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국헌 문란과 쪽지 예산

이석기 등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내란선동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한마디로 줄이면 국헌문란이다. 이번 판결이 1심 판결이라 하여 3심제의 3분의 1 밖의 진리치(眞理値)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무어라 하던 사법부의 판단이 일단 내려진 것이다. 피고인들은 항소할 수도 있고, 20년을 구형한 검찰이 12년이라는 양형에 불만을 품고 항고할 수도 있다. 이들은 나중에 대법원에 상고할 수도 있다. 안되면 역사의 법정에 갈 수도 있다. 조봉암을 사형에 처한 자유당 때의 진보당 사건은 대표적이다. 사법부의 독립이 현저히 훼손된 3공 시절도 아니고 사법부 수호의 상징인 街人 김병로가 대법원장인 때에 내려진 판결인데도 50년이 지난 오늘에 사법부의 자기부정이라고 할 수도 있는 再審으로 판결이 뒤집혀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이를 무릅쓴 사법부의 진실에 대한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國憲은 국가의 기본질서요 강령이며 존재이유다.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짓밟고 애국가를 부정하는 것은 국헌을 부정하는 것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봉화를 올렸을 때 교황이 루터를 파문에 처하자 영주가 국법의 보호를 중지한 것은 가톨릭의 기본을 부정하는 자는 국법의 존재 안에 둘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영국 의회에서는 여야 간에 정책 논쟁으로 아무리 소란스럽다가도 의장이 ‘order, order’ 를 발하며 직장(職丈, mace)를 들고 일어서면 일순 씻은 듯이 조용해진다. mace는 주권자인 The Queen in the Parliament의 임재(臨在)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질서에 순응하는 것은 여야가 따로 없다. 여기에 저항하는 자는 영국의 헌정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자이기 때문에 선거구민들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가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낙선시킨다. 선진국의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기본은 이처럼 국민들의 정확하고 엄정한 투표권 행사이다.

한국 사회는 국회의원 하나하나를 헌법기관이라고 부르는 습성이 있다. 엄격히 이야기하면 이는 정확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로서, 전체로서의 국회이다. 전체로서의 국회가 헌법기관인 것이지 300개의 헌법기관이 모여 있는 것이 국회가 아니다. 국회의 입법이라 함은 국민의 일반의지(一般意志)를 대표하는 것이다.

일단 사법부의 단죄가 이루어진 자에 대해 세비를 계속 준다는 것은 형사소송법의 확정 판결 이전의 무죄추정의 원칙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이 가리키듯이 본래 서양에서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과 책임은 군주의 과세에 대해 감독하는 것이었다. 복지국가의 환상에 의해 정부와 공공기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것은 실로 우리 사회 흥폐의 위기다. 이를 제어하는 것이 국회의 본령이다. 국회가 명분 없는 정치공세로 소일하다가 수백 조의 예산을 연말회기 하루 이틀 전에 뚝딱 해치워버리는 것은?태업에 해당한다. 거기에 쪽지 예산으로 지역구 사업이나 챙기고, 이를 능력 있는 국회의원이라고 보는 선거구민도 초록동색(草綠同色)이다.

건전재정의 확립이 선진화로 가는 우리의 가장 화급(火急)한 과제이며 국회의 본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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