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대처의 ‘철의 여인’은 거저 얻은 명성이 아니다

대처의 과감한 경제정책에 대한 가장 크고 완강한 저항은 1985년 탄광노조 파업이었다. 1년여 끈 파업에서 극단 노조 지도자들의 의도가 관철되지 못하고 대처의 원칙과 주장이 승리하게 된 것은 영국의 노동운동 나아가 노조와 정부와의 관계에서 획기적인 분수령을 긋는 사건이었다.

영국의 탄광노조는 단순히 대규모 산업노조에 머물지 않고 사실상 노동운동을 이끌어 왔으며 나아가 노동당과 정부의 고삐를 쥐고 흔드는 데까지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영국의 석탄산업은 산업혁명 이래 영국의 산업경제를 이끌어 온 견인차 역할을 하여왔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대단히 컸다. 따라서 석탄보다는 석유, 나아가 원자력으로 동력원이 바뀌어 가는데 따라 석탄산업이 사양산업이 되어 갔음에도 단순히 채산성만 고려하여 경영관리를 해나가기가 어려운 특수한 문제가 있었다. 채탄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노후탄광을 폐쇄하려 해도 여기에 딸린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어 적자를 내면서도 이들 노후탄광을 계속 유지해야 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영국의 석탄산업은 국유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석탄산업의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불가불 정부의 각종 지원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사회정책 차원에서는 모르나 경제적으로는 이를 지속하기 어려웠다. 영국 정부의 큰 고충 중의 하나였다.

1983년 대처 정부가 대승하자 이제 선거로는 당분간 정권을 잡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노동당 좌파(the militants)들은 노동조합을 동원하여 사회, 경제 질서의 혼란을 일으켜 대처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고자 하였다. 이들 중 선봉에 선 사람이 탄광노조위원장인 Arthur Scargill이다. 그는 스스로 Marxist임을 공언하였다. 대처도 스카길이 노동운동가가 아니라, 영국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파괴적 선동가,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였다.

1983년 10월 석탄공사가 채산성이 맞지 않는 일부 탄좌의 폐쇄를 결정하자 1984년 3월 스카길은 이를 구실로 전국적인 탄광파업을 주도하고 나섰다. 대처는 1981년 탄광노조의 총파업 위협 때 석탄이 긴급히 소요되는 산업시설-특히 발전소-에 석탄보유 예비량이 충분히 비축되지 않아서 부득이 노조측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유념하여 그동안 기간산업체의 석탄보유 예비량을 꾸준히 증가시켜 왔다. 그리고 이들 잉여석탄이 탄광에 쌓여 있는데 만족하지 않고 실제로 필요로 하는 현장에 갖다 놓도록 하는 세심한 준비까지 하였다. 이러한 준비를 해놓고 대처는 스카길이 총파업을 위협하여도 파업을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만반의 대비를 바탕으로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극단적 노조 지도자들의 음모를 분쇄하겠다는 의지로 총파업에 정면 대응하게 된다.

스카길은 정상적인 절차로서는 총파업에 필요한 표를 얻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지역별 파업은 중앙집행위원회의 승인 하에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이용하여 각 지역별 파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일으켜 총파업의 효과를 달성하려는 편법을 동원하였다. 스카길의 이러한 전략은 일단 성공하였으나 파업에 반대하는 노동자 또는 지역들이 있어 일사불란한 투쟁체제는 갖추지 못하였다. 대처는 이 분열에 착안하여 조업을 계속하고자 하는 노동자는 조업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방해하는 자에 대해서는 형사조치를 취하겠다는 강경조치를 취하였다.

대처의 전술 가운데 탁월한 점은, 탄광노조의 파업을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결’로 몰아가려는 노조측의 움직임을 차단하고 이를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파업을 강행하려는 소수의 극단적 노조 지도자와 조업을 계속하려는 다수의 선량한 노조원들’ 간의 대결로 규정하고 정부는 다수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정당한 경찰권과 조정권을 행사한다는 초월적 입장에 선 것이다. 즉 총파업을 대처와 스카길의 대결로 보이도록 하려는 음모에 말려들지 않고 스카길은 사회를 좀먹는 음모가에 불과하다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스카길 등 노조 집행부는 늘어나는 조업 복귀자들을 각종 수단으로 협박하였는데 이에 따라 탄광에서는 많은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다. 대처는 소란이 무서워 타협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일부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경 찰과 노조를 1대1로 다루는데 분개하여 법을 집행하는 경찰과 극단분자들의 폭력행위를 같은 선상에서 다루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경찰의 사기를 올리고 장비를 개선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하였다.

파업은 1년여 계속되었는데 그동안 조업에 복귀하는 노동자가 늘어가고 또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지역도 많아 석탄 공급에 큰 차질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밖에 석유, 원자력발전소의 전력공급을 증가시켜 석탄에 대체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결국 파업이 소기의 상과를 거두지 못하자 노조 집행부는 초조해졌으며 스카길을 비난하는 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일부 극단적 지도자들은 파업 계속을 위한 자금을 얻기 위해 리비아의 카다피에까지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서 이들의 도덕성은 치명적 손상을 받았다.

치욕적인 패배를 당할 것을 두려워한 노동조합연맹(TUC)은 대처에 협상을 제의하였는데 총파업을 중단하는 대신 정부와 석탄공사, 탄광노조 간에 새로운 석탄정책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대처의 응답은 냉정하였다. 첫째, 모든 협상은 노동자들이 먼저 직장에 완전 복귀한 후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파업에 동조하지 않았거나 중도에 복귀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은 일체 있을 수 없다. 셋째, 채산성이 악화된 탄광 폐쇄 중지를 먼저 보장하라는 노조 요구는 등의 탄광노조 요구는 일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직장에 복귀하는 노동자들은 계속 증가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1985년 3월 탄광노조 집행부는 이제 총파업을 중지할 수밖에 없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대처는 이번 사태의 승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승자가 있다면 그것은 직장을 지켜준 노동자들이다”라고 대답하였다. 1984~1985년의 탄광노조 파업과 그 결말은 영국 정치상황에 큰 분수령이 되었다. 이제 소수의 극단분자들이 노조를 앞세우고 국민을 볼모로 삼아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탄광노조 파업을 성공적으로 수습하게 됨에 따라 대처는 과연 철의 여인(Iron Lady)임을 입증하였으며, 국내는 물론 유럽의 사회당 정권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처의 승리는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치밀한 준비, 적을 최소화하고 상대방을 명분 면에서 무장해제시키는 명석한 논리, 원칙에 충실하고 큰 승리를 위해 작은 희생과 고난을 감내하는 의지, 그리고 이를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끌어 나갈 수 있는 정치력 등에 힘입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철의 여인은 쉽게 얻어진 명성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