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나는 박정희 딸이다” 그 용기 어디 갔나?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흉한이 칼로 난자하였을 때 박근혜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때 그녀를 지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박정희의 딸이다’는 긍지 아니었을까? 김재규의 총격을 받고서도 “나는 괜찮아!”라고 하면서 절명(絶命)했던 박정희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박근혜의 판단력과 침착성은 이 가운데서도 “대전은요?” 라고 물었다는 한마디에 응축(凝縮)되어 있다. 레이건이 총탄을 맞아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도 의료진에게 “당신이 공화당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여유는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리더에게 중요한 것은 탁월한 판단력이다. 포용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다. 이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러일전쟁에서 쓰시마 해전(對馬 海戰)은 일본의 흥폐(興廢)가 달려 있는 일전(一戰)이었다. 영국의 거부로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도는 항해로 기진맥진해진 발틱 함대가 동지나해에 이르렀다. 연합함대사령장관 도고의 관심은 발틱함대가 다음 어느 경로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항진할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가능성은 대마도 동쪽과 서쪽 그리고 태평양 세곳이었다. 참모장 가토오 사부로, 작전참모 아키야마 사네유키는 각각에 대해 연합함대의 대응책을 강구하여 사령관에 보고하였다. 도고는 조용히 대마도 서쪽을 찍었다. 연합함대의 전력을 3분하여 모두 지킨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고 선택은 불가피했다. 이 결심은 오직 함대사령관의 책임이었다. 일본해 해전의 승패, 아니 일본의 흥폐가 달려 있는 결심이었다.

교전이 시작되자 도고는 전 함대를 T자로 선회하는 기동을 명하였다. 기동이 진행되는 기간에 함대는 공격에 취약하다. 러시아 군이 도고가 왜 저런 위험한 대형을 취하느냐고 지켜보는 사이 연합함대는 선회를 완료하였고 이후 유리한 위치에서 발틱함대를 계속 추적하고 공격했다. 결과는 세계 해전사상 드문 완승이었다. 함대를 지휘하던 도고가 서있던 자리에는 비가 젖지 않았다. 포연탄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도고는 미동도 하지 않고 정위치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지휘관이 있어야 할 자리고 자세다. 리더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세월호 사태에서 국민이 먼저 절망했던 것은 선장이 학생들을 나몰라하고 도망치는 모습이었다. 정부의 대책도 지리멸렬(支離滅裂)이었다. 이 가운데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혼자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총리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차에서 나오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같은 법조인 출신인데 무엇이 이들을 갈라놓았는가? 선거를 치루어 극한(極限)까지 가본 경험이 있었던 때문이 아닐까? 기업이나 선거나 전쟁이다. 이것이 정치인이 관료와 다른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는 박정희의 딸이다’는 자긍심을 뼛속까지 간직하고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에 귀한 자산이다. 중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가 높은 것은 중국말을 좀해서가 아니라 현대화의 도사(道師) 등소평이 궁리(窮理)하였던 박정희의 딸이라는 후광 덕분이었을 것이다. 조슈 한의 적자 아베가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는 것도 이토오 히로부미 등 저들의 전설적인 국토(國士)의 냄새가 풍겨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의 카리스마는 훌륭하다. 그러나 국사를 치밀하게 구상하고 추진해나가는 아버지의 모습도 닮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후천적 자질이다. 그 중에도 실패는 가장 귀중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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