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진화론에 비춰본 무라야마와 아베

뉴턴의 물리학이 자연의 기본질서를 구조를 규명, 구성하였다고 하면 적자생존(適者生存)과 자연도태(自然淘汰) 등으로 대표되는 다윈의 진화론은 사회적 기본질서를 규명, 구성하였다. 근세 사회철학에 미친 영향에서 볼 때 다윈의 진화론은 압도적이다.

근세의 영국 불란서 스페인 등 서구열강의 식민지 경영은 대세였다. “일본은 이를 따라서 했을 따름이다. 한국은 일본이 아니면 영국이나 러시아에 먹혔을 것이다.” 아베가 침략의 정의는 일정하지 않다고 할 때 밑에 깔려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생각이다. ‘일본은 조선에 근세문명을 가르쳐 주었다.’ 한국 사람들은 그것이 식민지 경영을 위해 필요한 도구였지 조선의 개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인들은 ‘결과적으로’ 조선을 개화시킨 것은 일본의 덕이 아니었냐고 견강부회한다. 조국근대화를 주도한 박정희가 사범학교와 사관학교 등 일본 교육의 산물인 것은 대표적 보기라는 것이다. 아베 등 조슈한의 조선의 식민지화와 통치를 주도한 자들과 그 후예들의 사고에는 이러한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대부분의 일본의 국수주의자들과는 달리 무라야마 담화는 이를 ‘통절(痛切)하게’ 반성하고 있다. 이는 무라야마가 탐학의 자본주의를 대표하고 옹호하는 자민당의 정치인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회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당 출신인 무라야마 도미이찌는 총리 재직 시 사회적 약자와 환경 문제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무라야마 담화는 이러한 철학과 생리에서 나온 것이다.

자본주의의 기본을 형성한 아담 스미스는 본래 ‘도덕철학자’였다. 그는 개인이 각자 계산된 이기심(reckoning)에 따라서 행동하다보면 사회는 자연스럽게 최적의 상태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즉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사회를 밀고 나가는 원동력이라고 본 것이다. 다윈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원리인 우승열패(優勝劣敗)는 적자생존, 자연도태의 자연법칙을 반영한 것이며 영국이 제국주의의 선구에 선 것도 이러한 사회적 다윈이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의 폐해에 대해서 영국은 선구를 보여주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영국에서 나온 것이 우연이 아니다. 찰스 디킨슨의 <두 도시의 이야기>는 문학으로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명하게 그리고 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보이는 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교정하기 위한 ‘보이는 손’이 사회를 압살하는 권력으로 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이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실패다.

이에 비해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사회주의는 국민적 합의, 즉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이다.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라 함은 이를 말한다. 사회민주주의를 택한 나라에서는 의회민주주의를 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미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의회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제가 자칫 선출된 군주(elected monarch), 즉 제왕적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이 확고한 민주주의의 바탕위에 설 때 비로소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가능할 것이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미국에 의해 덮어 씌워진 거죽만의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일본인의 저변에 깔려 있는 철학적 바탕은 봉건시대와 다를 바 없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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