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 51] “환자 건강 되찾아 주는 게 나의 본분”

“부자라는 약재가 무엇인가? 바로 예전에 왕족이나 사대부가 죽을죄를 지었을 때 임금이 내리던 사약(賜藥), 곧 독약이 바로 부자이다. 그래서 보통 의사들은 좀처럼 부자를 처방하는 일이 없다. 그런 맹독성의 약재이지만 한편으로는 원기를 돋우는 데 뛰어난 효능을 지닌 명약이기도 하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부자 줄기와 꽃. 

점차 밀려오는 환자들의 수효가 늘어나 진료 이외의 일에는 손을 줄 수 없는 실정이 되어갔다. 하지만 인산을 찾아오는 환자나 그 가족들이 모두 공손한 태도로 인산을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종종 그 다급한 마음에서 무리한 요구나 의심하는 마음을 앞세워 무례한 언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꼭 고치겠다는 보장을 해주십시오. 만일 내 가족의 병이 낫지 않으면 어떻게 책임질 건가요?”

“약을 먹은 지 사흘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차도가 없으니, 이거 뭐가 잘못되는 것 아닙니까?”

인산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빙긋이 웃으며 치료에 전념할 뿐 노여워하지도 않았다. 딴에는 환자나 그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기껏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무슨 의사가 진맥도 하지 않고 환자를 보는 겁니까? 정말로 선생을 믿어도 되는 겁니까?”하는 무례함을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실제로 인산은 환자의 맥을 짚어 진찰하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에도 인산은 맞대꾸를 피했다. 그저 한 사람의 환자라도 자기 손으로 건강을 되찾아 주는 것만이 자신의 유일한 사명이라고 믿는 철석같이 굳은 마음을 지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산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로서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진료 행위에 대한 물질적 대가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 가서도 고칠 수 없던 난치병을 인산에게 와서 고친 이들은 그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약간씩의 성금을 두고 갔고, 그런 것들이 쌓여 어느 정도의 자본이 마련되자 인산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신약 실험에 착수했다. 그는 우선 토종 돼지 몇 마리를 사다가 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돼지들에게 먹이는 사료가 여느 사람들이 돼지를 사육할 때와 달랐다.

인산은 돼지들에게 곱게 빻은 경포부자 가루와 보리밥을 버무린 사료를 먹였다. 경포부자는 부자(附子)를 법제(法製)하여 만드는데, 그 만드는 과정에 또한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 우선 바꽃의 뿌리인 생부자를 얇게 저며서 일주일간 어린아이의 오줌에 담가두되 이틀에 한 번씩 오줌을 새것으로 갈아준다. 그러고 나서 길어 온 샘물에 3일간 담가두는 과정을 거쳐 그늘에서 반쯤 말린 후 감초와 서목태(鼠目太, 쥐눈이콩)와 함께 서너 시간 동안 푹 삶는다. 이것을 말렸다가 망사 자루에 넣어 산속의 맑은 계곡물에 이틀 정도 담가두었다가 꺼내어 다시 완전히 말린 것이 경포부자이다.

그런데 부자라는 약재가 무엇인가? 바로 예전에 왕족이나 사대부가 죽을죄를 지었을 때 임금이 내리던 사약(賜藥), 곧 독약이 바로 부자이다. 그래서 보통 의사들은 좀처럼 부자를 처방하는 일이 없다. 그런 맹독성의 약재이지만 한편으로는 원기를 돋우는 데 뛰어난 효능을 지닌 명약이기도 하다.

인산은 그 점에 착안했다. 부자의 약성이 뛰어나되 독성이 문제라면, 그 독성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아주 우수한 약이 되리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법제를 하는 것만으로 부자의 독성을 제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체인 돼지를 통하여 부자의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을 생각했던 것이다.

부자의 화생 원리를 들여다본 결과, 천상에서 생기를 주관하는 세성(歲星)의 정기와 독기(毒氣)를 주관하는 형혹성(熒惑星)의 정기를 아울러 화생했음을 본 인산은 그것의 약성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독성을 제거하려면 천상 28수의 별 가운데 북방의 일곱 별, 그중에서도 허성(虛星)의 정기에 응하여 화생한 돼지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했다. 다시 말해서 돼지에게 일정량의 부자를 지속적으로 먹이면 부자의 독은 돼지의 체내에서 소멸되고, 그 약성은 돼지의 체내(간ㆍ혈액ㆍ근육)에 축적된 상태로 남게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어 실제 실험에 착수했던 것이다.

먹성 좋은 돼지들은 인산이 주는 대로 부자 가루가 섞인 사료를 잘도 먹었다. 그러나 그 독성의 작용 때문인지 돼지들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고, 살도 찌지 않았다. 그 현상을 보면서 인산은 더욱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그렇게 돼지를 먹이기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중풍에 걸린 50대의 남자 환자에게 그 약을 처음으로 투약하게 되었다. 투약이라고 해야 그동안 부자를 먹인 돼지를 잡아 그 피와 고기를 먹게 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리고 돼지의 간은 바싹 말려 가루를 낸 후 토종꿀에 개어 환(丸)을 지어 먹게 했다.

그 결과 반신불수로 걸음조차 걸을 수 없던 환자가 1주일 만에 걸을 수 있게 되고, 점차 마비 증세가 풀려 몸놀림이 원활해지더니 한 달이 지났을 때에는 언제 중풍을 앓았더냐는 식으로 완전한 건강을 되찾았다. 대성공이었다. 이에 인산은 그 약이 신경 계통의 질환에 특히 좋은 효과를 지녔다는 결론을 가지고 긴 세월 동안 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해 온 어느 환자에게 돼지 간으로 빚은 알약을 주어 복용케 했다.

“이 약에 무슨 아편 같은 걸 섞은 것 아니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약을 먹은 지 단 하루 만에 수십 년 묵은 신경통이 씻은 듯이 나을 수 있단 말이에요? 정말 신기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60대의 여성 신경통 환자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이 사라진 놀라움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환자로서는 성분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그만 알약이 그렇게 빠르고도 놀라운 효과를 보이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병을 고쳤으면 되었지 무에 그리 불필요한 걱정을 하시오? 나는 아편 같은 것을 환자에게 주는 사람이 아니오.”

인산은 그저 그렇게 말할 뿐, 속으로는 자신의 판단이 옳은 결과로 환자의 병을 낫게 했다는 보람으로 그저 기쁘기만 했다.

부자를 먹인 돼지의 간으로 빚은 알약은 신경 계통의 질환뿐 아니라 소화기 계통의 난치성 질환들에도 신비스러울 정도의 효능을 발휘하였다. 인산은 자신의 지혜로 합성해 낸 신약이 실제로 사용됨에 있어서 만에 하나 뜻밖의 안 좋은 결과를 나타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신약을 합성해 내는 모든 과정에 털끝만치의 오차도 생기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 사용에 있어서도 최대한의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개개의 인간 생명은 온 우주에 버금가는 소중함을 지닌 것이라는 게 그의 일관된 믿음이었다.

그는 돼지에게 부자를 먹여 새로운 신약(神藥)을 만들어낸 그 경험을 통하여 자신이 ‘보고 아는 것’들은 실제로 인간의 질병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한반도 상공에 가득 차 있는 삼 분자를 비롯하여 보다 광범위한 약재들을 토종개나 집오리ㆍ닭ㆍ염소 등을 통해 합성하고, 그 밖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간 색소 중의 유효한 약 성분들을 결집시켜 질병 극복의 영약(靈藥)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열망을 가슴속에 품었다.

그러나 인산의 수중에는 그런 일에 소요될 재물이 모일 수가 없었다.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이미 병을 고쳐보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써보는 과정에서 가산이 바닥났기 십상이었고, 그런 만큼 인산에게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하면서 매달리기는 했을지언정 치료의 사례를 흡족히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게다가 인산은 인산대로 우선 당장 눈앞의 환자를 낫게 하기 위해 자본을 들여 만든 약이라도 아낌없이 내어주고는 했기 때문에 생활은 늘 곤궁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인산은 한 사람의 환자라도 자신으로 인하여 새로운 건강을 되찾아 인간답게 살아가게 해주는 것을 자신의 본분이라 생각하고 가난을 짐스럽게 여기거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굳이 애쓰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의자(醫者)의 길이라고 믿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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