 볼일을 보러 외출했다가 신도안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길을
[인산 김일훈 51] “환자 건강 되찾아 주는 게 나의 본분”
점차 밀려오는 환자들의 수효가 늘어나 진료 이외의 일에는 손을 줄 수 없는 실정이 되어갔다. 하지만 인산을 찾아오는 환자나 그 가족들이 모두 공손한 태도로 인산을 대한
[인산 김일훈 50] “계룡산 백암동 서문달에 명의가 산다”
보건당국 요로(要路)의 실무자들은 대개 서양의학 위주의 교육을 받고 그것만이 참다운 의학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설령 그들에게 인산이 신약 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해도 들으려 하지
[인산 김일훈 49] 극심한 난치병들이 발호할 것을 염두에 두고…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지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인산의 신상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그 사이에 삼팔선을 넘어가 아버지 경삼 옹을 모셔왔고, 약혼녀 장영옥을 데려와 가정을 꾸린
[인산 김일훈 48] 해방정국 좌우익 싸움 통에 계룡산으로
해방 직후 서울로 내려와 송운 방주혁 선생 댁에 머물던 인산은 좌우익의 진흙탕 싸움을 목도하고는 ‘이 나라가 아직 치러야 할 고난의 세월이 남은 탓이다’라고 생각하여 충남
[인산 김일훈 47] 죽음 앞둔 뇌염환자 고치니 되레 조롱이 쏟아져
인산 죽염으로 잘 알려진 인산 김일훈(1909~1992) 선생은 각종 암치료 신약을 발명하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해방 후에는 독창적인 한방 암치료를 설파하며 난치병 환자를 평생 치료했다. 선생은 만성
[인산 김일훈 46] 이승만 대통령 면담 마치고 경무대를 나오니…
인산 죽염으로 잘 알려진 인산 김일훈(1909~1992) 선생은 각종 암치료 신약을 발명하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해방 후에는 독창적인 한방 암치료를 설파하며 난치병 환자를 평생 치료했다. 선생은 만성
[인산 김일훈 45] 이승만 대통령과 마주한 외로운 선구자
인산 죽염으로 잘 알려진 인산 김일훈(1909~1992) 선생은 각종 암치료 신약을 발명하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해방 후에는 독창적인 한방 암치료를 설파하며 난치병 환자를 평생 치료했다. 선생은 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