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일본 길들이기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한일관계의 근저를 흔드는 것이다. 태평양전쟁의 전범이 봉안된 야스쿠니 신사를 수상이 참배한다는 것은 연합국이 일본에 찍은 침략국의 낙인을 거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각료는 입국을 거부하겠다고 나왔다. 일본의 침략과 만행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한국과 중국이 이에 대해 항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바로잡는 것은 국민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다.
원칙과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도 중국만큼 단호하고 강경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국력이 ‘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희토류의 수출을 금지하여 일본의 백기 항복을 받아낸 것처럼 중국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우리보다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카드도 적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였을 때 일본이 오기를 발한 것이 한 보기이다.
지금까지 독도문제를 두고 우리 외교당국은 ‘조용한 외교’를 유지해왔다. 이 방법은 틀렸다. 원칙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지속적으로 발언하는 것이 맞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영토문제는 없다. 한국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참가하지 못하여 독도에 일본이 용훼할 여지를 차단하지 못한 것이 빌미가 되어 일본 우익이 이를 악용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이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갈 아무런 이유와 근거가 없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과 변영태 외무장관이 정립한 우리 입장은 더할 수 없이 명확하고 당당하다. 문제는 이를 두고 60년대 이후 한일 외교 당국이 취해온 자세가 문제다. ‘조용하게 해결한다?’ ‘일본의 도전에 일일이 상대하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우리가 일본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동안에 일본은 차근차근 국민을 세뇌시켰다. 이제 일본에는 정부의 주장에 ‘그게 아닌데…’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세대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
모든 싸움에서 그렇듯이 일본에 상대하기 위해서는 知彼知己가 먼저다. 일본에 대한 세계의 이해와 호의는 우리와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일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적어도 50년은 앞선 나라다. 1차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이유강화회담에 일본은 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더불어 세계 5대강국의 하나로 참가한 나라이다. 2차대전이 발발할 당시 일본은 독일, 소련과 더불어 세계 3대 육군국이었으며, 미국, 영국과 더불어 3대 해군국이었다, 육군과 해군 공히 3대국에 든 나라는 일본밖에 없었다. 일본이 항복하여 연합군의 치하에 들었을 때 하라 세쓰꼬(原 節子)라는 국민배우가 맥아더의 시중을 들었다. 일본은 이런 식으로라도 연합군 통치자들의 호의를 사려고 필사적이었다.
태프트가쓰라 협정으로 일본의 한국 병탄을 묵인한 나라가 미국이다. 맨스필드 상원의원, 먼데일 전 부통령을 주일대사로 보냈고, 최근엔 케네디 대통령의 영애 캐롤라인을 대사로 보내듯이 미국은 일본에 대해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싸울 때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을 세계에 등장시킨 나라가 영국이다.
대처처럼 날카로운 사람도 일본에 대한 입장은 호의적이었다. 일본인들이 검약하여 저축하고 이를 국내, 해외에 투자하며 기술개발에 의해 세계일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였다. 대처의 경제철학에 비추어 일본은 모범생으로서 시장을 좀 더 개방하는 등 성의는 보여야겠으나 국제사회는 일본에 대해 보다 높은 평가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대처가 일본 경제를 높게 평가한 가운데 특히 인상을 받은 것은 대기업의 관리자들이 기술자(engineer) 출신이 많다는 것으로 경영(management) 위주의 영국기업과 비교하여 강점이 있다고 보았다. 대처가 쯔꾸바 과학도시를 방문하였을 때 로봇과 악수하자 그 손이 마디마디 구부러지고 사람 손과 같은 따스한 감촉을 주는 것에 놀랐다고 술회하고 있다.
영미권의 일본에 대한 우호감은 뿌리가 깊다. 우리는 이를 분명히 알고 일본을 대해야 한다.
적을 최소화시키고 우군을 최대화시키는 것은 전략의 기본이다. ‘일본 길들이기’라고 하여 다대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소수 우익을 상대로 하며 그들을 일본 국민으로부터 괴리시켜야 한다. 절대로 생각이 바뀌지 않는 아베 류를 상대로 할 것이 아니다. 국내 정치에서도 승기(勝機)는 중도층을 잡는데 있다. 어차피 보수는 보수, 진보는 진보, 색깔이 정해져 있다. 각자 진영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아무리 무리한 일을 저지르고 명분과 논리에 맞지 않는 데도 좀처럼 당을 바꾸지 않는다. 사안에 따라 미세한 차이와 이동만이 있을 따름이다. 무응답층, 중도층을 잡는 것이 승리의 원천이다. 이처럼 우리도 평균적, 중도적 성향의 일본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라고 한 일본인이 있다. ‘그것참 못된 놈이군’하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자의 신상을 알아내어 SNS로 전 세계에 망신을 주고 한국에 관광이라도 오려고 하면 인천공항에서 입국을 거부해야 된다. 중국에도 우리와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면 반드시 긍정적인 답을 얻을 것이다. 한국 중국을 돌아다니지 못하면 이 자는 꽤나 답답할 것이다. 잘못된 행동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계가 유대인의 비난 살 짓 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전 세계 유대인이 그러한 일에는 반드시 응징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일 정상회담을 서둘지 않고 국제회의에서도 아베를 차갑게 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자세는 맞다. 나아가 박대통령은 가급적 이른 시기에 독도를 방문하여 수비대를 격려하고 이것을 유튜브로 전 세계에 널리 유포시켜야 한다.
6·25전쟁에서 미국은 제일 가는 장군들을 보내 한국을 위해서 싸웠고 이들은 한국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제 한미관계는 혈맹의 인연에서 나아가 현재와 미래에도 한국이 일본 못지않게 ‘PIVOT TO ASIA’를 추구하는 미국이 믿을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맹국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근무를 한 군인들만이 아니라 보다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을 이해하고 애정을 갖도록 국민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 길들이기’의 핵심은 밖에서 포위하며 안에서도 우리 편을 늘려 아베 등을 枯死시키는 것이다. 이들의 생각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난징대학살을 두고 아무리 많은 증거를 들이밀어도 이를 믿을 수 없다는 이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아베는 대동아전쟁에서 군수상을 지낸 기시 노부스께 전 총리의 손자이다. 기시는 아베의 자존심이고 정치적 기둥이다. 지금 아베는 근세 일본을 만든 죠슈 군벌의 적자를 자처하고 있다. 주위에는 이런 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일본 국민들 대다수는 전전의 역사에 대하여 잘 모른다. 알고 나서도 한번 굳어진 머리는 바꾸어지지 않는다. 그러는 중에도 양식 있는 정치인도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수상이 아베에 대해 비판하며 隣國과 우애롭게 지내는 나라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한일관계의 장래에 대해 일본 사람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우리는 이들과 힘을 합쳐 한국과 일본의 선린관계를 도모해야 한다. 지진과 해일에 의해 일본열도가 갈아 앉지 않는 한, 한국은 일본과 이웃하여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다 같이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어서 한·일 안보협력관계는 막중하다. 유사시 한국을 지원하는 유엔군 후방사령부가 일본에 있다. 이는 북한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체제를 공유하고 있는 아시아의 선진국이다. 이 역시 공산당 독재국가인 중국과 비교할 수 없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의 자세를 바로잡아 마음으로부터의 존중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한일관계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성실하고 정직하다. 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일본을 길들이는 왕도이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가 이에 대한 탁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결론으로 대한다.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서 보듯이 일본이 과거를 부정하는 한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제대로 설정할 수 없으며, 미래를 설계할 수도 없다. 우리와 국제사회가 아무리 노력해도 일본은 과거에 대해 일부 인정, 미온적 사과, 그리고 이에 대한 부정 내지 유보 입장을 취했다가 다시 일부 인정, 사과를 하는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리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일관계는 전략적 협력이 가능할 때를 기다리며 그때까지는 한일교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한가지, 우리의 대일전략과 자세에 항상 주의할 것이 있다. 김정은의 처 리설주의 외할아버지가 일본에 협력한 기록을 들추어낸 일본이다. 일본에는 이런 종류의 기록이 상당히 남아 있다. 제국을 운영해본 일본은 이런 것을 구사하는 것에 능하다. 우리 정치인, 외교관, 일본 전문가들도 혹시 이런 협박을 당해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 자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