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대처 “머리 굳은 사람들 갖고는 개혁 어렵다”

1979년 겨울에 이르러 영국 정부의 기능은 마비된 상태에 이르렀다. 캘러헌 정부에 대한 신임투표는 311대310으로 부결되었다. 2차대전 후 노동당 애틀리 정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모토 아래 사회복지국가를 표방하였다. 당시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사회주의적 가치에 대해 일종의 도덕적 의무감을 지고 있었다. 그러나 ‘평등한 분배’는 ‘작은 분배’가 되기 쉬었고 ‘세계의 공장’ 영국의 산업은 낙후된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유럽의 병자’로 낙후돼 갔다. 정부는 산업국유화 정책을 폈는데 결과는 사회주의의 부정적 측면, 즉 책임성의 결여였다.

대부분의 국영기업은 방만한 경영으로 정부에 부담을 주고 있었다. 거대기업에 파업이 일어나면 역대 정부는 재정지원을 해서라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고는 하였다. 대처는 긴축과 감원을 해서라도 회사 자체가 문제를 해결토록 하고 정부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하였다. 대처는 마치 엄한 어머니가 어린이들을 교육하듯이 내각과 의회를 독려하여 ‘비정상의 정상화’를 끌고 나갔는데 이는 전후 복지정책에 길들어온 국민 일반, 특히 저소득층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노동당은 물론, 정부의 책무는 이런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보수당내 wets(말랑말랑한 사람들)로부터도 저항을 받았으나 소신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대처는 정부의 역할과 기능은 안정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법과 질서의 유지, 화폐의 안정-이 기본이며, 이 바탕위에서 국민들의 꿈과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토대(frame)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철학에 투철하였다. 정부가 할 일은 건전한 재정운용으로 통화가치를 안정시키는 것이며 물가나 임금을 통제하는 것은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인한 인플레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일이라는 보수적 경제철학에 입각하여 경제정책을 밀고 나갔다.

하물며 공사의 적자를 정부가 떠맡는 것을 대처는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 ‘세금은 정부 자신이 벌어들인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대처는 내각의 운용에 있어 집단책임제를 강조하였다. 각의의 토의사항은 Cabinet Secretary(우리의 국무조정실장격)이 요지만 기록한다. 누가 무슨 발언을 하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각전체의 공동책임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하였느냐가 중요하다. 각부장관이 소관업무만 책임지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각 전체가 하나의 팀으로서 작동하는 정신을 요구하였다.

취임 초 사무차관들을 모아 기탄없는 의견을 제시토록 하였는데 종합적이고 건설적인 분석과 대책은 별로 나오지 않고 지엽적이고 불평 위주의 비생산적인 토론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서 대처는 개혁과 진보를 위해서는 머리가 굳어진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고치는 것은 어렵고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발굴하고 키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대처는 ‘잠을 잔다는 것이 하나의 사치’라고 술회하였는데 하루 네 시간 정도만 수면을 취했다. 다우닝가 10번지는 내각과 수상의 집무실을 겸했으며 동시에 수상 거실이기도 하였다. 대처의 운동은 집무실에서 거실로, 주방으로 오르내리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에게는 집무 자체가 가장 중요한 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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