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박근혜 이제라도 성공하려면

총리 선정을 둘러싸고 혼선이 일어나는 것은 근본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총리 역할과 책임에 대한 개념이 분명히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총리를 장관과 차관의 관계로 비정(比定)하면 이해하기 쉽다. 차관은 기본적으로 참모장이다. 제한된 전결권도 있으나, 결정권은 모두 장관에 있다. 장관은 대통령 신뢰를 바탕으로 관련부처와 협의하고 국민과 국회를 설득하며, 예산을 획득하고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렇게 장관이 얻은 법과 예산 내에서 실무는 차관이 참모장이 되어 집행한다. 부처 일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장관과 차관의 상호신뢰가 중요하듯이 대통령과 총리의 신뢰관계는 정부 효율과 화합에 결정적이다.

대통령실과 각부의 관계는 국방부와 각군의 관계로 比定할 수 있다. 국방부는 小政府라고 할 정도로 방대하다. 각군도 국방부 본부에 못지않게 거대하다. 예산, 조직, 인사권이 국방부와 각군에 어떻게 분배되어 기능하고 있는가? 대표적으로 인사권만 보자. 진급과 보직은 기본적으로 각군 참모총장의 책임이요 권한이다. 총장은 진급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진급안을 구성한다. 국방부의 제청심사위원회가 있으나 진급안을 대통령에 보고하기 직전 소집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다분히 요식행위다. 이처럼 인사권은 실제로 일을 하는 장관에 주어져야 한다.

차관도 청와대에서 결정하여 내려 보내는 것은, 한마디로 만화(漫畵)다.

노무현 정부 때 군에서 120%를 올리면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 다시 심사하였는데 이는 인사군기를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작태였다. 이는 청와대가 진급심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결과적으로 군인이 청와대를 기웃거리게 만드는, 한마디로 군이 정치화되는 망조(亡兆)였다.

예산을 기획원에서 세부항목까지 결정하고 부처는 예산당국을 납득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에서나 보는 일이다. 미국의 OMB(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나 영국의 Treasury에서는 예산의 큰 틀만 정하고 조정이 필요한 사안은 Minister들이 Star Chamber 등에서 다루지 사무관, 서기관들이 좌우하도록 맡겨두지 않는다.

조직은 기본적으로 부처 장관이 정해야 한다. 신규 조직소요가 발생하였을 때 일일이 안전행정부 사무관을 설득해야 돼서는 일을 하기 어렵다. 세계 최대의 관료조직인 미 국방부는 정세에 따라 엄청난 폭의 reshaping이 장관의 책임 하에 수시로 이루어진다.

안행부나 기획재정부의 인사, 조직, 예산에 관한 권한도 전반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안행부나 기재부와 같은 수퍼부처의 출범은 만기친람(萬機親覽)하던 박정희 시대의 잔재다. 정부업무는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크고 복잡해졌고 박정희와 같은 수퍼맨은 다시는 나오기 힘든데 정부 부처 간에도 甲과 乙이 존재하는 현실 또한 만화다. 대통령은 장관에 명확한 지침을 주고 청와대는 이를 확인하는데 주력하며, 총리는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정부를 통할하고, 세부는 장관이 책임을 지고 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책임총리 못지않게 중요한 책임장관의 일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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