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미스테리 혹은 억울함?’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한 ‘특별한 이야기’가 <중앙일보> <한겨레> <조선일보>에 잇따라 칼럼으로 게재되면서 언론계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대표적인 정보통으로 알려진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제기한 청와대 비선조직 ‘만만회’(박지만 박근혜 대통령 동생,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윤회 전 박근혜 의원 입법보조원) 가운데 정윤회씨와 관련한 내용들이다.
칼럼의 포문은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먼저 열었다. 지난 9일자 ‘중앙시평’을 통해서다. 칼럼은 ‘나는 떳떳하니 모든 걸 조사하라’라는 제목을 달고 등장했다. 이어 <한겨레> 김의겸 논설위원이 15일자 ‘유레카’코너에서 ‘정윤회와 특별감찰관’ 제목으로 바통을 이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을 둘러싼 風聞”로 18일자에 ‘최보식 칼럼’으로 등장했다. 그 사이 <동아일보>는 지난 14일 새벽 3시 인터넷판을 통해 “청와대 비선 의혹 정윤회씨 최근 이혼”란 제목 아래 ‘부인은 故최태민 목사의 딸…“혼인중 일 함구” 특이한 조건 달아’라는 부제를 붙여 ‘단독보도’ 했다.
지난 9일 <중앙일보>가 김진 논설위원이 정윤회씨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칼럼형식을 써서 보도한 이후 숨죽이며 예의주시하던 주요매체들이 정씨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자가 자기 이름을 걸고 쓰는 기명칼럼은 김의겸 한겨레 논설위원과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 정도가 눈에 띈다.
이들 주요 언론사가 연이어 칼럼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자못 심상치 않아 보인다. 어쩌면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정윤회씨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 처지와 관계없이 향후 정치권의 ‘뜨거운 논란’의 한 가운데 설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엔>이 이들 <중앙일보> <한겨레> <조선일보>의 칼럼 세 개의 주요대목을 소개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먼저 중앙일보 칼럼.
한국정치에는 ‘그림자 실세’가 있었다. 대통령의 아들·형·측근이 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김영삼의 김현철, 김대중의 김홍업, 이명박의 이상득 등이다. 그들은 모두 감옥에 갔다. 이 정권에서도 그림자 얘기가 나온다. ‘제3의 사나이’가 대통령에게 자료를 주거나 인물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드러난 실체는 없는데 소문은 날로 커진다. 소문의 주인공은 정윤회다.(중략) 그는 1997년부터 10년간 정치인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2007년 자신이 최태민 목사의 사위라는 게 불거지자 그는 비서실장을 그만뒀다. 최 목사는 70년대 ‘박근혜 영애’와 밀착했던 인물이다. (중략) 내가 “당신의 말을 칼럼에 쓰겠다”고 하자 그는 ‘좋다’고 했다.
– 청와대 바깥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가.
“2007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래 나는 7년간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 지난 대선 때도 활동하지 않았다. 대선 이후 내가 박 대통령과 접촉한 건 당선 후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를 한 번 한 게 전부다. 7년 전에 사실상 나는 ‘잘린 것’이다. 내가 최태민 사위라는 구설에 오르는 게 대통령에게 부담스러운 건 당연한 것 아닌가.”
– 당신이 비서실장이던 시절 보좌진으로 발탁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지금 청와대 3인방으로 불린다. 이들과는 접촉하나.
“접촉 없다. 인간적인 정의(情誼)로 보면 이들이 나에게 연락하는 게 도리인데···. 나는 섭섭하다.”(중략)
– 당신이 서울고를 나왔고 그 학교 출신들을 장관으로 추천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 학교를 나온 문창극 총리 후보자도 당신이 추천했다는 말이 있다.
“소문들이 그렇게 터무니없다. 나는 서울고를 나오지 않았다. 나는 대학원까지 졸업했는데 구체적인 학력을 밝히지 않는 건 불필요한 잡음을 피하기 위해서다.”
– 7년 야인 생활에 생계는 어떻게 유지했나.
“아내가 강남에 빌딩을 가지고 있다.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한다. 97년 비서실장을 맡기 전에는 외국을 드나들며 호텔 관련 사업을 했다. 지금은 그것도 하지 않고 있다.”(중략)
– 근거 없는 공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건가.
“비서실장 시절 ‘정치인 박근혜’를 모시고 나라를 위해 일을 한다는 게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대통령으로도 모시고 싶었다. 그 꿈이 지금은 멀어졌다. 안타깝다. 이제는 잘못된 소문을 불식시키는 게 대통령과 정권을 돕는 길이다. 신설되는 특별감찰관이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든 정부가 공식적으로 조사해 달라. ‘박근혜 비서실장’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모든 걸 조사해도 좋다. 재산, 이권 개입, 박지만 미행 의혹, 비선 활동, 모든 걸 조사하라. 대통령 동생 이름에다 총리 후보자 추천설까지 나왔으니 정부가 조사할 필요가 생겼다. 비서실장 때나 그 이후나 잘못이 있으면 감옥에 가겠다. 하지만 내가 결백하면 헛소문으로 나를 공격하는 이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세상은 이상하고 나는 억울하다.”(중략)
근거가 없어도 혼란이 심해지면 사실을 가려내야 할지 모른다. 정씨의 개입 여부를 밝히는 건 어렵지 않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나 특별감찰관, 언론이 있다. 조사 결과 정씨가 옳으면 ‘싸구려 공세’를 벌인 이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반대로 그가 거짓말을 하면 박근혜 정권은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다음은 한겨레 칼럼.
현 정권의 ‘숨은 실세’로 소문이 난 정윤회(59)씨의 이혼은 특이하다. 법원의 조정으로 이혼할 경우 양쪽이 서로 적절한 선에서 권리와 의무를 나눠 갖는 게 통례인데, 정씨의 경우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자녀 양육권은 부인 최아무개(58)씨에게 넘어갔고 위자료 청구나 재산 분할은 이뤄지지 않았다. 비싼 승마용 말을 세 마리나 사주며 애지중지한 딸이고, 두 사람의 주요 재산은 대부분 부인의 이름으로 돼 있다.(중략)
정씨가 얻은 거라고는 결혼 기간 중에 있었던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한 게 전부다. 재벌이나 연예인도 아닌데, 정씨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한 비밀은 도대체 무엇인지 세간의 의혹이 쏠릴 만하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충동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이어진 국정 개입 논란 때문이다. 최근에만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추천설, 박지만씨 미행설, 딸 승마 국가대표 선발 특혜설 등이 불거졌다.
마침 대통령 측근 비리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후보가 추천됐다. 국회가 11일 조균석 이화여대 교수와 민경한·임수빈 변호사 등 3명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추천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지명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장관급 대우를 받는 특별감찰관은 3년 임기 동안 30명의 조사관을 지휘해 대통령의 4촌 이내 친인척과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이상 간부의 비위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범죄 혐의가 발견되면 검찰에 넘긴다.
게다가 정윤회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특별감찰관이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든 정부가 공식적으로 조사해 달라”고 스스로 요청하고 나섰다. 특별감찰관의 첫 임무로는 제격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 칼럼이다.
지난 7일 청와대 비서실의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 보고가 발단이 됐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오전 10시쯤 대통령이 서면(書面)으로 첫 보고를 받은 뒤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기까지 7시간 동안 대면(對面) 보고도, 대통령 주재 회의도 없었다는 게 알려지면서다. 당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김기춘 비서실장의 문답.
“대통령께서 집무실에 계셨나?” “그 위치에 대해서는 내가 알지 못한다.” “비서실장이 모르시면 누가 아나?” “비서실장이 일일이 일거수일투족 다 아는 건 아니다.” 대통령 일정을 실시간으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후에는 알 수 있다. 그날은 대형 참사가 발생했던 날이다. 당연히 “대통령이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고 찾거나 물어봤을 것이다.
김 실장이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은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비서실장에게도 감추는 대통령의 스케줄이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세간에는 “대통령이 그날 모처에서 비선(秘線)과 함께 있었다”는 루머가 만들어졌다. 차라리 “대통령의 소재에 대한 공개적 언급은 곤란하다”고 했으면 이렇게 전개되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루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권가 정보지나 타블로이드판 주간지에 등장했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는 걸로 여겼다. 행여 누가 화제로 삼으려고 하면 “그런 들으나 마나 한 얘기는 그만”하며 말리곤 했다.(중략)
때마침 풍문 속 인물인 정윤회씨의 이혼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더욱 드라마틱해졌다.(중략)
세상 사람들은 진실 여부를 떠나 이런 상황을 대통령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됐다. 과거 같으면 대통령 지지 세력은 불같이 격분했을 것이다.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도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식과 이성적 판단이 무너진 것 같다.
국정 운영에서 높은 지지율이 유지되고 있다면 풍문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지면서 온갖 루머들이 창궐하는 것이다. 마치 신체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숨어 있던 병균들이 침투하는 것과 같다.(중략)
쓸 사람을 뽑는 문제만으로 시간과 정력을 몽땅 날린 탓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많은 논란과 불신을 낳은 정권이 없었다. 대통령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분을 찾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저런 후보자를 ‘누가’ 추천했을까” 하며 매의 눈으로 응시했다. 이런 누적된 의심이 대통령의 면역력을 서서히 떨어뜨려 온 것이다.(중략)
대통령은 여전히 구(舊)시대의 심벌 같은 김기춘 비서실장을 끌어안고 있다. 그의 충성심과 비서실 안정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김 실장이 그대로 있는데 ‘혁신’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인사 때마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 세간에는 회자되는데도, 청와대 담장 안에서만 평온한 일상이 계속된다. 대통령이 이들을 불러 “조금이라도 오해받을 처신을 하거나 직무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는 소식도 없다. 설령 이들이 억울하다고 해도 민심을 향한 메시지 차원에서도 필요했을 것이다.
장마철에 곰팡이처럼 확산되는 풍문을 듣지 않기 위해 대통령은 자신의 귀만 막아서는 안 된다. 곰팡이는 햇볕 아래에서 말라죽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